이-박 말싸움에 민심 ‘갈팡질팡’
▲ 이명박 대통령(왼쪽),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 ||
2003년부터 시작된 세종시 논란은 지난해 9월 18일 당시 정운찬 총리후보자가 후보임명 청문회장에서 거론하면서 재가열되었다. 당시 정 총리후보자가 “세종시법은 축소수정되어야 한다”고 밝히면서 산고 끝에 세종시법 원안을 이끌어냈던 박 전 대표와 친박계를 자극한 것. 정운찬 총리의 원안 수정 입장이 이명박 대통령의 의중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되면서 정운찬 VS 박근혜 대립은 또다시 친이 VS 친박 갈등으로 번져가기 시작했다. 양측은 여론조사 결과를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며 각기 다른 풀이를 내놓고 있는 상황. 하지만 세종시 정국과 함께 흘러온 세종시 여론은 원안과 수정안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오락가락하고 있는 양상이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세종시 논란처럼 이해관계가 첨예한 이슈에 대해 여론은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그간의 조사결과를 좀 더 정밀히 들여다보면 여론 역시 상황에 따라 미세한 변화를 보여왔음을 알 수 있다. 대체적인 흐름을 살펴보면 초반 민심은 원안 쪽으로 다소 기울어져 있었다. 지난해 9월 16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의 조사결과 ‘원안찬성’은 39%, ‘원안보다 축소’는 22.1%, ‘전면백지화’가 16.7%로 나타났다. 특히 충청권에서의 ‘원안추진’ 주장은 62%로 압도적으로 높았고 충청민심은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에도 영향을 미쳤다. 초반 ‘원안 찬성’ 의견이 높았던 것에 대해 리서치앤리서치 배종찬 팀장은 “정부의 수정안이 발표되기 이전이어서 국민들은 그 내용으로 판단할 수 없었다. 또한 당시 박근혜 전 대표의 ‘국민과의 신의’를 강조한 발언이 매우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졌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박근혜 전 대표가 한 달여 뒤인 10월 23일 세종시 문제에 대해 ‘원안+알파’ 주장을 내놓으면서 세종시 논란은 본격적으로 ‘이명박 VS 박근혜’의 싸움으로 옮겨가게 된다. 박 전 대표의 발언 이후 원안 찬성 의견은 좀 더 올라가기 시작했다. 11월 1일 실시된 모노리서치의 조사결과 ‘원안대로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이 49.9%로, 박 전 대표의 ‘원안+알파’ 발언 이전보다 훨씬 높아졌다. 이에 반해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은 31.3%에 머물렀다.
박 전 대표의 발언 이후 충청민심 역시 더 들끓었다. 11월 1일 모노리서치 조사에서 ‘원안찬성’ 의견이 65.6%였던 충청지역 민심은 11월 15일 69.3%로 3.7%p 더 올라갔다. 타 지역에서도 경기권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수정안보다 원안찬성 의견이 월등하게 높아졌다. 이러한 흐름에 대해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중도·무당파 층과 민주당 지지층 일부마저 박 전 대표 지지층으로 옮겨간 결과”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에도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수정안 찬성이 높게 나타나면서 여론의 흐름을 가늠하기 어렵다는 분석도 우세했다.
본격적인 여론전쟁은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이 발표된 지난 1월 11일 이후 시작되게 된다. 수정안 발표 직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는 대부분 ‘수정안 찬성’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지만 역시 ‘원안’과 ‘수정안 찬성’의 차이가 7~17.3%p로 다양하게 나타나 여론의 부침이 심했다. 다만 리얼미터 조사(1월 12일)에서만 원안 찬성(40.2%)이 수정안 찬성(40.1%)보다 높게 나타난 바 있지만 거의 대등한 수치였다.
당시 청와대는 세종시 수정안 홍보를 통해 민심을 역전시켰다고 분석했지만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의견은 신중했다. 리서치앤리서치 배종찬 팀장은 “수정안에 대한 국민의 이해가 부족해 의견을 확정짓지 못한 이들이 많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당시 리얼미터 이택수 대표는 부동층의 해석에 유의해야 한다며 기존의 여론조사 방식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1월 20일부터 리얼미터에서는 원안과 수정안, 절충안, 무응답을 포함한 설문지로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후 실시된 리얼미터 조사는 어떤 변화를 보여 왔을까. 1월 20~21일 실시된 조사에서는 수정추진이 39.6%, 원안추진이 30.5%, 일부 부처가 이전하는 절충안이 18.5%로 수정안 찬성이 높게 나타났다. 절충안을 답변지에 넣기 전인 1월 12일 조사와 비교하면 수정안 추진 응답자 중 9.6%, 원안 추진 응답자 중 20.6%가 절충안으로 의견을 옮겨간 것으로 분석됐다. 원안 추진 응답자들이 절충안에 더 우호적인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어 1월 29일 조사에서는 수정안 39.6%, 원안 36.1%로 그 폭이 줄어들다가 2월 4일 조사에서는 원안 찬성이 37.2%, 수정안 찬성 34.7%로 다시 원안 찬성이 수정안을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원안 찬성’과 ‘수정안 찬성’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던 여론은 지난 2월 9일 조사에서 다시 팽팽해졌다. 원안 찬성은 이전 조사(2월 4일)보다 2.6%p 줄어든 34.6%, 수정안 찬성은 0.2%p 늘어난 34.9%로 나타났다. 수정안 찬성이 오차범위 내인 0.3%p 앞서는 결과다. 이에 대해 이택수 대표는 “이명박 대통령이 충북을 방문해 세종시 수정의 필요성을 역설한 것이 민심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의 ‘강도론’ 공방으로 인해 세종시 논란은 더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이제 세종시 여론은 법안의 내용을 떠나 정치적 싸움과 그 궤를 같이하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과연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는 세종시 민심은 이 대통령의 수정안과 박 전 대표의 수정안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세종시 논란이 장기화되면서 민심은 많이 지치고 피곤한 상태다. 논란이 장기화될수록 이 대통령이나 박 전 대표 모두에게 득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