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간 2군 생활 견디고 뒤스부르크 이적…“아시안게임도 욕심난다”
대한민국 축구 U-23 대표팀 수비수 서영재.
[일요신문] 현대축구에서 측면 수비수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는 만큼 포지션 소화 자원은 세계적으로도 ‘품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특히 왼쪽 포지션에서 이 같은 현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나설 대표팀 또한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U-23 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있는 김학범 감독은 측면 수비 자원의 부재를 여러 번 호소한 바 있다. 일각에선 풀백 포지션에서 와일드카드 발탁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독일 무대에서 활약하던 측면 수비수 서영재가 지난 5월 28일 김학범호에 처음으로 소집돼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일요신문’은 서영재와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지난 2016 리우 올림픽을 준비하는 대표팀에 드나들던 서영재는 최종 본선 참가에는 실패했다. 당시에는 팀내 어린 축에 속했지만 이제는 연령 제한에 ‘꽉 찬’ 만 23세가 됐다. 스스로도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올림픽대표 준비 과정에서 소집되기도 했었지만 결국 대회에는 나가지 못했다. 이번엔 정말 아시안게임에 욕심이 난다. 정말 나가고 싶은 대회고 잘하고 싶은 대회다. 앞으로 더 이상 연령별 대표팀에 참가할 기회가 없다. 또래 친구들과 함께 하는 마지막 대회라서 더 간절하다. 나를 포함해 모두들 의욕적으로 임하고 있다.”
김학범 감독 체제에서의 대표팀 발탁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 감독은 강도 높은 훈련을 주문하는 ‘호랑이 감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서영재는 처음 경험하는 김 감독의 훈련에 대해 “이렇게 힘든 훈련은 처음인 것 같다”면서도 “훈련 시간이 길지는 않고 짧고 치열하게 진행된다. 덕분에 컨디션이 올라오는 게 느껴진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감독님이 훈련 때는 높은 강도를 주문하시지만 그 외에는 편안하게 대해 주신다”고 덧붙였다.
지난 7일 숭실대와 연습경기를 펼치는 U-23 대표팀
이 가운데 서영재의 합류는 많은 관심을 모았다. 서영재의 활약도에 따라 와일드카드의 선택이 달라질 것이라는 분석도 뒤따랐다.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는 풀백 포지션에서 서영재가 두드러지는 활약을 보인다면 다른 곳에 와일드카드를 활용해 전력을 보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영재는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외부의 평가는 의식하지 않고 있다. 팀 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에만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독일 무대에서 활약하던 서영재는 최근 변화를 맞이했다. 독일 2부리그 분데스리가2에 속한 MSV 뒤스부르크는 지난달 23일 서영재의 영입을 공식 발표했다. 이로써 서영재는 지난 3년간 몸담은 함부르크 SV를 떠나게 됐다.
지난 2015년 당시 함부르크 단장은 올림픽 대표팀과 프랑스의 평가전을 보고 서영재에게 입단 테스트를 제의했다. 1군 훈련에 참가한 그는 구단 관계자들로부터 합격 통보를 받고 한양대를 떠나 유럽 무대로 향하게 됐다.
유망주의 유럽진출에 축구팬들의 기대도 이어졌다. 하지만 유럽 무대가 마냥 꿈같은 생활은 아니었다. 함부르크 구단이 부진을 겪었고 서영재를 영입한 단장과 감독 모두 교체되기에 이르렀다. “2군에서 1년 동안 적응기를 거쳐 1군에서 뛰도록 하자”던 단장의 프로젝트도 없던 일이 됐다. 서영재는 당시를 떠올리며 “그 다음에 오신 분들(단장, 감독)은 나에게 크게 관심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2군 생활이 이어졌고, 함부르크 2군에선 사실상 ‘방치’됐다. 계약기간 3년이 끝났고, 진로를 결정해야 했다. 희귀 자원인 ‘왼발잡이 왼쪽 풀백’ 서영재에게 K리그 일부 구단과 독일 내에서도 관심이 이어졌다. 국내 복귀에 대한 고민도 했지만 서영재는 가장 적극적인 러브콜을 보낸 뒤스부르크의 손을 잡았다. 그는 “아직 유럽에서 도전을 이어갈 수 있는 나이라고 생각했다. 그 동안 독일에서 고생한 것도 아쉬웠다”며 독일 잔류 이유를 밝혔다.
서영재는 한양대 2학년 시절 홀로 독일 무대로 건너갔다.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 해외 생활은 쉽지 않은 경험이었다. 그는 “말도 통하지 않는 환경에서 많이 외롭기도 했다. 기약 없는 2군 생활에 힘이 들기도 했다. 훈련장뿐만 아니라 길거리를 돌아다녀도 동양인이라고 나를 무시하는 경우도 많았다. 유럽에 진출했던 선배들이 겪었던 어려움이 내 앞에서 펼쳐졌다. 그래도 내가 선택한 일이기 때문에 견뎌야 할 부분이다”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다가오는 2018-2019 시즌에는 외로움을 달랠 ‘동거인’이 생겼다. 주인공은 중학교에서 함께 축구를 했던 안정훈이다. 서영재는 “양평 FC(K3리그)에서 뛰던 안정훈이 독일에서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싶은 마음에 넘어오게 됐다”고 설명했다.
새 팀에서 새로운 도전을 앞둔 서영재는 또 다른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계약을 마무리짓고 U-23 대표팀에 합류해 훈련을 이어가던 중 뒤스부르크 측의 조기합류 요청을 받았기 때문이다. 반면 대표팀에선 이달 말까지 예정된 훈련을 마치고 소속팀으로 돌아가길 원했다. 서영재는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인기가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웃었다. 그러면서 “사실 복잡한 상황이다. 새로 합류할 팀의 훈련도, 대표팀도 중요하다. 어느 한 쪽을 선택하기 어려운 상황이다”라고 덧붙였다. 결국 독일에서의 비자 문제도 해결해야했기에 지난 12일 대표팀의 인도네시아 전지훈련에 동행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아직 뒤스부르크에선 간단한 입단 절차만 밟았을 뿐이다. 서영재는 “기대가 많이 된다”면서도 “팀 분위기도 잘 모르는 상태다. 단장님과 감독님만 인사를 했고 코칭스태프도 잘 모른다. 앞으로 팀 내 경쟁은 당연한 일이고 빨리 자리를 잡고 싶다는 생각뿐이다”라고 각오를 다졌다.
사진촬영을 지켜보던 부모님이 축구화를 내려 놓을 것을 권유하자 서영재는 “이게 멋”이라며 웃었다.
서영재는 세계적으로도 찾기 쉽지 않은 ‘왼발잡이 왼쪽 풀백’이다. 182cm의 큰 키 또한 무기 중 하나다. 자신만의 강점을 어필해달라는 요청에 그는 “긍정적 멘탈(웃음)?”이라며 “훈련이나 경기를 할 때 실수를 하더라도 집중력을 유지하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실제 그는 경기 중 진지한 얼굴과는 달리 경기장을 벗어나면 시종일관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이번 뒤스부르크 이적을 담당한 에이전트인 홍사욱 FS 코퍼레이션 팀장도 “서영재는 풀백으로서 큰 키임에도 볼 다루는 센스와 연계플레이, 스피드, 킥력을 갖춘 세련된 왼쪽 풀백”이라고 평가했다.
서영재는 아직 만 23세의 어린 선수이자 유럽의 큰 무대에서 경험도 많지는 않다. 그가 ‘제2의 이영표’로 성장할지, 무수한 후보 중 한명으로 그칠지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국내외에서 젊은 측면 수비수 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현재 유럽 무대에서 도전을 이어가고 있는 그의 활약을 주목해 볼 가치는 충분하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