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아닌 교제…불륜 빌미 10년간 돈 요구” 공갈협박 고소…금전 오간 시점과 횟수가 최대 변수
지난 3월 ‘미투’ 폭로 이후 연예계 잠정 은퇴 상태에 들어간 배우 조재현이 자신을 성폭행 가해자로 지목한 재일교포 출신 전 배우를 22일 공갈 및 공갈미수 죄로 고소했다. 임준선 기자
수면 위로 올라온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재일교포 배우 A 씨는 2002년 조재현과 함께 드라마를 촬영하던 중 한 방송국 화장실에서 그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다. 조재현이 “연기를 가르쳐 주겠다”라며 자신에게 먼저 접근한 뒤 스태프와 동료 배우들이 없는 인적 드문 화장실로 유인했다는 것. 공사 중이어서 오가는 사람이 없던 그곳에서 성폭행이 이뤄졌다는 것이 A 씨의 주장이다.
이후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던 A 씨는 결국 한국에서의 연예계 생활을 접고 2007년 일본으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잊어버렸던 악몽을 다시 떠올리게 된 계기가 지난 3월 방송된 MBC ‘PD수첩’이었다고 했다. 그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죽을 마음으로 진실을 알리자, 이 사람이 더 이상 어린 여성들을 향한 범죄를 행하지 못하게 진실을 전하자”라는 마음으로 나서게 됐다고 밝혔다.
조재현 측은 즉각 반박에 나섰다. 먼저 “성폭행이 아니라 합의 하의 성관계”였고, “방송국 화장실이 아니라 A 씨의 집에서 이뤄졌다”는 것. 정확하게 이 ‘관계’가 이뤄진 시점은 A 씨가 주장한 2002년이 아니라 1998년이라고도 정정했다. 이 시기 합의 하에 성관계를 가졌으나, 조재현이 대중 인지도를 높이기 시작한 2002년 이후부터 A 씨 측이 갑자기 문제를 삼고 보상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성관계 이후 조재현이 부산에서 SBS 드라마 ‘피아노’를 촬영하는 기간(2001~2002년)에 A 씨가 현장을 드나들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성폭행을 당했다는 피해자가 촬영 현장에 와서 조재현에게 몇 시간 동안 ‘타로카드 점’을 봐주기도 했다. 그걸 조재현이 타일러서 돌려보낸 적도 있다”는 게 조재현 측의 주장이다.
합의된 성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조재현이 A 씨에게 지급했다고 주장하는 돈만 거의 1억 원에 이른다. 이에 대해 조재현 측은 “인지도가 높아지기 시작한 시점에 A 씨의 어머니가 야쿠자까지 대동하며 조재현을 협박했다. 맨 처음 3000만 원을 요구해 그걸 줬더니 이후에도 다양한 명목으로 금전을 요구했다”고 설명했다. 이 당시 조재현은 두 명의 자녀를 둔 유부남이었고 간통죄도 남아있던 시기였다.
A 씨의 주장에서도 어머니가 나온다. 한 매체에 따르면 당시 A 씨의 남자친구로부터 사건의 정황을 들었던 A 씨의 어머니는 서울 강남구의 한 주점에서 조재현을 만나 책임을 물었다. 이 자리에서 조재현이 “죽을죄를 졌다. 부인이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고 내 GPS 추적을 할 정도로 부부생활이 좋지 않다”라며 빌었다는 것. 그 직후 조재현이 먼저 A 씨에게 자신의 매니저까지 붙여주며 “배우로 성공할 수 있도록 케어해 주겠다”며 금전을 지원해줬다는 것이다.
‘금전이 오고 갔다’는 것은 양측 모두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 목적과 액수에서 차이가 난다. A 씨 측이 처음 받았다고 주장하는 돈은 4000만 원이며, 조재현과 그 매니저가 A 씨에게 “이 돈으로 성형수술을 하고 오라”고 말했다고 주장한다. 배우로 성공하기 위해서 관리가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조재현 측은 “A 씨가 먼저 돈을 요구해 3000만 원을 우선 건넸다. 그런데 그 뒤로도 비행기 표 값이며 핸드폰 요금 등 다양한 명목으로 돈을 요구하더라. 심지어 2011~2012년까지도 금품 요구가 이어졌다”고 말했다. 이렇게 건넨 돈이 10년간 약 1억 원에 이르게 됐다고 했다. A 씨의 요구가 점점 심해지면서 결국 “더 이상 돈을 요구하지 않겠다”라는 각서까지 받았다는 것이 조재현 측의 주장이다.
조재현은 ‘미투’ 폭로 이후 출연 중이던 tvN 드라마 ‘크로스’에서 불명예 하차하기도 했다. 사진=tvN제공
조재현의 법률 대리인인 법무법인 에이치스 박헌홍 변호사는 “3개월 전(조재현의 미투 폭로가 발생한 시점)에 A 씨 측이 변호사를 통해 내용증명을 보내왔다. 첫 내용증명에는 돈 이야기가 없어 직접 상대 변호사를 만나서 이야기를 들었더니 A 씨 측이 3억 원을 주면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겠다고 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이를 거부하자 A 씨 측의 변호사가 결국 사건에서 손을 뗐고, A 씨가 곧바로 언론에 이 사실을 폭로했다는 것.
박 변호사는 “내용증명이 왔을 때부터 이런 일을 예상하고 있어 놀랍지 않았다”라며 “우리 쪽은 A 씨에게 돈을 지급한 내역서와 각서 등 모든 근거 자료를 가지고 있다. 당초 21일 고소를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송금 관련 자료를 추가로 준비하는 과정에서 늦어졌다”고 밝혔다.
22일 고소장을 제출하면서 조재현은 심경문을 공개했다. 그는 “그동안 왜곡된 제보나 보도에 대해 어떤 대응도 하지 않은 것은, 최초 원인 제공자가 저 자신이었으므로 반성하는 시간이 맞다고 여겼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저는 A 씨를 성폭행한 적이 없다”며 고소 이유를 밝혔다. A 씨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1998년부터 2001년 초까지 방송한 드라마에서 만나 가까워졌으며, A 씨도 저를 잘 따라 이성적인 관계로 발전했다”라며 “A 씨의 집에도 두 차례 초대 받아 간 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드라마 종영 후 관계가 소원해지자 A 씨가 자신을 찾아왔고, “이성 관계는 끝내고 선후배로 지내는 것이 좋겠다”고 타일렀다고도 설명했다. 당시에는 A 씨가 받아들였다고 생각했으나 2002년 2월 초부터 A 씨의 어머니가 야쿠자를 들먹이며 금전 요구를 하기 시작해 10여 년간 1억 원에 가까운 돈을 전달했다는 것이 그가 밝힌 사건의 전말이다.
정식 재판이 진행될 경우에는 성관계 이후 A 씨와 조재현 사이에 오간 금전의 성격이 어떤 것이냐가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양측이 모두 성관계가 있었다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으나 이미 공소시효가 지난 사건이라 지금에 와서 해당 범죄에 대해서는 논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
익명을 요구한 한 성범죄 전담 변호사는 “사건 발생 직후 금전이 오고간 정황이 있다면 이 돈은 ‘상대방이 원치 않은 성관계에 대한 입막음’으로 볼 가능성이 높다”라며 “그러나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거액의 돈이 오고갔다면 지급된 금전의 성격이 달라질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이전의 성폭력 여부와는 상관없이 돈이 지속적으로 오고간 그 시점과 상황을 두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짚었다. 그전에 성폭력이 있었다는 사실과는 별개로 공갈의 혐의에서 죄를 물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한편 조재현은 A 씨와의 정식 재판을 앞두고 직접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을 것으로 파악된다. 잠정 은퇴 선언 후 지방으로 잠적한 그는 지난 5월까지 쓰던 휴대전화를 해지한 채 누구의 연락도 받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어렵게 연락이 닿은 조재현의 매니저는 “저도 지난 4월부터 조재현 씨와 더 이상 함께 일하지 않는다. 조재현 씨가 이 사건과 관련해서 대중들 앞에 직접 설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럴 일 자체가 없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A 씨와의 사건에 대해서는 “제가 조재현 씨와 일할 때는 들은 바 없다. 알지 못 한다”고 일축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