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통수만 골라 두는 박근혜 기반 ‘쩍’
그럼에도 여당 주류는 당론 변경과 본회의 상정 등의 절차를 ‘정상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낭떠러지가 뻔히 보이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노를 젓고 있는 친이그룹. 이들은 과연 낭떠러지에 빠져 죽으려고 하는 것일까. 물론 아니다. 당 일각에서는 최근 주류 측의 초강수 배경을 두고 “이미 친이 측은 세종시 전쟁의 승패에는 관심이 없고 향후의 대선 후보 경선과 대선을 위해 타협 없는 강경책을 빼들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친이 측은 세종시 정국을 통해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전통적인 지지층의 이탈이라는 정치적 타격을 받았다고 판단한다. 그래서 세종시에서는 패배하더라도 최후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이번 전투에서 최대한 박 전 대표의 입지를 위축시키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친이 주류가 준비하는 세종시 전쟁의 마지막 승부수 3단계 전략을 따라가 봤다.
박근혜 전 대표가 세종시 정국에서 친이그룹의 무차별 타격에도 뚝심 있게 버티는 배경은 무엇일까. 여성이라는 핸디캡에도 그가 세종시 전쟁에서 ‘잔다르크’로서 분전하는 배경에는 바로 그의 뒤에 든든한 지지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2007년 8월 대선 후보 경선 때 지지율 29.8%를 기록한 이래로 지금까지(2월 16일 리얼미터 조사 33%) 줄곧 30% 안팎의 고정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다. 친박인 한나라당 구상찬 의원은 “한국정치사에서 30%에 달하는 확고한 지지층을 가진 정치인은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 이후 박 전 대표가 유일하다. 대선에서 상황에 따라 움직이는 상당수 부동표 가운데 일부만 가져와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라고 말할 정도로 박 전 대표의 유일한 자산은 30%로 대변되는 열혈 지지층이다.
그런데 바로 이런 ‘콘크리트 지지층’ 때문에 박 전 대표가 자멸할 가능성도 있다. 만약 ‘박근혜의 모든 것’인 전통적 지지층이 붕괴된다면 박 전 대표로서는 정치적 존립 근거를 상실하게 될 정도로 치명적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몇몇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그에 대한 지지율 하락 내지는 정체 조짐은 6개월 세종시 전투의 피로증에서 나온 불길한 징조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먼저 지난 2월 16일 리얼미터가 발표한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 따르면 박 전 대표는 33%로 부동의 1위를 지켰으나, 전통적 지지층인 한나라당 지지층의 지지율은 2주 연속 하락해 34.7%에 그쳤다. 물론 2주 동안의 지지율 변화(-11.1%p)만으로 박 전 대표의 한나라당 지지층 내 지지율이 세종시 전투를 거치며 하락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의 김미현 소장은 “한나라당 지지층에서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호감도가 높지만(원안 25%, 수정안 68.7% 1월 25일 조사) 그래도 박근혜 전 대표에게도 상당한 호감도를 형성하고 있다. 이 추세는 박 전 대표와 대적할 수 있는 유력한 대선주자가 한나라당 내에서 나오지 않는 한 당분간 유지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한나라당 지지층 대다수가 비록 수정안에 찬성을 하고 있지만 그것이 곧바로 ‘박근혜 비토’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는 것이다. 세종시 정국이 박 전 대표의 지지율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김 소장은 이 대목에서 판단을 유보하고 있다. 그는 먼저 박 전 대표의 지난 6개월간 지지율이 상당히 견고하지만 정체 또는 답보 상태에 있다고 지적한다. 동시에 그는 “이런 시점에 생긴 세종시 국면이 박 전 대표에게 ‘견고한 지지층 플러스 알파’ 효과를 낼지, 아니면 전통적 지지층의 감소효과로 이어질지는 좀 더 지켜보아야 할 것 같다”라고 말한다. 이는 박 전 대표의 세종시 최종 성적표가 전통적 지지층의 결집으로 막을 내리거나 아니면 그 반대로 지지층 붕괴의 서막으로도 이어질 수 있는 기로에 있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아직 결론은 명확하게 내려지지 않은 상황이지만 답보 상태에 있는 박 전 대표의 지지율 흐름이나 전통적 지지층의 붕괴 조짐을 볼 때 최소한 그의 지지율에 이상 신호가 감지되고 있는 것만은 부인하기 어려워 보인다.
▲ 지난 16일 친이계 최대 계파 모임인 ‘함께 내일로’는 2010년 상반기 워크숍 및 단합모임을 갖고 세종시 문제 등을 집중 토론했다. 사진은 인사말을 하는 안경률 의원.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
이는 최근 극우 보수층의 박 전 대표에 대한 불만 또는 경고를 통해서도 확인이 된다.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는 최근 세종시 논란과 관련,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보수층에서 박 전 대표에 대한 지지율이 내려가는 대신에 비 한나라당 지지층 가운데 박 전 의원 지지로 도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집토끼’는 놓치고 ‘산토끼’는 잡고 있다는 뜻이다”라고 언급하면서 “박 전 대표는 한국의 보수층이 가슴속에서 쌓아가는 불만을 읽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중략) 이명박 대통령이 (세종시를) 수정하겠다고 하니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고 기다리는데, 그 희망이 박 전 대표의 반대에 의하여 좌절될 때 보수의 분노는 폭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세종시 갈등이 깊어지면서 친이계 일각에서는 “박 전 대표가 세종시 정국을 통해 중도·개혁 노선의 ‘반 이명박 지지층’을 일부 흡수하며 지지율 1위를 이어가고는 있지만, 전통적 지지층의 이탈이 더 큰 악재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것은 곧 박 전 대표의 대선 가도 아킬레스건이기도 하다. 최근 친이계의 한 핵심 전략 관계자는 이에 대해 “우리는 세종시 전투에는 관심이 없다. 어차피 본선이 최종 결승선이다. 박 전 대표가 세종시 정국에서 자신의 전통적 지지층에 대해 너무 맹신하고 있는 것 같다. 가랑비에 옷이 젖는다. 투철한 국가관을 가진 박 전 대표의 전통적 지지층들이 세종시 정국에서 그에 대해 ‘권력의 화신’으로 여기고 실망한 채 서서히 빠져나간다면 분명히 향후의 경선과 대선에 큰 부담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런 시각은 최근 친이계의 일방적 강공책을 부르는 전략적 토대가 되고 있다. 앞서의 전략 관계자와 친이계 의원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친이계가 향후 세종시 정국에서 마지막 승부수로 3가지 전략을 띄울 가능성이 높다. 그것은 ‘갈등 조장’과 ‘타협 시도’라는 양동작전과 함께 ‘국민투표의 최종 관철’이라는 3대 전략으로 종합할 수 있다.
먼저 친이계는 친박계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2월 22일부터 수차례 의총을 강행할 계획이다. 열어봤자 결론은 뻔하다. 일부 친박 의원의 반대 토론이 이어지겠지만 대부분의 친박계가 불참할 것이 예상되는 의총에서 당론 변경은 불가능한 명제다. 그럼에도 친이계는 계속 의총 개최를 주장하고 토론과 타협을 요구할 예정이다. 끊임없이 갈등을 노정해야 그 책임이 계속 ‘묻지마 반대’로 일관하는 박 전 대표에게로 향한다는 점에서 효과적인 전술인 셈이다. 현재의 세종시 정국에 대한 민심은 원안 찬성의 비율이 다시 높아지는 양상인데 이는 6개월 동안의 세종시 전쟁에 대한 민심의 피로증을 대변하고 있다. 어떻게 해서든 끝장을 내라는 주문인 것이다. 하지만 박 전 대표가 토론 자체를 차단하고 있다면 민심, 특히 전통적 지지층은 계속 ‘원천적인 봉쇄’에 대한 책임을 박 전 대표에게 물을 가능성이 높다. 친이계는 계속되는 세종시 갈등이 박 전 대표의 신뢰 있는 지도자상에 타격을 가해 전통적 지지층의 ‘엑소더스’가 일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마지막으로 친이계가 주목하는 부분은 바로 ‘국민투표 적극 추진론’이다. 이는 지난해 11월 초 이미 친이 직계 일각에서 논의된 것(<일요신문> 912호 11월 8일자 보도)이다. 하지만 그 실현 가능성은 극히 낮다. 한나라당이 당론도 정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몇 단계 절차를 건너 뛰어 국민투표로 직행하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법리상의 문제와 함께 이명박 정권의 중간평가 성격을 띠게 돼 그 자체로 자살골이 될 확률도 높다.
하지만 국민투표가 이 대통령의 ‘결단’ 형식으로 전격 공식화될 가능성도 있다. 당론을 만들었는데도 숫자의 힘으로 관련 상임위에서 세종시법을 무한정 지연시키거나 부결시키는 등의 ‘국회 블록 현상’이 생길 경우 이 대통령이 국민투표로 몰아갈 명분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친이계의 한 전략 관계자는 세종시 국민투표에 대해 색다르게 접근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국민투표를 꼭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 세종시 수정안 투표에서 1%라도 찬성률이 높으면 일단 이 대통령의 정치적 승리다. 이와 동시에 박 전 대표는 큰 정치적 역풍을 감수해야 한다. 수정안에 찬성한 사람 가운데는 박 전 대표에 대한 지지층도 많을 것이다. 평소에는 그를 지지하지만 세종시만은 국가 백년대계 차원에서 이 대통령을 지지했다고 설명할 수 있다. 그런데 선거 전문가들에 따르면 ‘특정 사안에 대해 한 번 지지를 바꾼 유권자들은 나중에 다시 투표를 할 때 예전의 박 전 대표 지지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세종시 수정안으로 턴이 된 상황을 그대로 유지해 이 대통령을 지지하게 된다’고 하더라. 이런 투표 패턴을 토대로 보면 세종시 정국에서 지지층을 잃은 박 전 대표는 향후 경선과 대선에서 뛰쳐나간 집토끼를 다시 잡아올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바로 이런 ‘전통 지지층의 원대 복귀 불가능론’이 친이계가 국민투표를 통해 기대하는 전술적 타깃이다.
앞으로 친이계는 의총 등을 거치면서 더욱 깊은 계파 간 갈등을 노정해 박 전 대표를 압박할 것이다. 퇴로가 없는 친박계는 의원직 사퇴 고려 등의 초강수로 최대한 버틸 것이다. 이에 이 대통령은 박 전 대표와의 타협을 포기하고 ‘국민과 직접 대화한다’는 명분으로 국민투표를 전격 제안할 가능성도 있다. 이 과정에서 박 전 대표의 집토끼들이 세종시 전쟁 피로증을 호소하며 울타리를 박차고 나갈 경우 박 전 대표는 이 대통령이 쳐놓은 덫에 걸려들어 경선과 대선 가도에서 헤맬 가능성이 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