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바이럴 마케팅 계정부터 ‘X전깨’ 여혐 광고 논란까지
국내 생산 생리컵 ‘위드컵’이 여성들의 거센 불매 운동에 부딪쳤다. 사진=롯데마트 제공
생리컵은 실리콘 재질의 작은 컵 모양 제품으로 여성이 질 내에 삽입해 생리혈을 받아낼 수 있도록 한 여성용품이다. 국내에서는 앤티온의 위드컵과 미국산 페미사이클 두 제품만이 시판 허가를 받아 판매하고 있다.
불매 운동에 앞장선 여성들이 우선적으로 지적한 것은 위드컵의 제조·판매사인 앤티온이 남성 4명이 운영하는 기업이라는 점이었다. 여성의 신체를 잘 알지 못하는 남성들이 단순히 금전적 이득만을 목적으로 여성 용품을 만듦으로써 실제 여성이 겪는 불편함이나 피해가 개선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위드컵을 써 봤다는 한 여성 이용자는 “실리콘의 두께가 두꺼워서 (질 안에) 빼고 넣는 것이 힘들었다. 기존에 해외 직구하던 생리컵도 그런 문제점이 있었는데, 국내 기업이 생산했으면서도 여성이 직접 점검하지 않아 개선이 되지 않은 게 아닌가 의심스럽다”는 후기를 남기기도 했다. 그 외에도 어떤 테스트를 거쳐 제작됐는지에 대한 정보가 공개되지 않아 소비자들의 불안감을 높였다는 지적이 일었다.
동물 실험을 통해 식약처의 허가를 얻었다는 점 역시 비판의 대상이 됐다. 우리나라에서 의약외품으로 분류되는 생리컵은 안정성·유효성 심사를 위한 동물 실험을 거쳐야 시판 허가가 내려진다. 이를 두고 불매 운동을 진행하는 여성들은 “앤티온 측이 생리컵을 직접 동물의 생식기에 넣어서 실험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이에 대해서 식약처 측은 “동물실험을 거친 것은 맞지만 제품의 안전성과 위험성을 검토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문제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앤티온 측 역시 “생식기에 직접 생리컵을 집어 넣은 게 아니라 검액을 제조한 뒤 동물에 미량 투여해서 생물학적 반응이나 자극성 여부를 실험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위드컵’을 홍보하고 있는 트위터 유령계정들. 사진=트위터
이 계정들은 위드컵에 대한 여성들의 비판이 이어지자 “우리 언니, 여동생, 사돈의 팔촌이 직접 써 봤는데 착용한 줄도 모를 정도로 좋더라”라며 “괜히 남자들이 만들었다는 이유로 남혐(남성혐오)하면서 불매 조장하지 말고 ‘개념 페미(페미니스트)’ 하자”라며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매의 목소리가 더욱 높아지자 이들 바이럴 마케팅 계정이 불매 여성들에게 “민심동요죄, 유언비어 살포, 무고죄, 근거없는 경쟁사 제품 홍보 등 위반 조항이 적용된다”며 협박(?)에 나서는 모습을 보여 더 큰 논란을 낳았다. 여기서 말한 ‘근거없는 경쟁사 제품 홍보’란 불매 여성들이 위드컵이 아니라 여성 기업이 제작·판매를 준비 중인 ‘루나컵’ 등 대체 생리컵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위드컵 불매 운동을 진행하고 있는 한 20대 여성은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앞서 생리컵 제작·판매를 준비하던 여성 기업들은 동물 실험을 하지 않는 대신 원재료의 안정성 입증 서류를 모아 제출하는 방식을 선택하다 보니 식약처의 허가가 늦게 떨어졌다. 그 틈을 타서 생리컵 시장이 돈이 될 것을 노린 남성들이 틈새를 파고 든 것이 아니냐”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당연히 소비의 주체가 여성이기 때문에 여성에게 불편한 것을 당당히 지적할 수 있으며, 기업은 이를 받아들여서 개선에 나서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단체 행동이 마치 남혐인 것처럼 몰고 가는 바이럴 마케터는 물론이고 침묵을 지키고 있는 앤티온 측도 현실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앤티온 측은 불매 논란이 불거진 지 보름 가까이 지났으나 공식적인 대응은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공식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계정에 “위드컵을 개발하기 위해 여성 전문 컨설턴트 분들과 실리콘 전문가 등 여러 분들의 자문을 받아 출시했다. 약 19개월에 걸쳐 식약처의 허가를 받았으며 기관 투자나 대기업의 지원 없이 순수한 개인출자로 출범한 것”이라는 짧은 공지사항을 올리는 것으로 입장 정리를 대신했다.
여혐 단어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논란을 낳은 위드컵의 버스 광고. 사진=트위터
다만 가장 최근 문제가 된 위드컵의 버스 광고에 대해서는 직접 언론에 해명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위드컵은 ‘새로운 발견’이라는 문구와 함께 생리컵과 전구가 함께 있는 이미지를 광고에 삽입했다. 이 이미지가 ‘X전깨(여성의 신체 부위에 전구를 집어넣고 깨고 싶다는 욕설)’를 떠올리게 한다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앤티온 측은 “새로운 형식의 생리대라는 의미에서 새로운 것을 떠올리는 모양인 전구를 사용한 것”이라면서도 “소비자들의 의견을 수용해 빠른 시일 내에 수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위드컵의 유통을 맡고 있는 기업들은 불매 운동에 대해 “당황스럽다”는 입장을 밝히면서도 구체적인 대책 마련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는 분위기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여성용품 이용자 가운데 90%가 일반 패드형 생리대를 이용하는데 이들로 하여금 생리컵을 구매하도록 홍보하는 것도 어려운 판에 불매 운동까지 벌어졌으니 경계하지 않을 수가 없다”라면서도 “다만 아직은 판매 초기이기 때문에 유통사나 판매업체들이 곧바로 판매를 철회한다든지 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조금 더 기다려 보자라는 입장”이라고 귀띔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