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김지은 전 수행비서도 방청…안 전 지사와 대면 없이 재판 내용 필기만
‘비서 성폭행’ 혐의를 받고있는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2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첫 재판을 위해 출석하고 있다. 사진=고성준 기자
2일 오전 11시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조병구) 심리로 열린 재판에는 피해자인 김지은 전 수행비서(33)도 참석해 방청했다. 이날 김 씨는 방청석 맨 앞 자리에서 재판을 지켜 보며 법정에서 오간 모든 대화를 필기했다. 그러나 안 전 지사와 직접 대면하거나 눈을 마주치는 일은 없었다.
안 전 지사는 피감독자 간음·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강제 추행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수행비서인 김 씨를 지난해 7월부터 올해 2월까지 4차례에 걸쳐 성폭행하고, 비슷한 기간 5차례에 걸쳐 강제 추행한 혐의로 지난 4월 11일 불구속 기소됐다.
이날 검찰은 “차기 대권주자라는 막강한 권력과 상명하복의 위계질서를 이용한 전형적인 권력형 성범죄”라며 “마치 덫을 놓고 먹이를 기다리는 사냥꾼처럼 술담배 심부름을 빌미로 늦은 밤 피해자를 불러 들여 성폭행했다”고 공소사실을 밝혔다.
특히 김 씨가 안 전 지사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는 지위에 있었다는 점을 들며 “(안 전 지사를)수행할 때 거슬리게 해서도 안 되는 수직적인 업무 환경이었다”고 강조했다. 검찰에 따르면 대선 캠프에서 김 씨의 업무는 ‘노예’로 불릴 수준으로 두 사람의 관계가 비대칭적이었다는 것.
반면, 안 전 지사 측의 변호인단은 성관계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위력에 의한 것이거나 강제, 기습 추행이 아니다”라며 수직이 아니라 수평적인 연인 관계 사이에서 발생한 일임을 강조했다.
변호인 측은 “위력이 존재했다고 한다면 성적 자유의사를 제압하기 충분한 물리적, 정신적인 힘의 행사가 있어야 한다”라며 “단지 차기 유력 대선후보로 거론될만큼 정치적, 사회적 지위가 있다고 해서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로 이어진다고 말 할 수 없다”고 맞섰다.
이어 “김 씨는 성폭력 범죄 피해자로 볼 수 없는 객관적인 정황과 여러 태도를 보였다”라며 “이성간의 성관계나 스킨십이 무조건 성폭력이 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특히 김 씨가 “공무원 지위를 버리고 자신의 정치적 미래를 위해 무보수 자원봉사 자리로 옮긴 주체적이고 결단력 좋은 여성”이라며 “그런 여성이 성적 자기결정권이 제한된 상황에 있었다고 보는 건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날 재판 전에 피해자인 김 전 비서를 지원하는 ‘안희정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의 기자회견도 이어졌다.
안희정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가 2일 서울서부지법 앞에서 ‘사법부의 정의로운 판결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김태원 기자
이날 회견에 참석한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피고인 안희정은 3월 6일 새벽 페이스북을 통해 ‘저의 어리석은 행동에 대해 용서를 구한다.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는 비서실의 입장은 잘못”이라며 성찰적인 입장을 취하더니, 곧바로 말을 바꾸어 ’합의 하에 한 행동‘이라며 전면전을 펼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는 ”우리는 이번 안희정 성폭력 사건의 재판 과정과 판결을 똑똑히 지켜볼 것“이라며 ”피해자의 인권을 분명히 보장하고, 가해자가 한국 사회의 불평등한 성별관계에 기반하여 위력에 의한 성폭력 범죄임을 제대로 규명하고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지막으로 임윤옥 한국여성노동자회 상임대표는 ”이 재판 결과는 안희정을 처벌하는 ’한 개의 사건‘이 아니다. 권력이 없어서, 빽이 없어서, 부모가 잘 살지 못해서, 수많은 아르바이트와 비정규직, 계약직 등 낮은 지위로 일하고 있는 여성 노동자들이 이 재판의 결과를 주목하고 있다“며 ”재판부에 진심으로 부탁드린다. 아무리 강력한 차기 대권주자라는 권력을 가졌다해도 그 권력이 정의롭지 않을 때 법 앞에 평등하다는 것을 재판 결과로 보여 달라“고 호소했다.
한편, 이날 재판은 오후 2시 다시 개정된다. 오후 재판에서는 제출된 서증 가운데 공개 가능한 증거에 한한 조사가 이뤄질 예정이다. 또 안 전 지사의 집중 심리는 이날을 기점으로 오는 16일까지 총 7회 진행된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