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무자들 직접 갑질 제보, 시시각각 언론에 보도돼…‘연대문화 신세계’ 기업들 바짝 긴장
아시아나 직원연대의 익명 채팅방 사진 캡처.
아시아나항공의 노밀(No Meal)사태에 대한 구체적 제보 및 상황이 보도되며 그 밖에도 경영실태에 대한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이 바탕에는 아시아나항공 직원들이 만든 제보방이 근간이 됐다. 아시아나 직원들은 항공사의 불합리한 경영구조 및 악습들에 대해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직원 스스로가 나섰다.
‘침묵하지말자’는 이름으로 시작된 아시아나 직원들의 채팅방은 현재 3개 이상 개설돼 있다. 카카오톡의 오픈채팅이 방 하나당 1000여 명까지 수용 가능해 여러 개의 방이 개설된 것. 채팅방에는 아시아나 직원은 물론, 금호그룹 계열사 직원, 일반시민, 공항직원, 저가항공사 직원, 기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
주된 내용은 서로가 겪은 불합리한 일들에 대해 교류하고 아시아나 정상화를 위해 긍정적인 방향을 모색하는 것이다. 1000여 명의 인원이 익명으로 대화를 나누는 채팅방에서는 자칫 분란이 벌어질 수도 있지만 그때그때 서로 방향을 잡으며 직원연대 존재 의미를 되새긴다. 의기투합한 직원들의 비리 제보 및 의견 교환은 집회로 이어졌다. 지난 1일 발생한 노밀사태에서 6일 ‘경영진 교체와 기내식정상화 촉구 문화제’가 이뤄지기까지 빠른 시일 내 직원과 시민이 의견을 모을 수 있었던 것은 앞서 대한항공의 사례가 학습효과가 된 부분도 있다.
대한항공 역시 직원들의 익명채팅방에서 오너 일가의 비리 제보가 이어지고 집회를 통해 국민적 관심을 받았다. 실제로 조양호 일가의 불법밀수 의혹과 각종 경영비리는 채팅방에서 불거지고, 직원들의 적극적 제보 덕에 세상에 알려졌다. 이 때문에 익명채팅방은 새로운 직원연대 문화로 자리잡아간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시아나 직원연대 경우 대한항공을 비롯한 항공업계 종사자들이 온오프라인에서 지원사격을 통해 힘을 보탰다.
익명 채팅방에서 이뤄진 의혹들은 소위 ‘집단지성’을 통해 크로스체크가 가능하다. 기내식 대란 사태의 경우 아시아나 사측이 정상화됐다고 주장하더라도 일선에 있는 항공승무원과 승객의 실시간 확인이 가능해 사실 여부가 가려진다. 승무원, 정비, 조종사, 일반관리직 등 항공사의 실무를 담당하는 직원들이 채팅방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현장의 소식을 즉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지금까지 아시아나 직원들의 채팅방에서는 취업규칙 변경 시 했던 사측의 갑질, 기내식대란이 벌어진 기내식 업체와의 불합리한 계약, 정비 부품 돌려막기 문제, 노동자들의 불합리한 노동시간 등에 대한 의혹이 제기됐다.
직원들로서는 회사의 부조리한 부분을 익명으로 제보하고 또 생각을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 오픈채팅방 참여에 부담을 적게 느낀다. 한 금융사 관계자는 “노조 게시판 등을 윗선에서 주시하고 있다는 걸 안다. 그런데 오픈채팅방 같은 경우는 신분이 철저히 감춰지고 그 파급력이 큰 데도 간부급에서 제대로 인지조차 하지 못하고 있어 사용자에게는 장점”이라고 말했다.
익명제보가 직원연대의 새로운 문화로 자리매김해 기업 노무담당자는 긴장감을 더욱 높일 수밖에 없다. 그간 조사담당자는 노동조합 가입자나 노조 간부를 주시하면 됐었다. 하지만 노조가입여부나 신분을 밝히지 않고도 사측에 대한 불만을 제기할 수 있는 오픈카톡방은 제재가 불가능하다.
대한항공 갑질 비리가 터져 나올 당시 한 정보경찰은 “오픈채팅이라는 신세계를 발견했다. 실무자들이 직접 비리를 제보하고 시시각각 언론에 보도돼 사회 큰 파장을 일으킬 힘이 된다”고 말했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