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고사 앞두고 손발이 따로 놀아
▲ 이동관 청와대 수석이 세종시 문제에 대해 ‘국민투표’를 의미하는 발언을 한 뒤 여권 지방선거 전략에 차질을 빚고 있다. | ||
일단 한나라당은 수도권 3곳(서울·경기·인천)과 강원, 제주가 이번 선거의 승패를 좌우할 것으로 전망한다. 특히 수도권에서만 싹쓸이 내지는 2승 1패가 될 경우 사실상 승리로 규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선거 전략팀은 수도권에 화력을 집중할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여당의 수도권 압승 전략은 수립도 하기 전에 여러 곳에서 파열음이 들리고 있다. 특히 여당 핵심부는 수도권 현직 단체장들의 경쟁력이나 신선함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고 판단, 교체를 심도 있게 검토하는 등 제로베이스에서 이번 선거를 접근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이명박 정권의 지방선거 전략이 삐걱거리는 속사정을 쫓아가봤다.
“모든 게 이동관 홍보수석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지방선거 전략 수립에 깊숙이 관여하는 한 인사는 ‘선거’라는 말이 나오자 몹시 흥분했다. 이 관계자는 여당의 지방선거 전략 수립을 묻는 질문에 대해 “세종시 전쟁 승리와 지방선거 수성을 위해 국민투표 카드가 심도 있게 논의됐던 게 사실이다. 그동안 이를 숨겨놓고 가능성 여부를 검토하며 숨을 죽이고 있었는데 이동관 홍보수석이 일부 기자들에게 국민투표를 의미할 수 있는 말(‘세종시 문제가 지지부진하면 중대 결단을 내릴 수도 있다’)을 하는 바람에 판이 다 깨져버렸다. 우리나 청와대 모두 지금 멍해져 있고 아노미 상태다. 전략도 틀어졌고, 다음 카드는 찾지 못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또한 이 관계자는 “국민투표라는 카드는 안 쓸 수도 있었고 단지 가능성의 하나로서 협상 카드도 될 수 있었는데 써보지도 못하고 허무하게 날아가 버렸다. 당분간은 여론이 식기를 기다려야 한다. 갑자기 국민투표가 화두로 올라오면서 판이 이상하게 흔들렸다. 국민투표 카드 뒤에 무슨 음모가 있는 듯 일이 점점 더 꼬여가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사실 청와대를 비롯한 친이 핵심부에서는 세종시 수정안 통과와 지방선거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유일한 카드로서 국민투표를 진지하게 논의했다(4~5면 기사 참조). 앞서의 관계자 말을 종합해 보면 여권의 전격적인 국민투표 카드는 그 실시 여부를 떠나 공론화 과정을 통해 수도권에 ‘숨어 있는’ 세종시 수정안 찬성론자를 하나로 묶어 이명박 대통령 지지 세력을 결집시키는 동시에, 지방선거에서도 그 ‘숨은’ 표심이 수도권 단체장 지지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했다는 것이다. 국민투표 카드는 일종의 외곽 때리기였던 셈이다. 꼭 실시하지 않더라도 그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표의 비타협적인 정치행위가 부정적으로 부각되면서 그 표심이 자연스럽게 경선과 대선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고 볼 수 있다.
동시에 오피니언 리더들을 중심으로 세종시 수정안에 찬성하는 국민들이 의외로 많기 때문에 국민투표 정국을 거치면서 그 표심이 친이 성향의 후보 지지로 이어질 것이라고 기대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기대’가 이동관 수석의 한마디에 허무하게 무너졌다며 안타까워하고 있는 것이다. 일단 이 수석은 국민투표의 ‘국’자도 꺼내지 않았다며 강하게 부정하고 있지만 여당의 지방선거 전략팀 일각에서는 이 수석의 ‘눈치 없는’ 한마디에 선거 전략 수립 자체가 난망해지고 “판이 다 깨져버렸다”며 혀를 차고 있다.
한나라당의 한 소장파 의원은 이에 대해 “국민투표 카드가 공식적인 창구를 통해 진지하게 제시됐다면 여론 흡입력이 있었을 것인데 ‘익명의 여권 핵심부’라는 음모론적인 이미지로 먼저 터져 나오면서 그 신선함이 모두 상실됐다. 공론화되기도 전에 누더기가 된 국민투표를 앞으로 누가 이야기한다고 해도 여론이 그 진정성을 쉽게 받아들이지는 못할 것이다. 국민투표는 사실상 소멸 직전까지 간 것으로 봐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현재’라는 단서를 달긴 했지만 죽은 카드를 다시 살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선거를 준비하는 여당의 또 다른 골칫거리는 수도권 현직 단체장들의 경쟁력이다. 특히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경우 현재로선 여론조사에서 앞서 있지만 야당의 단일 후보에게 역전될 가능성이 높아 선거 전략팀에서 ‘교체’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서울과 경기도는 지난 1995년 민선 지방자치 첫 선거가 실시된 이래 재선을 기록했던 단체장들이 없었다는 점에서 더욱 교체 쪽에 무게가 실리고 있는 분위기다.
▲ 오세훈 서울시장(왼쪽)과 김문수 경기도지사. | ||
김문수 경기지사의 경우 당내 경쟁자는 거의 없지만 현 구도로 쉽게 당선된다는 보장도 없다는 게 선거 전략팀의 시각이다. 최근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출마 의사를 내비치면서 선거 구도가 ‘수구 대 개혁’ 쪽으로 갈 경우 지난 경기도 교육감 선거 때처럼 쉽지 않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최근 김 지사 쪽에서 “선거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라고 말하며 긴장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현 상황이 ‘일반적인 선거 패턴’(새로운 인물이 옛 인물을 따라잡아 극적으로 당선되는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인천의 경우도 안상수 현 시장이 3선을 향해 거의 독주를 하고 있지만 민주당에서 3선의 송영길 의원을 내세울 뜻을 비치자 지역 민심도 요동치고 있다는 전언이다. 아직 후보로 확정되지도 않았는데 안상수 시장과 송 의원의 지지율이 10%p(포인트) 차이로 좁혀졌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본격적인 선거 국면으로 들어가면 역전될 가능성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처럼 여당 일각에서 현 단체장 후보들에 대해 ‘신뢰’를 하지 못하는 배경에는 ‘숨어 있는 지지율’이라는 변수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이 대통령 지지율이나 여당 후보들의 지지율에 ‘거품’이 끼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최근 민주당에 입당한 참여정부 시절의 김창호 전 국정홍보처장은 최근 이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과 관련, “이명박 정부 들어서 우리의 감각과 여론조사 결과가 한 10%p, 많게는 20%p 이상 차이 나는 경험들을 하고 있다”며 부풀리기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수도권 당 후보들에 대한 높은 지지율도 냉정하게 볼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최근 민주당 일각에서는 “경기지역의 언론 연합단체가 지방선거와 관련해 ARS 방식이 아닌 직접 대면방식으로 비공식 여론조사를 했는데 지금까지 공개된 여타 여론조사 기관들과는 다른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경기도의 경우 김문수 지사와 김진표 의원의 지지율 차이가 표본오차 정도로 줄어들었다는 결과도 있었다”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는 전언이다.
한나라당의 선거 전략팀 일각에서 현재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각종 여론조사의 ‘허상’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는 것도 민심과 지지율에 대한 ‘온도차’ 때문일 것이다. 특히 이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만으로 수도권에서의 선전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는 얘기가 많다. 그래서 지방선거 전략을 기획하고 있는 팀 일각에서는 이러한 현재의 여론조사 지표 뒤에 ‘숨어 있는 지지율’도 반영해 현직 단체장들의 경쟁력을 재평가한 뒤 가능한 새롭고 신선한 카드로 나서야 나중에 역전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이에 대해 “그동안 각 언론사의 여론조사 결과가 터무니없이 차이가 났던 것은 응답을 유보하는 층이 많았고, 질문 내용도 달랐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나 원안 대 수정안의 찬반 비율만 가지고 지방선거 결과를 예상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그동안 답변을 유보했던 층의 표심이 과연 어디로 향할지가 이번 지방선거의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여권 일각에서는 이번 지방선거를 희망적으로 보기도 한다.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역대 최고 수준인 40%대를 상회하기 때문에 중간평가 성격으로 지방선거가 치러지더라도 참패는 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가 그것. 사실 역대 정권의 지방선거가 중간평가로 규정된 배경에는 당시 대통령들의 지지율이 집권 3년차를 고비로 하향세에 접어들었기 때문이었다. 김영삼 정부 3년차에 치러졌던 1995년의 제1회 6·27 지방선거, 국민의 정부 5년차에 치러졌던 2002년의 제3회 6·13 지방선거, 참여정부 4년차에 치러졌던 제4회 5·31 지방선거의 결과는 모두 집권당의 참패로 끝이 났다.
이명박 정권도 이 패턴에서 보면 ‘참패’가 예상된다. 하지만 앞서의 선거 패턴과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바로 이 대통령의 ‘독보적인’ 지지율 고공행진이다. 집권 3년차를 넘기는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이 시기의 역대 어떤 대통령보다 높기 때문에 이번 지방선거에서 ‘정권 중간평가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시각이 성립하려면 이 대통령 지지율의 ‘거품’에 대한 실체가 먼저 규명돼야 한다. 그런 까닭에 ‘제 논에 물대기’식의 안일한 자세가 지방선거의 패배로 이어질 것이라는 여권 내 경고음이 오히려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나라당에게 수도권 압승은 지방선거 승리를 주장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다. 하지만 국민투표를 통한 돌파구 마련 전략이 차질을 빚고, 거품이 낀 여론조사를 맹신하는 허술함도 노정하고 있다. 여기에 야당이 ‘경기도-유시민, 인천-송영길’의 양 날개로 서울을 칠 경우, 수도권 전패라는 최악의 결과 앞에 이명박 대통령이 무릎을 꿇을 수도 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