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겪어봐야 현실 직시할 수 있다는 의미지만 자성하는 자리에서 왜 그런 애길 꺼냈나”
“그 친구들은 우리나라에서 축구로 많은 혜택을 받은 사람들이다. 현장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경험했으면 좋겠다. 꼭 현장 지도자나 감독으로 경험을 한다면 해설 내용이 깊어질 것 같다. 그런 훌륭한 사람들은 여기(협회)에서 일했으면 좋겠다. 문이 열려 있다.”
일요신문 DB
“홍 전무의 발언 내용은 대부분의 축구인들이 공감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타이밍이 안 좋았다. 기자들과의 간담회는 러시아월드컵 결과를 두고 협회에서 자성과 대안을 제시하는 자리였다. 그런 상황에서 안정환, 이영표, 박지성의 이름을 거론했다는 건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A 씨는 타이밍의 아쉬움은 있지만 홍 전무가 누구보다 후배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꺼낸 얘기라는 말도 덧붙였다.
“홍 전무는 해설하는 후배들이 잘못됐다고 지적한 게 아니다. 중계석에서 마이크를 잡고 그라운드를 내려다보지만 말고 현장에 와서 현장의 어려움을 겪어보라는 의미였다. 그래야 해설의 깊이가 더해지고, 축구계 현실을 제대로 직시할 수 있을 거라는 내용이었다. 홍 전무의 말대로 2002년 월드컵 이후 가장 많은 혜택을 받은 이들이 바로 3명의 해설위원들이다. 그들은 월드컵을 통해 해외 진출에 성공했고 부와 명성을 얻었다. 반면에 홍명보, 황선홍 등은 2002년 월드컵을 통해 스타가 된 게 아니라 그 이전부터 여러 차례의 월드컵을 경험했고 성장하다 2002년 월드컵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즉 태극마크를 달고 뛰면서 고생을 많이 했던 세대들이고 그 경험을 지도자로 활약하며 풀어냈다. 홍 전무는 그런 점에서 현장 밖에서만 돌고 있는 후배들에게 의미 있는 조언을 건넸던 것이다. 단, 타이밍이 안 좋았다.”
감독 출신인 축구인 B 씨는 좀 더 자세한 설명을 곁들였다.
“축구대표팀을 통해 이름을 알린 홍명보, 황선홍, 최용수, 서정원 등은 대표팀이나 클럽을 맡아 지도자 인생을 시작하면서 한국 축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설기현은 성균관대 감독으로 활동 중이다. 그런데 월드컵의 활약을 바탕으로 해외 진출에 성공한 이영표, 박지성은 대표팀을 은퇴하는 과정이나 방법은 물론 선수 생활 은퇴 후에도 한국 축구의 이방인으로 겉돌고 있다. 박지성이 축구협회의 유스전략본부장이란 타이틀을 달았지만 그가 직접적으로 현장을 다니며 현안을 챙기지는 않는다. 비상근직이 수락 조건이었다. 또한 지도자는 절대 하지 않을 거란 얘기를 인터뷰를 통해 여러 차례 강조했었다. 이영표는 어떠한가. 그는 협회 언저리에도 머물러 있지 않는다. 협회가 내민 제안을 거절하기도 했다. 안정환은 축구 경기장이 아닌 방송 예능 프로그램 출연으로 더 인기를 얻고 있다. 한국 축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선수 출신들이 현장이 아닌 외부에서 한국 축구를, 한국 축구의 시스템을 비판하고 쓴소리를 가하고 있으니 그게 축구인들 입장에서는 불편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홍명보 전무는 그걸 지적하고 싶었던 것 같다.”
전북 현대 최강희 감독은 이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3명의 해설위원들에게 다음과 같은 당부를 나타낸 바 있다.
“대표팀과 해외 리그에서 최고의 경험을 했던 선배들 아닌가. 박지성은 유스전략본부장으로 일하지만 다른 두 사람도 어떤 형태로든 한국 축구를 위해 같이 고민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그들의 행동 하나, 말 한 마디가 나 같은 비인기 감독보다 더 파급력이 있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쌓은 경험과 기술이 여러 가지 형태로 한국 축구에 스며들었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기성용, 손흥민 등 나이 어린 친구들이 떠안은 짐들, 부담들이 조금은 덜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과연 3명의 해설위원들만 문제일까. 이들이 협회에서 일할 수 있게끔 협회가 진취적인 움직임을 보여줬느냐 하는 부분에선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최강희 감독은 축구협회가 지난해 11월 제법 큰 폭의 인사를 단행하면서 전무이사 홍명보, 대표팀 감독선임위원장(부회장) 김판곤, 부회장 최영일, 기술위원장 이임생(사퇴), 유스전략본부장 박지성 등 새로운 얼굴들을 대거 협회 임원에 앉혔지만 이후 어떤 변화가 있었느냐고 되물었다.
“당시 협회가 여론에 질타를 맞는 상황에서 신선한 변화를 꾀한 건 인정하지만 과연 새로운 인물들이 협회로 들어가 어떤 일을 했는지 궁금하다. 협회는 ‘이름’만이 아니라 그들이 갖고 있는 노하우와 커리어를 현안에 접목시킬 수 있게끔 판을 깔아줘야 한다. 협회에선 자신의 소신대로,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며 일하기 어려운 분위기다. 잘 진행되던 일들도 회장 한마디에 백지화되는 일이 부지기수다. 몇 사람 바꾼다고 해서 조직의 문화와 색깔이 바뀌진 않는다. 협회는 이걸 진심으로 고민해야 한다. 한국 축구를 진정으로 위한다면 말이다.”
사진 제공 : SBS. KBS, MBC
축구인 A 씨는 홍명보 전무가 협회 행정을 맡으면서 안정환, 이영표, 박지성의 도움이 필요했을 거란 말도 덧붙였다.
“홍 전무는 시간 날 때마다 아마추어 축구 현장을 찾아다닌다. 협회 전무가 프로도 아닌 아마 축구를 챙기는 걸 보고 오히려 아마 축구 관계자들이 의아해 했을 정도이다. 홍 전무도 협회 행정을 배우고 익히면서 축구계에서 영향력 있는 후배들이 지도자나 아니면 협회로 들어와 함께 일을 하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그 아쉬움이 기자 간담회 자리에서 표출된 것이다. 갑자기 생각나서 내뱉은 말은 아니었다.”
축구인 B 씨는 러시아월드컵 이후 1989년생 기성용, 구자철 등이 대표팀 은퇴를 시사한 부분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했다. 태극마크는 달기도 어렵지만 그걸 내려놓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부터 대표팀 선수들은 부상으로, 체력 난조로 더 이상 대표팀에서 뛰기 어렵다는 말을 먼저 꺼낸다. 그러고선 소속팀에서 활발한 활약을 이어간다. K리그로 돌아올 생각도 안한다. 프리미어리그가 안 되면 유럽 리그, 미국 축구까지 떠돌다 거기서 은퇴한다. 그들이 경험한 소중한 자료들은 그들만의 경험으로 남는다. 진심으로 한국 축구를, K리그를 위한다면 어떤 형태로 자신들의 경험을 활용해야 하는지를 고민했으면 좋겠다. 대표팀 은퇴를 생각하는 선수들이 있다면 마흔 살 이동국이 전한 메시지를 곱씹어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이동국은 대표팀 은퇴 관련 질문을 받을 때마다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선수로 뛰는 동안 축구대표팀 합류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겠다. 선수로 은퇴하는 것만이 대표팀을 포함해 모든 것이 멈추는 순간이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