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왕따’시킬 전국정당 꿈틀꿈틀
▲ 한나라당 내 친이계 최대조직인 ‘함께 내일로’가 지난달 26일 오후 김영삼 전 대통령을 초청해 이명박 정부 출범 2주년 기념 간담회를 가졌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
지난 2월 말 서울 삼청동의 한 음식점에 여권에서 ‘전략가’로 통하는 몇몇 인사들이 모였다. 현 정권 실세로 불리는 A 씨를 비롯해 한나라당 친이계 의원 보좌관, 인수위에 참여했던 대학교수, 이 대통령 후원 조직의 간부 등이 참석했다. 모두 이명박 대통령 대선캠프에 몸담았던 경력이 있는 이들이었다. A 씨의 한 측근은 “오랜만에 식사나 하자고 A 씨가 주도해 모인 자리였다. A 씨가 먼저 정계개편 얘기를 꺼냈고 밤늦도록 이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참석자 모두 (정계개편)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뒤 다시 만나기로 했다”고 전했다.
이처럼 친이 내부에서 정계개편론이 흘러나오고 있는 것에 대해 여의도 주변에선 현 정치구도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현재 한나라당은 169석으로 과반을 훨씬 넘는 의석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친박 의원(55~60석)을 고려하면 ‘여대야소’는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오히려 ‘여소야대’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세종시 정국에서 친박계는 사실상 야당 역할을 했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친이 측은 이러한 ‘불안한 동거’가 이 대통령 집권 후반기 국정운영 동력을 떨어트릴 것이란 우려를 하고 있다. 친이계의 한 수도권 의원은 “세종시처럼 박 전 대표에게 매번 발목이 잡히면 이 대통령 레임덕이 가속화될 것이다. 4대강 사업, 개헌 등 남아 있는 과제들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뭔가 특단의 대책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단의 대책’에 정계개편이 포함되느냐는 질문에 그 의원은 “최우선적으로 고려해 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되묻기도 했다.
한국정치사를 돌이켜봐도 정계개편은 여소야대 정국을 돌파할 여권 주류의 ‘히든카드’로 자주 등장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지난 1990년 있었던 ‘3당 합당’이다. 1987년 대선에서 승리한 노태우 대통령은 이듬해 총선에서 민정당이 과반 확보에 실패하자 1990년 김영삼의 통일민주당과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을 합쳐 거대 여당을 탄생시켰다. 고 노무현 대통령 역시 지난 2005년 재·보궐 선거 참패로 열린우리당 의석수가 과반에 미달되자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제안하기도 했었다. 여의도의 한 정치 컨설턴트는 “정계개편은 성공하기만 하면 국면을 전환하고 정치지형을 뒤바꿀 수 있다. 지금처럼 박 전 대표 독주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을 깨는 방안으로 정계개편만 한 것이 없을 것”이라면서 “정치권이 올해 안에 정계개편 소용돌이에 휘말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치권에서도 현재의 정치 구도가 2012년 대선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견해는 드물다. 여권 주류가 어떤 식으로든 정계개편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는 것. 앞서 언급했던 여권 전략가들의 만남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당시 참석자 중 일부는 그 후 청와대 정무라인과 의견을 조율해 정계개편의 구체적인 밑그림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공식적인 것은 아니지만 여러 대안 중 하나로 검토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 “만약 (정계개편이) 추진된다면 그 시기는 지방선거가 끝난 직후가 될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유력주자인 박 전 대표에게로의 ‘쏠림 현상’이 나타날 수 있어 정계개편 효과가 반감될 것이란 지적이 나왔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세종시, 지방선거 등 현안 이슈가 산적해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여권 내부에서 정계개편 논의에 가속도가 붙고 있는 것도 이 연장선상에서 받아들여야 할 듯하다.
▲ 심대평 의원, 한화갑 전 대표 | ||
여권 실세 A 씨 측근은 “이들 신당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급조된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불식시키고 지난 총선의 친박연대(현 미래희망연대)처럼 돌풍을 일으킨다면 (우리와) 함께할 수 있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이 경우 충청과 호남을 묶는 ‘소 DJP 연합’을 빅뱅의 시발점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화갑 전 대표 측근은 “(향후의)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밝혔고, 심대평 의원 측 역시 “아직은 먼 얘기”라면서도 “독자 행보보다는 정치세력화에 나서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지방선거 결과 및 여권과의 정계개편 협상에 따라 한 배를 탈지 결정할 수도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그 다음 단계는 김영삼 전 대통령(YS) 가신그룹인 상도동계와 한나라당 중도파, 친박 의원들의 규합이다. 범여권에 속하긴 하지만 친이로는 분류되지 않았던 인사들을 모으겠다는 전략이다. 이미 상도동계는 친이 쪽으로 기운 듯한 스탠스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정계개편 2단계에서는 ‘친박계 끌어들이기’에 전력이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
최근 김 전 대통령은 연이은 ‘친MB 발언’으로 화제를 모았는데, 자신을 따르는 정치인들에게도 이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고 한다. 상도동 출신의 한 현직 의원 보좌관은 “김 전 대통령이 이 대통령을 중심으로 정권을 재창출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이는 곧 박 전 대표는 안 된다는 것 아니겠느냐. 상도동 출신 중에는 친박도 상당수 있는데 그들이 곤란해 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한때 대표적인 ‘YS 문하생’으로 불리다 지금은 박 전 대표 ‘복심’으로 통하는 이성헌 의원 등 친박계 의원들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기도 하다. 친박의 한 중진급 의원은 “이 대통령은 YS가 나서서 친박을 분열시켜주기를 바라는 것 같다”며 “그러나 차기가 유력한 박 전 대표와 전직 대통령인 YS 중 누구를 따를지는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답이 금방 나오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친박 측에서는 친이 주류가 정계개편을 추진하는 것을 경계하면서도 한편으론 계파 의원들을 압력과 회유로 빼내갈 것을 우려하는 분위기가 엿보인다. 한 친박계 의원은 “실제로 당 내부에서 한바탕 폭풍이 일 것 같은 조짐이 느껴진다. 이미 청와대 내에선 정계개편 안이 준비 중이라는 말도 들린다. 사정기관을 동원한 친박 의원 빼가기가 기승을 부릴 것”이라고 말했다.
박 전 대표 자문그룹에 속해 있는 한 인사는 “세종시 정국 전부터 친이가 정계개편에 나설 것이란 예측을 했었다. 정치인은 힘이 센 쪽으로 쏠리게 마련인데 레임덕을 앞둔 이 대통령이 추진하는 정계개편에 누가 호응하겠느냐. 반면 박 전 대표가 세력 확대에 나서면 그야말로 거대한 지각변동이 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권 주류는 이러한 ‘헤쳐모여식 정계개편’이 명분도 없는 이합집산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올 것을 감안해 ‘개헌’을 최대한 활용할 계획이라고 한다.
즉, 권력구조와 통치형태 개혁이라는 ‘대의’를 위해 영·호남·충청·수도권이 손을 잡는 모양새를 취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 이들의 노림수는 ‘박 전 대표 고립’으로 귀결된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이상득계 의원의 한 보좌관은 “양측 갈등이 아무리 격해져도 친이가 나가면 나갔지 박 전 대표는 안 나갈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은 문제는 박 전 대표와의 경선에서 어떻게 하면 승리할 수 있느냐다. 유력한 대선주자가 없는 친이로서는 최대한 당내 세력을 확장해야 한다. 정계개편이 전국정당을 목표로 하고는 있지만 결국 ‘반 박근혜 인사’들을 많이 모아 차기 대선을 준비하는 것으로 봐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나라당 ‘최대 주주’인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 라인의 한 정치인 역시 정계개편과 관련해 “결국 하반기 치러지는 전당대회 때문 아니겠느냐”면서 “박 전 대표 빼고는 누구든 차기가 가능하다는 게 친이의 인식이다. 앞으로 정계개편이 현실화될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박 전 대표 독주를 막기 위해서라도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귀띔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