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차 등 단점 아닌 장점 부각 시장 스스로 선택케, 한번 수립된 계획은 정권 바뀌어도 계속”
덴마크는 자전거를 이용한 출퇴근, 통학 비율이 50% 이상일 정도로 친환경이 몸에 배어 있다. 코펜하겐 시내 모습. 사진=일요신문 특별취재팀
지난해 7월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구성 및 운영에 관한 규정’을 제정하고 시민참여단 500명을 선정해 이들이 토론한 뒤 정부에 정책을 권고하기로 했다. 결국 10월 시민참여단은 고민 끝에 찬성 59.5%, 반대 40.5%로 ‘신고리 5·6호기의 건설을 재개하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 같은 결론으로 탈원전 정책은 전면 재검토로 선회했다.
탈원전 정책만으로 큰 진통을 겪은 우리나라와 달리 2050년까지 화석연료마저 퇴출시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운 나라가 있다. 물론 부존자원, 산업기반, 인구, 지정학적 위치, 1인당 GDP 등 모든 것이 다르지만 과연 어떤 나라가 화석연료마저 퇴출시키겠다는 계획을 세웠는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이 나라가 바로 덴마크다.
덴마크 정부는 2011년 2월에 ‘2050년을 향한 에너지전략’에 관한 보고서를 소개했는데 이 보고서는 놀랍게도 2020년까지 화석연료 사용을 2009년 대비 33% 감소, 2050년에는 화석연료 사용 ‘제로’라는 목표를 천명했다. 2050년에 화석연료 사용 제로가 실현된다면 화석연료로부터 독립한 세계 최초의 나라가 된다.
일요신문은 덴마크로 날아가 탈화석연료 정책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알아봤다. 일요신문의 인터뷰 요청에 덴마크 환경청, 덴마크 수도인 코펜하겐 시청, 친환경 에너지로 각광받고 있는 수소협회 등이 인터뷰에 응해줬다. 이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덴마크 탈 화석연료 정책은 덴마크의 특수성이 큰 비중을 차지했지만 그럼에도 우리나라가 귀 기울여볼 만한 점도 많았다.
덴마크는 2011년부터 추진해 온 화석연료 제로화 목표를 추진하면서 2018년 현재 전기 에너지의 60%를 재생에너지로 생산하고 있다. 풍력이 약 40%에 이를 정도로 가장 많고 그 다음이 바이오매스, 세 번째는 태양열이 차지하고 있다. 2020년에는 재생에너지로 70%의 전기를 생산할 계획이다.
덴마크는 화석연료 제로화의 걸림돌로 현재로서는 완전히 대체되기 힘든 주거 난방, 산업화된 농업에서 사용하는 에너지 소비, 개인 차량이나 화물운송 등 교통편에서 쓰는 화석연료를 꼽는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자동차다. 특히 디젤차 비율이 높다. 덴마크 정부도 국민들이 사용하는 차량을 전기차 혹은 수소차로 바꾸려고 노력 중이다. 현재 덴마크 내 CO₂ 배출에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고 미래에도 해결하기 가장 어렵다고 점쳐지는 부분이 자동차기 때문이다.
덴마크는 전기차 보급을 위해 지원금을 주지는 않지만 자동차 등록세를 면제해준다. 덴마크는 유럽에서도 자동차 값이 가장 비싼 나라로 꼽힌다. 덴마크에서 차를 사면 차값의 최대 150%에 해당하는 등록세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등록세 면제 정책의 결과로 2011년 400여 대에 불과하던 덴마크 전기차는 2018년 9000대까지 늘어났다.
덴마크 정부는 전기차 보급이 예상만큼 잘 되고 있다고 판단해 차차 등록세 면제에서 부과 쪽으로 바꿔나갈 예정이다. 전기차에 집중했던 정책에서 앞으로는 수소차 보급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아직 지지부진한 수소차 보급을 유도하기 위해 2019년 1월부터 부가세, 등록세 등을 면제해줄 방침이다.
덴마크는 오래전부터 수소차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 덴마크는 수소차 충전소도 세계 최초로 설치했다. 덴마크가 수소차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사실 대단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덴마크는 화석연료를 대체할 모든 기술에 관심을 쏟고 있고 수소도 그 중에 하나로 보고 있을 뿐이다.
덴마크 코펜하겐에 위치한 세계 최초의 수소차 충전소. 덴마크 코펜하겐은 현대차가 생산한 수소차를 관용차 쓰기 위해 구매한 바 있다. 사진=일요신문 특별취재팀
기본적으로 덴마크는 전기차든, 수소차든 어떤 보급을 강력하게 강제하는 게 아니라 시장에 맡긴다. 그래서인지 현재 덴마크 수소차 대수도 87대에 불과하다. 87대도 시청이나 정부 기관 등 관용차로 활용하면서 시험 운행하고 있다. 수소차 충전소를 남과 북으로 고속도로에 10개 설치해 운행을 하는데는 문제 없는 최소한의 인프라 구축 뒤 시장이 어떤 기술을 선택하는지를 지켜보는 단계라고 한다. 덴마크 정부 관계자는 ‘수소차 가격이 아직은 너무 비싸다’며 ‘신기술이 나오면 방향이 바뀔 수는 있지만 2050년 목표를 달성하는 데 있어 뚜렷하게 한 길을 선호하거나 정하지는 않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덴마크는 우리나라 미세먼지처럼 눈 앞에 당장 닥친 문제도 없고 기본적으로 자연 환경이 깨끗하다. 더군다나 덴마크는 산유국이다. 이런 나라가 아이러니하게도 화석연료 제로화에 열성적인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먼저 EU 차원의 제재가 있다. EU는 디젤차량의 CO₂ 배출을 엄격하게 제재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지구 전체에 모범이 되고 긍정적인 국가 이미지를 가져가면서 녹색 경제(Green Economy) 발전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덴마크는 전체 전기 생산의 40%를 풍력발전으로 만들 정도로 집중하면서 풍력 산업에서도 앞서가고 있다. 재생에너지를 원활하게 공급할 수 있도록 만들어지는 기술인 스마트 그리드 역시 앞서가면서 경제적인 이득도 얻고 있다고 한다.
물론 덴마크 국민과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덴마크 정부의 2050년 화석 연료 퇴출 목표에 대해 경제성 문제를 지적하거나, 시기적으로 너무 이르다며 불가능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다른 의미에서 덴마크 정부 내에서도 회의적인 시선이 나온다. 2050년 달성을 위해서는 지금처럼 시장에 맡기는 수준이 아니라 노르웨이처럼 세금 공제, 주차 무료, 여객선 무료 등으로 강력하게 시장을 이끌어야한다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전기차, 수소차 등에서 기술 혁신 가속도가 붙어 차량 비용이 낮춰지면서 시장이 좀 더 활성화 되기를 바라고 있다고 한다.
앞서 설명했듯 한국은 덴마크와 너무나 다르다. 산업구조도 다르고 인구도 570만 명인 덴마크에 비해 한국이 약 9배 정도 많다. 덴마크는 산유국이고 1인당 GDP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럼에도 정책을 추진할 때 배울 만한 원칙은 ‘때려서 억지로 가게 하는 게 아니라 긍정적인 면을 부각해 자발적으로 가게 만든다’는 점이다.
덴마크 정부 관계자는 “우리의 기본 원칙은 신기술을 도입하거나 새로운 방향으로 변화를 할 때 불편하게 하거나 생활이 어렵게 하는 게 아니라 지원으로 따라오게 한다. 단점이 아니라 장점을 부각시킨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한번 수립된 계획은 큰 무리가 없는 한 정권이 바뀌더라도 계속적으로 추진한다”고 덧붙였다. 탈원전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다 무산된 바 있는 우리나라도 참고할 만한 원칙으로 보인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