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 “죄 성립은 쉽지 않아”…카드 꺼내든 송영무 장관 의도는?
촛불집회 당시 기무사 계엄 검토 문건 관련, 사실 관계를 묻자 기무사 관계자가 내놓은 조심스러운 답변이다. 수사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검토 문건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는 게 제한적이라는 것. 사건과 관련해 군 관계자들에게 얘기를 듣다보면 하나같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 있다. “처음 사건이 불거진 지 3개월이 지난 지금 이 문제가 이슈화되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내용이 하나고, 나머지는 “의원실에서 요청한 사안을 검토한 게 왜 죄가 되느냐”는 것이다. 또 다른 기무사 관계자는 “지금 계엄 문건 사건은 사실 관계를 떠나 이미 정치적인 사건으로 비화됐다”며 “어떤 목적으로 이렇게 사건을 확대했는지가 더 궁금하다”고 말했다.
# 문건 속 문장들만 보면 수상
사건부터 짚어보자.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은 지난 2017년 3월, 국군기무사령부가 작성한 ‘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이라는 제목의 문건을 입수해 공개했다. 해당 문건은 헌재의 탄핵심판 결정을 앞둔 2017년 3월 초 당시 기무사령관이 국방장관에 보고한 문건으로, 촛불 집회 상황을 우려하며 ‘위수령-경비계엄-비상계엄’ 등 단계적 상황별, 발령권자, 증원부대의 지정과 배치, 계엄사의 편성과 업무까지 망라하는 군 차원의 대비계획이 담겨 있다. 이철희 의원은 보도 자료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해당 문건 8페이지에 ‘본 대비계획을 국방부·육본 등 관련부대에 제공한다’고 적혀 있는 만큼 기무사의 불온하고 과장된 상황 인식이 드러난다”고 비난했다.
실제 해당 문건 6쪽에는 “사회 혼란 수준에 따라 ‘경비계엄’에서 ‘비상계엄’으로 확대한다”는 문구나, “계엄사령관은 ‘육군총장’을 임명하고, 계엄사는 ‘B-1 벙커’에 설치한다, 계엄임무수행 군은 기계화 6개 사단, 기갑 2개 여단, 특전 6개 여단으로 구성한다” 등이 적시돼 있다.
이밖에 기무사의 부적절한 세월호 유가족 사찰도 도마 위에 올랐다. 기무사 TF는 실종자 가족의 경력과 성향을 문건으로 만들어 보고하고, 세월호 희생자에 대한 ‘수장(水葬)’을 제안한 정황도 드러났다. 기무사는 세월호 침몰 12일 후인 2014년 4월 28일 관련 태스크포스(TF)를 꾸렸는데, 해당 문건들은 6개월간 운영된 60명 규모의 TF에서 작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에 대한 수사를 지난 10일 인도 순방 도중 지시했고,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곧바로 다음날(11일) 전익수(대령) 공군본부 법무실장을 특별수사단장에 임명하고 문건 작성자들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특별수사단은 해군과 공군 검사 30여 명으로 구성되며 8월 10일까지 수사를 진행할 예정이나 필요할 경우 활동시한을 연장할 방침이다.
# 한민구 전 장관이 타깃?…“처벌 입증 어려울 것”
한민구 전 국방부 장관
자연스레 조현천 전 사령관은 물론, 이를 지시하고 보고받은 한민구 전 장관에 대한 수사 및 처벌 가능성도 거론된다. 하지만 한 전 장관 측은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해당 문건이 작성된 것은 당시 이철희 의원이 위수령 폐지를 검토해 달라고 요청해 기무사에 검토를 지시한 결과물이고 이는 합참과 국방부 법무관리관실에도 지시했던 내용이라고 강조했다.
한 전 장관은 또 시간·장소가 공개되는 국방부 공식 회의를 통해 작성 지시와 보고가 이뤄졌고 문건 자체도 비밀문건이 아닌 평문으로 다뤘진 점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공개회의에서 평문으로 계엄령 실행을 협의했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게 한 전 장관의 주장이다.
흐름에 밝은 군 관계자 역시 “해당 문건 내용 대부분이 위수령과 계엄에 관한 법률을 해설하는 것”이라며 “동원 부대 역시 1979년 12.6 전국 계엄 때 언급됐던 방어 지역이 특정되지 않은 부대들이다, 과거 사례를 견주어 작성된 매우 일반적인 검토 문건 중 하나로 봐도 무방하다”라고 설명했다.
검찰 관계자는 “이번 사건에 대해서는 신문으로밖에 접하지 않았다”면서도 “결국 문건 한 개를 놓고서 내란음모를 시도한 게 성립하느냐 아니냐를 판단해야 하지 않나. 추가 지시 등도 없었고 문건 한 개가 전부라면 ‘누군가’를 잡기 위해 억지로 만든 정치적인 상황 설정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기무사가 작성했다는 세월호 유가족 정치 성향 사찰 문건에 대해서도 기무사 측 관계자는 “다소 기무사 성격에 어울리지는 않지만, 당시 그런 얘기가 경찰이나 국정원, 언론을 통해 많이 돌지 않았냐, 세간에 도는 얘기를 취합해서 정리하는 게 당시 상황에서는 매우 상식적인 업무였다”고 해명했다.
# 송영무 장관이 원하는 것은 무엇
그렇다면 3개월 전 할 수도 있었던 수사를 이제서야 진행하게 된 것은 무엇일까. 관련 정통한 군 관계자는 “이번 이슈는 국방 개혁의 본체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기무사 개조 등을 국방개혁으로 치환하려고 하는 의도가 있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 박은숙 기자
앞서 장성 수를 줄이는 등, 몇몇 개혁안을 내놨지만 검경 수사권 조정 등 굵직한 이슈에 비해 주목을 받지 못한 측면이 있다는 것. 개각 때마다 송 장관의 입지를 흔드는 얘기들이 국회를 중심으로 나온 것에 대한 반대급부성 선택이라는 평도 나온다. 수사가 진행되면 이를 수습할 때까지 송 장관이 필요하고, 기무사 개혁 과정에서 군 내 장악력을 높일 수 있다는 점도 있다는 얘기다.
법조계는 오히려 박근혜 정부 당시 청와대 핵심 관계자들로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다. 앞선 검찰 관계자는 “수사를 선택하는 것은 대충의 얼개를 감안했을 때인데 그것은 ‘어디 누구’까지 수사해서 기소할 수 있다는 그림이 나와야 가능하다”라며 “한민구 전 장관뿐 아니라, 김관진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 실장이나 황교안 전 국무총리 등이 관여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군 인권센터 등이 고발한 사건은 군 내 특별수사단 외에도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진재선 부장검사)에도 배당되어 있는데, 검찰은 사건 흐름을 보고 수사 개시 여부를 판단한다는 방침이다.
서환한 기자 brigh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