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에 안기기’ 거부 땐 교관에 꼬집혀…박 회장 탑승 비행기엔 2배 인력 동원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지난 4일 오후 서울 금호아시아나 광화문 사옥에서 ‘기내식 대란’에 대해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아시아나항공 직원들은 지난 6일과 8일 집회를 열고 기내식 대란을 비롯해 하청업체와의 불공정거래, 계열사 일감몰아주기, 오너 갑질 등을 폭로했다. 이들은 “노밀 사태의 발단이 박 회장의 탐욕과 갑질이었음이 밝혀지고 있다”며 “금호아시아나그룹이 금호타이어 대주주 지분을 되찾기 위해 1600억 원 규모의 회사채 구입을 조건으로 업체를 변경하고 기내식 공급 지연이 발생하자 지속적인 압박을 가했다”고 지적하며 박 회장과 경영진의 퇴진을 촉구했다. 박 회장은 공식 사과 당시 “기내식 공급업체 변경은 투자와 관계없다”고 해명했다.
그렇지만 박 회장의 경영권 강화를 위해 아시아나항공이 활용된 것으로 보이는 정황은 많다. 아시아나항공 임직원들은 “아시아나는 그동안 그룹 재건의 희생양이었다”고 주장한다. 한 직원은 “박 회장이 금호타이어 인수 등을 위해 아시아나 수익을 사용했으며 아시아나는 수익선 개선에 급급해 기내서비스를 축소했다”며 “케이에이 등을 설립해 기본급을 낮추고 인건비를 후려쳤으며, 케이에이가 내는 수익이 전부 박 회장 손으로 들어간다”고 토로했다.
케이에이(지상 여객 서비스 업체)와 케이오(수하물 및 기내청소 업체), 케이알(정비 관련 서비스 업체), 에이에이치(외항사 여객 서비스 업체) 등은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이 지분 100%로 설립한 자회사들이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은 금호아시아나가 운영하는 공익재단이지만 이사장인 박 회장의 경영권 방어 및 사익 편취에 활용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재단이 그룹 지주사 ‘금호기업’에 출자하고 금호산업 주식을 시가보다 비싸게 매수하는 등 박 회장의 그룹 지배력 유지에 활용됐다는 것. 재단은 이후 금호산업 주식을 매각한 돈으로 워크아웃 중인 금호타이어 지분을 매입하기도 했다.
이 같은 의혹에 대해 국세청은 지난 3월 세무조사에 착수했으며, 공정위 또한 최근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공정위는 지난 1일 발표한 ‘대기업집단 소속 공익법인 실태조사 분석 결과’에서 2009년 박 회장과 동생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의 경영권 분쟁 당시 재단이 박 회장을 지원했던 내용을 ‘공익법인 악용 의심사례’에 포함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시아나항공 임직원 익명 채팅방에서는 사진과 함께 ‘과잉 의전’ 강요 문제에 대한 지적이 제기됐다. 사진=아시아나직원연대 채팅방
승무원들의 ‘과잉 의전’ 강요와 성추행에 대한 폭로도 이어졌다. 금호아시아나 직원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룹 내부에서 여직원들을 동원해 박 회장에 대한 ‘과잉 의전’을 강요했으며, 이 과정에서 부적절한 신체 접촉마저 있었다. 또 박 회장이 ‘선택한’ 승무원들이 박 회장 방문 시 그에게 팔짱을 끼거나 안기는 등 형태의 인사를 강요받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를 뒷받침할 만한 사진 등 증거자료도 나왔다. 한 직원은 “회장님 오시는 날이면 옆에 계속 서서 웃고 박수치느라 비행 준비도 제대로 못했다”며 “다들 회장님을 만날까봐 싫어했지만, 파트장과 팀장들이 곳곳에서 승무원들이 피할 수 없게 지켜보다 회장에게 인사하라고 눈치를 줬다”고 전했다. 다른 직원은 “회장이 방문하면 ‘너는 달려가서 안겨라’, ‘사랑한다고 소리쳐라’ 등 각자 역할도 지정해줬다”며 “하기 싫어 뒤에 서 있다가 교관님에게 팔뚝을 꼬집히기도 했다”고 말했다.
다수 직원은 사내에 조장돼 있는 박 회장에 대한 ‘과잉 의전’ 분위기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 회장에 충성하려는 윗선들의 태도와 사고방식이 ‘과잉 의전’을 부른다는 것. 일부 직원은 박 회장에게 애정을 표현하기 위해 직접 쓴 손편지를 전하기도 했다. 심지어 박 회장에게 ‘모유비누’를 선물한 한 직원이 승진했다는 이야기까지 흘러나올 정도다.
박 회장이 직접 지시하지는 않았지만 관련해서 ‘눈치’를 줬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한 직원은 “모두 박 회장을 위해 춤추고 노래 부를 때 뒤에서 소극적으로 있으면 박 회장이 ‘너는 내가 안 반가운가보다, 왜 안아달라고 안 하냐’라고 한다”며 “그러면 승무원들이 ‘안아주세요’ 한다”고 전했다. 다른 직원은 “박 회장 본인도 과잉 의전을 말리지 않고 좋아하는 기색을 보이니 윗선에서 더욱 충성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한편, 박 회장이 비행기를 탑승하면 다른 비행기들을 뒤로 제쳐두고 게이트부터 기내청소까지 2배의 인력이 동원됐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한 직원은 “박 회장이 탑승한 비행기만 정시운항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그 비행기에만 올인한다”며 “회장이 앉는 좌석 앞뒤로는 멀쩡한 안전벨트까지 바꾸더라”고 전했다. 다른 직원들도 “박 회장이 비행기를 타는 날에는 모든 직원이 그에게만 신경을 썼다”며 “기내식 대란 때도 박 회장은 따로 준비된 고급 음식을 받았다”고 귀띔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