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자 타 지역 경찰관과 직접 경찰서행…상주경찰서 ‘잠복근무 중 검거’ 보도자료 배포
경북 상주경찰서 전경. 연합뉴스
5월 31일 오후 10시 8분쯤 상주시 함창읍 오동리 근처 태봉교차로에서 함창농공단지 방향으로 50m 떨어진 곳에서 친구의 차를 몰고 좌회전을 하던 A 씨(34)는 역방향으로 달려오던 자전거와 충돌했다. A 씨는 쓰러진 자전거 운전자를 보고 당황했다. 최근 결혼해 처음 맛보는 행복이 깨질까 두려웠던 A 씨는 일단 사고 현장을 떠났다. 어린 시절부터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 온 A 씨였다.
깊은 시름에 빠졌던 A 씨는 6월 2일 이른 오전 자수를 결심한다. 아내에게 일단 말한 뒤 오전 11시쯤 회사 상사에게 사태를 이야기했다. A 씨의 상사는 자신이 아는 타 지역 경찰을 소개시켜 줬다. 이 경찰은 A 씨 관할 경찰서에서 예전에 근무했다 근교로 전보간 사람이었다. 타 지역 경찰은 A 씨에게 자수를 권했다. A 씨는 이를 받아 들였다. 회사일을 마무리하고 경찰서로 가려 했던 A 씨는 오후 1시 30분쯤 지인의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받자 곧 경찰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위치 등을 묻는 경찰에게 A 씨는 “생각 뒤 출석하겠다”고 말했다. 타 지역 경찰은 상주경찰서 담당자와 통화해서 A 씨의 자수 의사를 전했다. 상주경찰서 담당자는 A 씨와 타 지역 경찰에게 경북 상주시 함창읍 구향리의 한 아파트 근처로 오라고 일렀다. A 씨는 타 지역 경찰과 자신의 아내 차를 타고 경찰에게 갔다. A 씨는 그렇게 상주경찰에 인계됐다.
A 씨는 바로 구속됐다. 그런 뒤 사건은 이상하게 흘렀다. 6월 6일 한 지역 언론이 “상주경찰서 교통조사팀이 최근 일어난 차량의 자전거 충돌 후 도주 사건을 치밀한 수사로 40여 시간 만에 해결하는 성과를 올렸다”며 “사고 뒤 아무런 구호 조치를 하지 않고 도주해 피해자가 뇌사 상태에 빠지게 한 A 씨를 사고 발생 40여 시간 만에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 도주치상 혐의로 검거했다”라고 보도했기 때문이었다.
상주경찰서가 언론에 배포한 자료에서 경찰은 애초부터 A 씨를 특정하고 잡은 것처럼 묘사했다. 상주경찰서는 “사고 발생 뒤 교통조사팀은 전 직원을 비상소집해 현장에 흩어졌던 차량 잔해를 수색해 도주 차량의 그릴 조각과 전조등 노즐 덮개 등을 확보한 뒤 차량 종류를 알아냈다. 폐쇄회로TV 영상자료 등으로 차량번호를 파악하고 차량 주인을 특정했다. 잠복근무를 하던 가운데 6월 2일 오후 용의자를 검거하고 야산에 숨겨둔 용의차량인 대포차량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A 씨를 특정해 집 근처에서 잠복하다 그를 붙잡았다는 식으로 보도 자료를 내버렸지만 실상은 달랐다. 경찰은 애초 차의 소유주로 파악됐던 A 씨의 지인 B 씨(34)를 피의자로 특정했다. 사고차량이 B 씨의 명의로 아파트에 출입등록이 돼 있었던 까닭이었다. B 씨는 자신이 모는 차량을 친구들도 탈 수 있도록 빌려주곤 했었다. 차는 B 씨가 예전에 일할 때 타 지역에서 등록해 놓았던 차였기 때문에 경찰은 차량의 소유주를 특정하기 어려웠다. 경찰은 인근 지역 폐쇄회로TV를 돌려 보다 사고차량이 B 씨의 아파트 단지에서 포착되자 아파트에 등록된 차량 소유주의 주소를 근거로 B 씨를 피의자로 봤다.
6월 2일 오후 1시쯤 경찰은 B 씨에게 전화를 걸어 “잠깐 나오라”고 했다. B 씨는 잠시 뒤 나갔는데 경찰의 쏟아지는 질문에 어이가 없었다. 이윽고 사정을 들은 뒤 친구 C 씨(34)에게 전화를 걸었다. C 씨는 B 씨의 차를 가장 자주 이용하는 사람이었던 때문이었다. C 씨는 “그날은 A 씨가 운전했다”고 경찰에 말했다. 경찰은 B 씨에게 부탁하여 그제야 사고운전자인 A 씨와 통화할 수 있었다.
보도를 본 A 씨의 아내 D 씨(여·34)는 어이가 없었다. 기사를 본 직후 D 씨는 상주경찰서를 직접 찾아 “이게 어떻게 검거냐? 내가 직접 운전대를 몰고 남편과 타 지역 경찰을 태워 당신들이 오라는 곳으로 갔다. 검거했다고 하는데 어디서 검거했냐?”고 물었다. 상주경찰서 관계자는 대답하지 못했다고 전해졌다.
아내 D 씨는 경북지방경찰청에 민원을 제기했다. 이에 상주경찰서 경비교통과장은 “교통사고 운전자는 스스로 수사기관에 자기의 범죄 사실을 신고한 적 없다. 경찰관이 교통사고 야기 운전자에게 전화를 걸어 교통사고 운전자임을 확인했다. 위치도 밝히지 않았다. 경찰관은 생각을 정리한 뒤 출석하겠다는 운전자에게 함창의 한 아파트 인근으로 출석을 요구했다. 운전자가 이에 응하며 출석하게 됐다”며 “경찰이 교통사고 야기 후 도주한 운전자를 확인한 뒤 전화 및 출석 요구를 해 운전자가 출두하면 자수요건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D 씨의 민원에 답했다. 자수하면 형법상 죄를 감경 받거나 면제 받을 권리를 가진다. A 씨는 자수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상주경찰서 교통조사팀은 뺑소니 검거 등을 홍보하는 기사를 자주 배포해 왔다. 지난해 11월에 배포한 보도 자료를 근거로 나온 기사에는 “2013년부터 2017년까지 뺑소니 사고 검거율 100%를 달성해 화제”라며 “지난 5년간 82건의 뺑소니 사고를 ‘세심한 관찰력’과 ‘끈질긴 과학수사’로 모두 검거했다”고 적혀있었다. 담당자 일부는 특진까지 했다.
이 사건은 경북지방경찰청의 우수 사례로 뽑혔다. 경찰 내부에서는 사건이 상위 조직의 우수 사례로 뽑히거나 사건이 긍정적으로 언론에 보도되면 인사 고과에 좋은 평가를 받는다. 경북지방경찰청으로 올라온 이 사건 보고서에는 한 가지가 빠졌다. 자수 의사를 전하고 A 씨를 설득했던 타 지역 경찰의 내용이었다. 상주경찰서 경찰은 자신의 이야기만 상부에 보고했다고 나타났다.
이와 관련 수사를 담당하고 있는 상주경찰서 교통조사팀장은 “A 씨가 처음 이야기를 나눴던 경찰은 타 지역 경찰이라 이 사건과 관련 없다. 그 경찰은 전화를 해 와서는 자수 이야기 없이 이 사건 피의자가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이다. 곧 데리고 가겠다고만 말했다”며 “자수를 해도 검거로 보고한다”고 말했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