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제강 주가 띄우고 암호화폐 투자금 수백억 모아…비슷한 이름 여러 회사 인양 나서 궁금증 증폭
돈스코이호의 과거 모습. 신일그룹 제공
드미트리 돈스코이호는 러시아의 건국 영웅 드미트리 대공의 이름을 딴 군함이다. 돈스코이호는 1905년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하다 울릉도 앞바다 70km 해상에서 일본군에게 포위되자 당시 레베데프 함장이 배를 일본에 넘겨줄 수 없다고 결정해 스스로 배를 침몰시켰다. 전문가들은 러시아의 돈스코이호 존재 자체는 부정하지 않지만 이 배에 보물이 실려 있는지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않고 있다.
신일그룹은 지난 15일 오전 9시 48분경 울릉도에 침몰한 돈스코이호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군함이 발견됐다는 소식에 실제로 150조 원에 달하는 금괴가 실려 있는지, 배를 인양할 능력이 있는지 등을 두고 논란이 일었다. 신일그룹은 올해 초부터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보물선 홍보에 앞장서왔다. 지난 6월 말에는 중앙일간지에 전면광고를 내보내는 등 기업 알리기에 박차를 가했다.
신일그룹에 따르면 이들은 2015년부터 러시아와 일본의 역사적 자료를 조사했다. 돈스코이호에는 현재 시세로 150조 원에 달하는 금화와 금괴가 들어있는데 인양까지에 필요한 자금은 800억 원이며 신일그룹은 올해 안에 인양 작업을 마무리하겠다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투자자들은 보물의 존재 유무도 정확하지 않은데 자신감을 내비치는 신일그룹의 실체에 대해 미심쩍어하고 있다. 신일그룹이 지난 6월 설립돼 업력이 2개월에 불과한 데다 대표이사의 이력이 알려진 바 없고, 이와 유사한 이름을 가진 회사 여러 곳이 보물선 인양사업에 뛰어든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작전세력이 이름을 바꿔 회사를 세워가며 주가를 부양하고 시세차익을 남기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 회사이름부터 인적구성까지 닮은꼴
‘신일광채그룹, 신일광채이데아그룹, 신일그룹, 신일골드코인.’ 이들 회사는 모두 돈스코이호 보물선 인양에 직접적으로 관계하는 회사다. 얼핏 봐도 같은 뿌리를 두거나 공통분모가 있는 것처럼 ‘신일’이라는 이름을 고수하고 있다. 또 신일광채그룹과 신일그룹은 회사 실적으로 아파트 브랜드 ‘신일유토빌’을 갖고 있다고 광고했다.
최근 신일그룹이 돈스코이호 발견 사실을 밝히며 공개한 사진.
신일그룹은 자사 홈페이지에서 자신의 뿌리가 1957년 설립된 신일토건으로 신일유토빌 등 아파트 건설 이력이 있다고 자랑하다 19일 돌연 홈페이지를 폐쇄했다. 신일광채그룹은 2015년 신일유토빌건설로 설립됐다가 2017년 이름을 바꿔 달았다.
수백억 원의 투자자를 모아 보물 찾기에 나서는 신일그룹 관계자들에 대해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라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이들의 이름은 유사한 신일광채그룹, 신일광채이데아그룹, 한국광채뉴글로벌 등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됐다. 인양작업에 참여하는 진교중 단장과 영국인 잠수전문가로 소개된 알렌 화이트필드는 신일그룹, 신일광채이데아그룹(회장 유병기)과도 함께 사업설명회 등에 참여한 바 있다. 보물선 사업의 신뢰도를 높여온 전문가가 이전에 보물선 인양사로 설립된 회사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된 셈.
신일그룹 대표이사는 류상미 씨가 맡고 있고 계열사로 알려진 신일그룹 돈스코이호 국제거래소와 신일골드코인은 유지범 회장이 이끌고 있다. 2018년 발 돈스코이호 인양과 직접적으로 관계된 회사이지만 두 회사마저 서로의 계열 관계에 대해 명확히 하고 있지 않다. 유지범 회장은 블로그를 통해 신일그룹 계열사로 신일골드코인을 홍보해왔다. 또 과거 신일유토빌의 브랜드 로고를 버젓이 사용하고 있어 앞의 신일유토빌, 신일광채그룹과 연관성을 더욱 의심케 했다.
비슷한 이름의 여러 회사가 보물선 인양 사업을 진행하며 투자자와 주식시장의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 주식투자업계에서는 신일그룹과 신일국제거래소의 류상미, 유지범 회장이 남매지간이며 유지범 회장의 실명은 류승진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개미투자자 사이에서 악명이 높은 류승진 씨는 사기 등 혐의로 해외 도피생활을 했으며 각종 주가조작 의혹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류승진 씨와 함께 사업을 하던 코스닥 상장 업체 김대영 대표는 19일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유지범 회장 본명이 류승진 씨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유지범 회장이 류승진 씨와 동일인물이라고 볼 수 있는 정황도 포착됐다. 유 회장이 투자자와 소통하던 인터넷 블로그 아이디(ID)가 과거 류승진 씨가 사용하던 아이디와 동일한 것. 또 김대영 대표가 2017년 주주들에게 배포한 게시글에 따르면 류 씨는 라오스와 베트남 등지로 도피 중에 인터넷 전화를 사용해 사기행각을 이어갔다. 이때 류 씨가 활용한 전화번호가 현재 신일그룹의 박성진 홍보팀장이 사용하는 번호와 같은 것으로 드러났다.
# 뜬구름 잡기 식 수익구조로 수백억 원 꿀꺽하나
신생회사가 열정을 갖고 수년간 지체됐던 돈스코이호 인양을 완수하는 것은 경제와 역사의 발전에 긍정적이다. 하지만 보물선 인양을 미끼로 주가를 부양해 시세를 조작하고, 신뢰도가 없는 코인발행을 강행한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신일그룹은 사업소 운영 비용과 선체 인양 비용 등을 감당하는 데 상당한 비용이 필요하다. 이런 초기비용을 감당하고 금화를 찾아내 수익을 실현할 때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점쳐진다. 당장 신일그룹의 수익구조는 없는 셈이지만 그 계열사나 관계사를 살펴보면 비즈니스모델을 알 수 있다.
신일그룹 돈스코이호 국제거래소 홈페이지 모습으로 왼쪽 상단의 마크는 신일유토빌 마크와 일치한다. 홈페이지 캡처
신생회사인 신일골드코인 국제거래소는 돈스코이호에 담긴 보물을 실물로 하는 암호화폐 ‘신일골드코인’을 판매한다. 유지범 회장이 이끄는 신일골드코인은 강서구 공항동에 있는데 사무실을 오픈한 지는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전국 판매망 개척과 코인세일을 통해 수백억 원의 투자금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신일그룹은 코스닥 상장사 제일제강과도 관계가 있다. 지난 5일 류상미 신일그룹 대표가 코스닥 상장사인 제일제강의 최대주주로 올라선다는 공시가 나온 뒤 2260원이던 제일제강 주가는 18일 5400원으로 200% 이상 급등했다. 신일그룹의 돈스코이호 인양소식이 여기에 한몫했다. 주식이 요동치자 16일 한국거래소는 제일제강을 투자 경고종목으로 지정했으며 금융감독원 역시 면밀히 모니터링하겠다고 밝혔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신일그룹으로 분위기를 무르익히고 제일제강으로 주가를 부양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한참 폭등하던 주가는 19일부터 폭락하고 있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세력이라고 본다면 너무나 고전적인 주가부양 방법이다. 이미 호재 보도로 시세차익은 끝난 셈”이라고 말했다.
제일제강은 공시를 통해 ‘신일그룹과의 무관함’을 강조했지만 이미 주가가 요동친 뒤라 이는 사후약방문에 불과한 조처다. 신일골드코인 역시 실물인 돈스코이호의 보물을 바탕으로 한다고 광고하지만 보물의 존재조차 명확하지 않은 것이 문제로 지적된다.
올해 9월이면 돈스코이호 인양이 끝난다고 자신해온 것과 달리 신일그룹은 지난 20일에야 포항지방해양수산청에 매장물 발굴승인 신청서를 냈다. 하지만 매장물 위치 도면, 작업계획서, 발굴보증금 등에 대한 서류를 갖추지 못해 승인이 반려됐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
신일골드코인 찾아가보니…“우리는 신일그룹과 무관” 의아한 대답 강서구 공항동에 위치한 신일그룹 돈스코이호 신일골드코인 사무소 입구. 금재은 기자 신일골드코인 관계자는 “입사한 지 1주일밖에 되지 않아 아무것도 아는 바가 없다”며 “모든 사업 일정은 회사 홈페이지를 통해 진행한다”고 말했다. 회장실에서 회의 중이던 관계자들은 “언론과 인터뷰는 일체 하지 않으며 돈스코이호에 관한 모든 진실은 7월 30일날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류상미 대표가 이끄는 신일그룹과 신일광채그룹과의 관계에 대해 질문하자 한 관계자는 “광채그룹은 물론 신일그룹과도 연관성을 모른다. 우리는 싱가포르 신일그룹의 한국지사일 뿐”이라고 밝혔다. 같은 건물을 사용하는 한 입주민은 “신일골드코인이라는 회사가 입주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다. 보통 50~60대 중년 남성 몇 명이 드나들고 조용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금] |
‘용두사미 데자뷔 떠오르네…‘ 끝이 안 좋은 보물선 탐사 회사들 동아건설은 지난 2000년 11월 부도를 맞았지만 돈스코이호 발굴 소식이 알려진 뒤 6개월 만에 주가가 10배나 급등했다. 2003년 동아건설은 국립해양연구원과 기자간담회를 열고 울릉도 저동 앞바다 수심 400m 지점에서 돈스코이호로 추정되는 선체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시 해양수산부는 이 선체가 돈스코이호인지 여부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외환위기에 도산 직전에 몰린 회사를 살리기 위해 인양사업에 뛰어든 동아건설은 결국 돈스코이호를 인양하지 못했다. 신일광채그룹이 돈스코이호 인양 계획을 밝혔을 당시 공개한 사진. 2017년 11월에는 서울 소재의 신일광채이데아그룹이라는 회사가 돈스코이호를 인양하겠다고 밝혔다. 유병기 신일광채이데아그룹 회장은 당시 인양업체를 선정하고 본격적으로 인양사업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후 일정이나 진행사항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되지 않고 있다. 올해 돈스코이호 인양을 밝힌 회사는 신생기업인 신일그룹이다. 주식투자업계에서는 신일그룹의 류상미 대표가 과거 홍건표 신일광채그룹 회장과 함께 일했던 사람이며, 신일골드코인 유지범 회장은 본명 류승진 씨로 홍 회장과 함께 기업사냥을 하던 투자자라고 알려져 있다. 투자업계에서 유명한 류 씨는 과거 동양건설산업 주주모임 대표로 활동하며 매각에 반대했으나 주주명부에 이름이 들어있지 않아 논란이 됐다. 류 씨는 VIP부동산투자 클럽을 운영하며 투자에 관련한 저서까지 출간한 바 있다. [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