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사 롯데건설, 조합 측과 갈등…이주문제 해결하고도 첩첩산중
롯데건설과 청량리4구역 재개발 시행사 간의 갈등으로 사업이 난항에 빠졌다. 박은숙 기자
수십 년간 지켜온 삶의 터전이 송두리째 바뀌는 재개발 사업에는 이주민, 조합원, 철거용역, 시공사 등 여러 층의 이권이 얽혀있다. 많은 사람들을 설득해야 해 사업에 걸리는 시간이 상당하다. 그 중에서도 난이도 상에 꼽히는 것이 집창촌 재개발이다. 단층 건물에 6~10개의 성매매 업장을 운영하는 것이 평균이라고 볼 때 여기에 얽힌 이해관계자만 10여 명에 달한다. 그런데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후 10개월 만에 청량리4구역의 거의 90%의 철거와 이주가 끝났다. 착공에 들어가기 전 가장 큰 산인 주민 이주가 마무리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용산의 경우 주민 이주에만 3년이 걸렸다.
재개발 사업의 가장 어려운 부분인 원주민 이주가 속전속결로 끝난 것은 시행사의 힘(?) 때문이다. 청량리4구역은 조합원들이 사업의 시행주체다. 각 조합원들의 의사를 쉽게 모으기 위해 만들어진 추진위원회가 협약을 통해 S 건설사와 함께 공동시행자로서 일을 하고 있다. 어렵고 복잡한 이주 과정은 거의 마무리되었지만 정작 시공사와 조합 간의 갈등이 불거지며 사업에 차질이 생겼다.
밀접했던 S 사와 시공을 맡은 롯데건설이 틀어진 것은 계약서 조항 때문이다. 청량리 4구역은 도급제로 사업이 진행된다. 도급제는 시행사가 사업의 주체로 이익을 갖고 건설사는 다만 건설비를 받게 된다. 대신 사업이 손실을 입어도 시행사가 이에 대한 책임을 진다.
S 사가 롯데건설과 도급계약서를 작성하며 맺은 계약에는 평당 건설비가 ‘618만 원+알파’로 책정돼 있다. 정확한 금액이 책정되지 않은 것은 ‘실내 마감재’에 대한 견적이 나오지 않아서다. 마감재 가격이 포함되지 않아 추후 건설비가 크게 증가할 수 있어 조합원들은 평당 건설비를 명확히 하고 싶어 한다. 착공 전 건설비를 명확히 하지 않을 경우 조합원들이 추가 분담금 폭탄을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롯데건설은 설계변경을 핑계로 실내마감재에 대한 정확한 금액을 최근까지도 알려주지 않았다.
S 사 관계자는 “모델하우스를 세우고 분양이 임박했는데도 마감재 가격을 정확히 알려주지 않고 롯데건설은 협상테이블에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S 사에 따르면 롯데건설이 차일피일 설계를 변경하며 시간을 끌었다. 당초 S 사가 펜트하우스를 설계에 포함시켜 차별화를 꾀하자고 주장했지만 롯데건설이 이를 반대하다 돌연 펜트하우스를 추가하자고 해 설계 기간만 1년 가까이 지연됐다.
더 큰 문제는 착공이 미뤄지며 발생했다. 청량리4구역 재개발 지역 내에는 롯데쇼핑이 들어와 있다. 재개발 사업 지체로 기한 내 영업 개시가 불가능해지자 이에 대한 보상금이 발생한 것이다. 청량리 롯데쇼핑은 2020년 12월까지 영업을 개시할 수 없으면 하루에 5700만 원씩의 지체보상금과 별도의 손해배상금을 받기로 했다. S 사는 지체보상금을 롯데건설이 전부 지급하는 줄 알았다고 주장했지만 롯데건설은 이와 다른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아직 지체보상금을 어느 쪽에서 지급하는지를 두고 합의점을 찾지 못한 상황이다.
롯데건설이 요구한 추가 금액은 평당 618만 원의 건설비에 해당하는 7000억 원 상당과 실내마감재 견적 1570억 원, 특화공사비 350억 원 상당이다. 토지 소유자들로 구성된 조합원이 생각했던 7000억 원의 건설 예산에서 1900억 원 이상이 늘어난 것. 뿐만 아니라 분양가를 당초 계획했던 것보다 올리게 되자 초과이익분에 대해서도 롯데건설이 요구하고 나서며 반발이 심해지고 있다.
시행사 측은 반발하며 용납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착공에 들어가기까지 전 과정은 시행사가 총괄하고, 착공 후 과정은 시공사가 담당하는 경우 시공에 대한 비용만 시행사가 지불하면 도급제 재개발은 끝이 난다. 하지만 롯데건설과 S 사는 서로간의 책임과 이익 분배와 관련해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철거로 삶의 터전을 잃은 이주민들도 먹이사슬의 정점에 있는 롯데건설을 비판한다. ‘대형 건설사인 롯데건설-시행사인 S 건설-철거이주민’이 먹이사슬처럼 갑을관계에 놓여 있고 결국 롯데건설이 갑의 위치에 있다는 것. 자신들이 헐값에 이주당하는 것을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시공사라고 선을 그으며 뒤로 빠져있는 롯데건설이 문제라는 것이 주민들의 입장이다. 나아가 청량리 주민들은 롯데건설과 시행사 S 건설 사이에 10여 년 전부터 재개발을 염두에 둔 물밑 교감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철거로 집을 잃은 한 주민은 “자신을 내쫓은 것은 시행사지만 S 사 설립을 들쑤신 것이 롯데건설”이라고 주장했다.
S 건설사 관계자는 이런 의혹에 대해 “사실”이라고 밝혔다. S 사 관계자는 “지역 토박이만이 청량리 지구 이주를 완성할 수 있다고 봤고, 롯데와 소통이 오래 전 있었으며 그 니즈에 의해 S 사를 설립했다”고 말했다. 롯데건설이 재개발 사업을 위해 S 사 관계자들과 접촉했고 어느 정도 교감이 이뤄진 뒤에 S 사를 설립했다는 것. 추진위원회 정기총회 자료에 따르면 롯데건설은 2006년 추진위원회와 도시환경정비사업 공동추진협약 체결을 맺고 2008년 2월 S 사가 설립됐다. 같은해 10월에는 추진위원회와 롯데건설 시공자 간 가계약이 체결됐다. 롯데건설 청량리 재개발 담당 관계자는 “S 사의 설립 당시 경위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재개발 사업을 위해 세워진 회사인 것은 맞다”고 설명했다.
롯데건설은 자신은 단순 시공사일 뿐이라고 선을 긋고 있다. 하지만 단순 시공사가 분양가 상한에 따른 초과이익을 요구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이다. 롯데건설 관계자는 “우리는 공사비 외에 받는 것이 없다. 착공 전 단계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으며 책임질 것도 없고 착공 지연에 따른 책임은 시행사에 있다”고 말했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