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 지지로 입장 바꿔 핀테크산업 육성 추진…경제력 집중 등 반대 이유 해소 안돼 논란
지난 7월 11일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인터넷전문은행에 적용된 은산분리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비치면서 금융위가 인터넷전문은행 보모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다. ‘메기효과’로 주목받은 인터넷전문은행이 출범 1년 만에 부진에 빠진 탓이다. ‘일자리 정부’를 자처한 청와대는 고용 쇼크를 벗어날 규제 개혁 발판으로 금융위의 움직임을 지지하고 있다. 핀테크 산업(정보기술 기반의 금융산업) 육성을 통한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다. 은산분리를 고수했던 여당은 당론을 바꿨다.
금융위가 지난 박근혜정부에서 ‘비대면 계좌 개설’을 발표, 한국형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의 산파를 자처했을 때도 같았다. 금융위는 경제위기 논란이 번졌던 2015년 5월 금융개혁회의에서 ‘계좌 개설 시 실명확인 방식 합리화 방안’을 포함한 새로운 금융서비스 창출 방안을 확정해 이른바 ‘창조경제’에 대응했다. 전 정부는 정보통신(IT)과 금융을 융합해 창조금융을 활성화하겠다고 발표하면서 규제 패러다임의 전환을 내걸었고,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가 나오는 배경이 됐다.
최종구 금융위원장과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이 당정협의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박은숙 기자
인터넷전문은행이 정부의 정책 위기 타개책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무엇보다 정부와 여당의 입장이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문재인정부 초기만 해도 은산분리 규제 완화와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보였던 여당 의원들은 최근 완전히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 7월 18일 새롭게 구성된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여당 의원들은 “인터넷전문은행 산업 활성화를 위해 특례법을 만들어 통과시켜야 한다”, “핀테크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 금융산업 혁신을 위해 인터넷전문은행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와 여당의 입장이 180도 바뀐 것에 대해 일부에서는 소비자 체감 경기가 1년 3개월 만에 최저로 떨어지고 취업기회전망 지수까지 하락하자 인터넷전문은행 활성화를 통한 경제 성과 내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은산분리는 산업자본이 은행 지분을 소유하는 데 제한을 두는 것으로서, 비금융회사(산업자본)가 은행 지분을 10%(의결권 행사 한도 4%) 이상 가질 수 없도록 한 제도다. 은행이 기업의 사금고로 변할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돼 1961년 도입된 후 수차례 은행법 개정을 거쳐 현재와 같은 지분 보유 한도가 정해졌다.
최근 정부와 여당의 갑작스러운 입장 변화가 문제로 지적되는 까닭은 재벌 총수 일가의 사금고화 변질 및 경제력 집중 폐해 등 당초 정부와 여당이 은산분리 규제 완화를 반대했던 이유가 해소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현재 국회에 인터넷전문은행의 은산분리 규제 완화 내용을 담은 ‘은행법 개정안’ 2건과 ‘인터넷전문은행 설립 및 운영에 관한 특례법’ 3건이 1년 넘게 계류돼 있는 것도 이 같은 우려가 해소되지 않아서다. 금융위와 여당은 특별법 형태로 인터넷전문은행에 한해서만 은산분리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시민단체들은 2015년 박근혜정부가 정책 위기를 해소하기 위한 카드로 인터넷전문은행을 꺼내들었을 때와 다름없다고 지적한다.
지난 17일 금융정의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민생경제위원회, 빚쟁이유니온, 주빌리은행,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 한국파산회생변호사회, 이상 7개 단체는 은산분리 규제 완화 저지를 위한 ‘금융소비자단체 연대회의’를 결성했다. 금융소비자단체 연대회의 관계자는 “은산분리 규제 완화는 금융 규제의 근간을 허물 수도 있는 문제”라며 “정책 위기를 이유로 은산분리 규제를 완화해 다른 산업자본도 은행을 소유할 수 있게 되면 문제는 더욱 커진다”고 했다.
그럼에도 최근 분위기는 은산분리 규제 완화 쪽으로 급격히 쏠리고 있다. ‘인터넷전문은행 도입 1년의 성과 평가 및 향후 과제’라는 주제로 토론을 개최할 정도로 은산분리 규제 완화에 힘을 싣고 있는 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위를 소관 부처로 둔 국회 정무위원장에 선출됐고, ‘인터넷전문은행 설립 및 운영에 관한 특례법’ 제정안을 낸 정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정무위 민주당 간사에 선임됐다. 정 의원이 낸 특례법에는 인터넷전문은행에서 산업자본이 보유할 수 있는 지분 한도를 현행 4%에서 34%까지 상향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특히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 시절이던 2015년 10월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주최한 인터넷전문은행 설립 관련 토론회에 참석해 “인터넷전문은행에 한해 은산분리 완화를 하는 것은 은행의 기본을 지키지 않은 것”이라고 강조했지만, 지난 25일 열린 국회 업무보고에서는 “은산분리 완화에 찬성한다”고 말했다. 윤 원장은 금감원장 취임 전인 금융행정혁신위원장 때만 해도 은산분리 규제 완화를 반대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문재인정부가 경제정책 위기 때문에 금융위에 휘둘리고 있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은산분리 규제 완화는 사실 자본 조달 적정성도 살피지 않고 케이뱅크에 은행업 설립 허가를 내준 금융위가 전 정부에서 창조금융을 활성화할 당시 진행한 심사 소홀을 덮기 위해 추진하는 사기”라며 “현 정부와 여당이 갑자기 핀테크를 꺼내들고 인터넷전문은행 은산분리 규제 완화를 주장하는데, 이는 1년 전 자유한국당이 한 얘기와 같다”고 했다.
배동주 기자 ju@ilyo.co.kr
금융위의 ‘케이뱅크 일병 살리기’? 은산분리 완화 추진의 이면 은산분리 규제 완화를 담은 ‘인터넷전문은행 설립 및 운영에 관한 특례법’ 도입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금융위가 케이뱅크 살리기에 나섰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케이뱅크는 금융위가 인가한 국내 첫 인터넷전문은행이다. 케이뱅크는 지난해 4월 출범 이후 4개월간 50만 계좌를 개설하며 비교적 순조롭게 출발했지만, 적자 누적으로 자본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금융업계에 따르면 케이뱅크는 지난해 845억 원 순손실을 기록했다. 올해 들어서도 1분기까지 188억 원 순손실을 냈다. 같은 기간 케이뱅크 총자본비율은 13.48%로 지난해 말과 비교해 4.66%포인트 하락했다. 지난해 7월 국내 두 번째 인터넷전문은행으로 문을 연 카카오뱅크가 첫해 1045억 원 적자에서 올해 1분기 53억 원 적자로 손실 폭을 대폭 줄인 것과 대조된다. 카카오뱅크가 기존 모바일 네트워크 장악력과 5000억 원 유상증자에 힘입어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것과 달리 케이뱅크는 자본 부족으로 영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케이뱅크는 지난해 8월 1000억 원 규모 1차 유상증자를 추진했지만, 일부 주주 불참으로 200억 원가량 실권주가 발생했다. 지난 5월 진행한 1500억 원 규모 유상증자는 불발됐다. 케이뱅크가 자본 확충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케이뱅크 최대주주가 ‘산업자본’ KT라는 데 있다. 은산분리 규제에 따라 비금융주력자(산업자본) 즉 KT는 인터넷전문은행(케이뱅크) 지분 10%를 넘을 수 없다. 반면 한국투자금융이 최대주주인 카카오뱅크는 비교적 쉽게 자본을 확보하고 있다. 금융위는 케이뱅크가 자본 조달 적정성에 미달하는데도 은산분리 규제 완화를 전제로 인가를 내줬다. 은산분리가 완화되면 KT가 지분을 높일 수 있고 출범 이후 자본을 추가 조달하는 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예상한 것. 더욱이 금융위가 지난 박근혜정부에서 은산분리 규제가 완화될 것으로 본 탓에 케이뱅크의 자금 조달 방안에 대한 실질적인 심사를 소홀히 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성인 교수는 “핀테크를 활성화하려면 인터넷전문은행법과 금융혁신지원특별법을 조속히 입법해야 한다는 금융위 주장은 자신들의 부실 행정 문제를 덮으려 하는 의도“라며 ”정책위기에 봉착한 정부와 여당이 이에 휘둘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케이뱅크 관계자는 “카카오뱅크 최대주주가 58% 지분을 갖고 있는 것과 달리 케이뱅크는 최대주주 지분율이 낮고 20개에 달하는 주주사마다 사정이 달라 의견 조율에만도 상당히 애를 먹는다”라며 “은산분리 규제가 완화되면 과감한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는 대주주가 생길 수 있어 긍정적인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