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재벌’ 된 한국금융…55년 금기 깨졌다
카카오뱅크가 돌풍을 일으키면서 재벌들의 은행업 진출 문제가 주목받고 있다. 연합뉴스
외환위기 이후 외국인들이 국내 은행의 대주주로 등극한다. 김대중 정부는 10%룰을 회복시키고 내국인도 외국인과 마찬가지로 금융당국 승인을 전제로 10% 이상 보유를 허용하는 예외규정을 만든다. 하지만 비금융주력자는 의결권의 4% 이상 보유를 금지했다. 오랜 은산분리로 산업자본 외에는 은행 지분 인수 여력이 있는 곳은 없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대기업들은 금산분리 완화, 중간금융지주회사 도입을 줄기차게 주장했지만 번번이 야당의 반대로 법개정에 실패했다.
2015년 6월 18일 금융위원회는 인터넷전문은행 도입을 전격 발표한다. 이명박 정부 마지막 국무총리실장이던 임종룡 농협금융지주 회장이 2015년 3월 금융위원장으로 전격 기용된 지 석 달 만이다. 명분은 금융과 정보통신기술(ICT)이 융합된 핀테크 육성이다.
박근혜 정부는 ‘창조경제’를 내세워 은산분리 완화를 주장했다. 금융위원회는 은산분리 완화는 물론 인터넷전문은행과 관련된 국회 법개정이 이뤄지기도 전에 2015년 10월 1일 KT컨소시엄(현재 케이뱅크)에 첫 인가를 내준다. 인터넷전문은행이 아닌 ‘일반은행’ 인가다. 21세기 첫 일반은행 설립 인가다. 법적 근거 없는 인터넷은행을 위해 종합면허를 내준 셈이다.
케이뱅크의 지분율 5% 이상 주주구성을 보면 KT(8%), 우리은행(10%), NH투자증권(10%), GS리테일(10%), 한화생명보험(10%), KG이니시스(8%) 등이다. 케이뱅크 출범 당시 우리은행장은 서강대 출신 금융인 모임인 ‘서금회’ 출신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한화생명보험의 경우 김승연 그룹 회장의 장인이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영부인 대행을 하던 시절 충남도지사와 내무부 차관을 지냈다. GS리테일은 당시 전경련 회장사던 GS그룹 계열사다. KT와 NH는 각각 국민연금과 농협 소속으로 사실상 정부 영향력 아래 있는 곳이다.
금융위원회는 2015년 6월 “법개정 전에는 한 곳에만 인가한 후 소비자 반응을 보며 1~2곳을 추가로 인가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케이뱅크를 인가한 후 두 달도 채 안 된 2015년 11월 29일 카카오뱅크에 두 번째 은행업 인가를 내준다.
카카오뱅크 최대주주는 한국금융지주로 지분율이 58%에 달한다. 카카오와 국민은행은 각 10%씩이다. 현행 금융지주회사법과 은행법은 은행지주 동일인(최상위 지배자)이 산업자본이 아닐 경우에도 지분율을 최대 10%로 제한한다. 하지만 금융위원회의 승인을 전제로 그 이상의 초과 보유도 인정한다. 한국금융지주는 카카오뱅크의 최대주주가 되면서 금융투자지주회사에서 은행지주회사로 성격이 바뀌었다. 은행지주회사는 은행과 동일한 제한이 적용된다. 김남구 한국금융지주 부회장은 금융위에서 은행지주로서 한국금융지주 20% 보유를 승인받았다.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과 함께 대한민국 3대 금융재벌로 꼽히는 김남구 부회장은 이 결정으로 1961년 이후 대한민국에서 실질적인 경영권을 행사하는 첫 은행재벌이 됐다.
김 부회장의 부인 고소희 씨는 고병우 전 건설교통부 장관의 딸이다. 고 전 장관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영부인 역할을 하던 당시 청와대 경제비서관, 재무무 재정차관보 등을 지냈다. 고 전 장관의 아들은 고승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이다. 금융위원회가 김 부회장의 은행지주 동일인 보유지분율을 승인할 당시 고 위원은 금융위원회 상임위원이었다.
한국금융지주가 은행재벌 승인을 얻은 것에는 상당한 의미가 있다. 그동안에는 정부나 국책은행을 제외하고 누구든지 단일주주가 은행 또는 은행지주 지분 10% 이상(의결권 기준)을 보유하는 게 사실상 금기시됐다. 박정희 정권 탄생과 함께 만들어진 원칙이 55년 만에 박근혜 정부에서 깨졌다.
김남구 한국금융지주 부회장.
박근혜 정부의 공약 가운데 하나가 중간금융지주회사 허용이다. 중간금융지주회사는 이른바 ‘삼성특혜’로 알려져 있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합법적으로 이재용 부회장이 지배하는 삼성지주회사(가칭)에 넘길 수 있는 길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김남구 부회장이 은행재벌이 된 전례를 따르면 중간금융지주회사의 은행 소유가 가능해질 수 있다. 다만 지분을 늘리거나 최대주주가 변경될 때마다 금융당국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또 은행법과 은행법 시행령에 따라 금융위원회는 일반적인 한도를 초과해 은행을 지배하는 동일인에 대해서 반기마다 정기적인 요건심사를 해야 한다. 중간금융지주회사를 통해 은행을 소유하더라도 상당히 까다로운 규제를 받아야 한다.
‘재벌 저격수’로 꼽히던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도 중간금융지주회사에 긍정적인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은 최근 “합리적인 금산분리 관행을 만들려면 공정위의 사전 규제인 지주회사제도와 금융위원회의 사후감독인 금융그룹 통합감독시스템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체계화돼야 한다”며 “금융그룹 통합감독시스템이 도입되고 난 뒤 1∼2년 뒤에는 (중간금융지주회사도) 법 제도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2년이면 지금 영업 중인 인터넷은행들의 자본 확충이 절실해질 시점이다. 2년 후 금융지주를 앞세운 재벌들의 은행업 진출이 본격화될지 관심이 모아지는 이유다.
최근 금융권에서는 제3의 인터넷전문은행에 네이버가 진출할지 여부가 최대 관심사 가운데 하나다. 네이버는 최근 미래에셋과 손을 잡았다. 박현주 회장은 미래에셋의 지주사 전환을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지만, 전환이 이뤄진다면 한국금융지주와 마찬가지로 은행 대주주가 될 수 있다.
한편 국내 금융재벌의 은행 인수 시도는 처음이 아니다. 교보생명 역시 외환위기 이후 수차례 여러 은행 인수후보로 거론됐지만 그때마다 스스로 포기했다. 특히 2014년 하반기 우리은행 민영화 당시 교보생명의 참가가 유력했지만 당시 금융권에서는 금융당국이 1인 오너 체제인 지배구조를 내심 못마땅해 했다는 해석이 분분했다. 2014년 8월 출범한 최경환 부총리 체제가 변수였다는 추론도 제기됐다.
교보생명 창업자인 신용호 회장은 호남 출신이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인 지주들에게 항의하는 소작쟁의를 주도해 두 차례 옥고를 치렀다. 중국에서 사업을 하던 때에는 시인 이육사의 독립운동을 도운 것으로 알려졌다. 해방 후 민주문화사라는 출판사를 차린 후에는 ‘여운형 선생 투쟁사’를 발간해 큰 인기를 모으기도 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