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명진·정동영 전철 밟을까? 모범 생활정치 사례로 남을까? 갈림길
박원순 서울시장이 7월 22일부터 강북구 삼양동 주민으로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박혜리 기자
박 시장이 거주하게 된 옥탑방은 1층짜리 단독주택 위에 세워진 30.24m²(9평) 넓이의 조립식 철골조 주택이다. 방 2개에 거실과 화장실이 있는 이곳에서 박 시장 부부와 보좌진이 머문다. 한여름이지만 에어컨은 없다. 각 방에 한 대씩 설치된 선풍기 2대가 전부다. 박 시장은 평일에는 대중교통으로 서울시청까지 출퇴근하며 출근 전후와 주말에 동네주민들과 소통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한 동네주민은 “시장 부부 내외가 아침·저녁으로 언덕 위와 아래를 산책하면서 주민들이랑 얘기를 나누고 있다”고 전했다.
박 시장의 삼양동 살이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공유되고 있다. 7월 25일에는 박 시장의 인스타그램에는 동네를 청소하는 모습과 부인 강난희 여사와 함께 장을 보고 돌아오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올렸다. 해당 게시물에는 “이곳 삼양동의 생필품 공급체계가 모두 무너져 내렸네요”라며 “대형마트가 골목골목 있던 작은 구멍가게를 모두 없애버렸으니 자동차 없이 산 아래 사는 분들은 참으로 큰 고역이 되었지요. 방법이 없는지 고민해 봅시다”라는 글도 적었다. 서울시 관계자에 따르면 사진은 주로 함께 거주하는 보좌관이 촬영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박 시장의 옥탑방 한 달 살기에 대해 대선을 노린 전형적인 보여주기식 정치 아니냐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유독 선거철만 되면 정치인들이 전통시장에 들러 어묵을 시식하는 것처럼 옥탑방 거주 역시 일종의 ‘서민 코스프레’ 아니냐는 것이다. 임대료 200만 원(50일 계약 총액)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20일 전여옥 전 한나라당 의원은 SNS를 통해 “아무리 3선 시장이지만 서민의 삶이 어떤 것인지 까먹었나 보다. 폭염이 지글지글 타오르는 옥탑방에서 세금 200만 원 들여 한 달을 살아봐야 서민의 삶이 어떤지를 알 수 있나 보다”라며 “대개 서울시민들은 서민의 삶을 살고 있거나 절대 잊어버릴 수 없는 고생 했던 서민이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 서울시는 “취임사를 통해 약속한 부분”이라는 입장을 밝힌다. 서울시 자치행정과의 한 관계자는 “옥탑방이 아니라 사실 2층 조립식 건축물이다. 월세가 한 달에 200만 원이라고 알려졌지만 사실 입주 준비 기간까지 50일을 대여했고, 단기대여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월세와 단순 비교하기 힘들다”라며 “강북과 강남의 지역격차 해소는 시장님이 선거공약을 통해서도 약속했던 바다. 강북지역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책은 물론 일단 삼양동에 거주하시게 된 만큼 해당 지역에 대한 정책으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아라고 말했다.
실제로 정치인들이 민생을 살핀다고 나섰다가 오히려 역풍을 맞은 경우도 적지 않다. 2010년 일명 ‘황제의 식사’ 논란을 일으킨 차명진 전 자유한국당 의원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2010년 7월 차 전 의원은 쪽방에서 1박 2일 동안 머물며 최저생계비로 하루 나기 체험을 했고 그 후기를 개인 홈페이지에 올렸다. 차 의원은 글을 통해 ‘미트볼과 참치 통조림을 절반으로 나눠 먹고 끓은 물을 식혀 먹으며 세 끼를 3710원에 해결해 황제의 식사를 했다’고 밝혔다. 심지어 1000원을 타인을 위해 기부하고 600원을 문화비에 지출하기까지 했다는 글은 노동계의 거센 비판을 받았고 이를 조롱하는 패러디가 쏟아졌다. 결국, 차 의원은 2012 치러진 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한 데 이어 20대 총선에서도 고배를 마셨다.
정동영 민주평화당 의원은 2015년 4월, ‘관악을 4·29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서울 관악구 신림동 고시원에 입주했다. 정 후보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양치와 면도를 하는 사진과 함께 “대학동 고시촌 대학길 65번지 원단 원룸에 입주한 지 3주째, 고시촌 젊은이들의 꿈과 좌절 그리고 상처를 이해하고 배우려고 왔다. 선거 한복판 아침 눈꺼풀이 무겁다. 고시생들은 얼마나 힘들까”라는 글을 올렸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 의원은 당시 일각에서 ‘서민 코스프레’라고 조롱을 받았으며, 선거에서 오신환 당선자, 정태호 후보에 이어 3위에 그쳤다. 정 의원은 20대 총선이 되어서야 텃밭 출마를 통해 어렵사리 국회에 입성할 수 있었다.
박 시장이 거주하게 된 삼양동은 일반주택과 아파트가 혼재된 지역으로 주거환경과 기반시설이 타 지역에 비해 부족한 상황이다. 박혜리 기자
하지만 박 시장의 행보에 대해 지지를 보내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정치적인 쇼라고 하더라도 그런 노력이라도 필요한 때라는 얘기다. 또 선거를 목전에 둔 후보자가 아니라 상당한 영향력과 실행력을 지닌 서울시장의 이 같은 행보는 즉각적인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행보와는 차이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실제로 박 시장이 거주지로 택한 강북구 솔샘로는 가파른 언덕에 주택들이 밀집되어 있으며 다른 지역에 비해 복지 수요가 비교적 높은 곳으로 꼽힌다. 지은 지 수십 년이 넘은 노후주택이 대부분이지만 주변 지역보다 임대료가 크게 저렴한 편도 아니다 보니 빈집이 적지 않다. 박 시장이 거주하기로 한 옥탑방 역시 한동안 빈집이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특히 주민들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20여 년간 솔샘로에 거주했다는 한 주민은 “바로 건너편에 아파트 단지와 대로가 있지만, 이곳은 한 사람이 지나다니기도 좁은 골목이 많다. 저녁이 되면 무서워서 돌아다니지도 않는다”며 “돈 많은 사람이 집만 사 두고 살지 않는다. 환경은 이런 데 월세 50만 원 이하는 찾아보기도 힘드니 빈집이 많다. 밖에서는 절대 알 수 없는 사정들이기 때문에 시장님처럼 와서 직접 겪어봐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주민은 “주변은 모두 이명박 정부 시절 아파트 단지로 개발되었지만, 여기만 이대로다”라며 “하루빨리 개발이 이루어지는 것이 주민들이 바라는 바”라고 토로했다.
박 시장의 옥탑방을 구경 중이던 한 40대 여성은 “강북구에서 오랫동안 살았지만, 수유동, 신촌동 등도 대로변을 벗어나면 다 마찬가지다. 언덕은 높고 길을 좁아 차는 다닐 수도 없으며, 문화적으로도 낙후되어 있다”며 “박 시장의 지지자는 아니지만 이런 방법을 통해서라도 정치인들이 진짜 강북민들의 삶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혜리 기자 ssssch333@ilyo.co.kr
빈곤주택에서 루프탑 카페까지…옥탑방의 역사 서울 흑성동의 옥탑방들. “삼 층씩이나 되는 번듯한 양옥 건물의 옥상에 그렇게 허름한 주거공간이 얹혀 있을 수 있다는 사실. 그것을 나는 일종의 파격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이 아무리 각박해지고 사람들이 거처할 공간이 줄어든다고 해도 그렇지. 어떻게 옥상에까지 방을 들이고 세입자를 받아들일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1999년 제23회 이상 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박상우의 단편소설 ‘내 마음의 옥탑방’에 나오는 구절이다. 90년대의 풍경을 그리는 당시의 작품에는 옥탑방이라는 기이한 형태의 주거지에 대한 고민이 드러난다. 냉난방, 구조·재료의 취약성, 면적 등에서 인간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한 ‘최저 주거 기준’을 밑돌거나 겨우 충족시키는 ‘최소한의 주택’은 시대에 따라 변화했다. 한국전쟁의 영향으로 1960년대 판잣집과 천막집과 들어선 이후 1970년대 부분 임대형 셋집, 1980년대 지하주택과 연립형 비닐하우스가 생겨났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에 성행한 최소한의 주택이 바로 옥탑방, 쪽방, 고시원 등이다. 1990년대 이후에 성행한 빈곤주택은 과거와 달리 최소한의 공간 안에서도 사생활을 보장받고자 하는 욕구가 반영되어 있다. 구로동, 가리봉동 등 공단 주변에 형성된 일명 ‘벌집’이라고 불린 임대주택지는 작은 단위 세대로 공간이 나뉘어 있었고 개별적으로 출입하는 현관이 건물 외곽으로 여러 개 배치되어 있었다. 이러한 건물 옥상에 생긴 주거시설이 바로 ‘옥탑방’이다. 건물의 유휴공간을 최대한으로 늘린 옥탑방은 집주인으로서는 추가로 세를 놓을 수 있고 세입자로서는 저렴한 가격에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어 큰 인기를 끌었다. 쪽방·고시원에 비해 훨씬 독립적인 생활을 보장한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옥탑방의 가장 큰 단점은 취약한 냉난방이다. 옥탑방에 ‘겨울에 춥고 여름에 더운 집’이라는 웃지 못할 수식어가 붙은 까닭이다. 특히 오래전에 지어진 옥탑방의 경우 단열이 취약한 슬레이트 지붕을 사용한 경우가 대다수다. 건축업계 한 관계자는 “예전에는 기와랑 슬레이트 정도의 선택지만 있었는데 슬레이트가 값도 싸고 가벼워 올리기가 편했다”며 “그나마 요즘 지어진 옥탑방은 컬러 강판이나 샌드위치 패널을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단열효과가 훨씬 낫다”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빈곤주택 중 하나인 옥탑방도 시대에 따라 변화하고 있다. TV, 세탁기, 에어컨 등의 옵션은 물론이고 천장이 높고 세련된 인테리어를 갖춘 한 럭셔리 옥탑방도 등장하고 있는 것. 또 루프탑의 인기를 반영해 주택·상가 옥탑방과 주변공간을 개조해 카페, 식당, 바 등을 운영하는 경우도 볼 수 있다. 루프탑 카페를 좋아한다는 20대 여성은 “요즘 경리단길과 같은 핫한 지역에서는 루프탑 카페나 바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며 “멋진 전망을 즐길 수 있는 옥상만의 매력이 분명히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