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아우디 ‘디젤게이트’ 이어 BMW ‘화재게이트’ 손배 소송…왜 한국만? 정부 ‘초기 대응 문제’ 비판도
2일 오전 강원도 영동고속도로에서 BMW 차량이 주행 중 화재가 발생했다. 사진=강원지방경찰청 제공
독일 자동차 브랜드 폭스바겐과 아우디가 지난 4월 국내시장에서 판매를 재개했다. 지난 2015년 디젤차량 배기가스 조작 사건 이후 2년여 만이다. 당초 시장의 우려와는 달리 두 기업은 다양한 프로모션 등을 통해 실적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며 경쟁력을 입증했다.
이러한 선전에도 불구하고 한편에서는 디젤 게이트 논란에 따른 보상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당시 폭스바겐과 아우디는 국내 고객들에게 100만 원어치 쿠폰을 지급한 게 전부였다. 이마저도 20여 만 고객 유지를 위해 돌린 사과의 표시였지, 피해 고객들에 대한 보상은 아니라는 비판이 나왔다. 문제 차량 환불과 동시에 5000~1만 달러(약 560만~1119만 원) 수준의 보상을 준 미국과 캐나다 등 국가에서와는 너무나도 대조적이다.
이에 양사 차주들은 이들 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은 들어간 지 2년여가 지났지만, 여전히 1심이 진행 중이다. 소송 대리를 맡고 있는 법무법인 ‘바른’의 하종선 변호사는 “폭스바겐과 아우디는 자신들은 잘못한 게 없다며 끝까지 소송을 이어가겠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다보니 소송 과정에서 보상 계획은 전혀 논의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던 중 이번에는 또 다른 독일 자동차 브랜드인 BMW에서 차량 화재 논란이 불거졌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이 발생한 차량이 올해 들어서만 벌써 30대에 육박할 정도다.
BMW코리아와 국토교통부는 화재 원인을 엔진에 장착된 배기가스 재순환 장치(EGR) 결함으로 추정하고 있다. EGR은 배기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 디젤차량에 장착되는 장치다. EGR의 냉각장치에 결함이 생겨 냉각되지 못한 고온의 배기가스가 흡기밸브로 유입, 플라스틱 재질 부품에 옮겨 붙어 불이 난다는 것이다.
이에 BMW코리아 측은 지난 7월 26일 차량 결함을 인정하고 42개 차종, 10만 6000여 대를 리콜하겠다고 밝혔다.
리콜 결정에도 차량 화재 사고가 이어지다보니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등장했다. 게시판에 ‘BMW 520d 도로 주행을 중단해달라’ ‘BMW 차량의 터널 진입을 막아달라’는 등의 청원이 올라오고 있다. 글을 올린 이는 “BMW는 움직이는 시한폭탄 수준이다. 잦은 화재로 국민의 생명권과 재산권이 위협받고 있다”며 “BMW 차량의 리콜이 완료되는 시점까지 주행중단 조치를 해달라”고 호소했다.
이어 손해배상 청구소송도 제기됐다. BMW 차주들이 “화재를 직접 경험하진 않았지만 차량 이용에 제약이 발생해 금전적·정신적 피해가 있다”며 서울중앙지법에 BMW코리아와 딜러사인 도이치모터스를 상대로 소장을 제출했다.
차주들은 소장에서 “차량이 완전히 수리될 때까지 운행할 수 없고, 리콜이 이뤄지더라도 화재 위험이 완전히 제거될 수 없어 잔존 사용기한의 사용이익을 상실했다. 리콜 대상에 해당하는 차량이 10만 대가 넘기 때문에 부품 공급이 지연돼 리콜 시행 또한 지연될 것이 명백하므로 차량 운행에 지장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폭스바겐·아우디 소송에 이어 BMW 소송도 법무법인 바른의 하종선 변호사가 대리하게 됐다. 하 변호사는 “사용이익 침해에 따른 손해와 위자료를 합산해 손해액으로 각 500만 원을 청구했다. 추후 감정 결과 등에 따라 손해액을 확대해 청구할 계획”이라며 “현재 하루에도 30여 명이 소송 문의 전화를 해온다. 현재 모집된 인원도 수십 명에 이른다. 소송 참여자는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4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폭스바겐코리아 5종의 핵심 신차 라인업 공개 기자간담회에서 슈테판 크랍 폭스바겐코리아 사장이 직접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디젤 게이트 이후 2년 만에 폭스바겐과 아우디는 국내시장 판매를 재개했지만, 피해 차주들 보상 문제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고성준 기자
폭스바겐·아우디와도 2년간의 지리한 소송전을 이어가고 있는 만큼 BMW와의 소송은 어떻게 전망하고 있을까.
폭스바겐·아우디와의 손배 소송의 쟁점은 대기환경보전법에 따른 사전인증제도를 받지 않은 사기·불법 차량을 팔았다는 것이었다. 하 변호사는 “양사는 사전인증을 조작한 불법 차량을 판 것이다. 소비자들은 불법 차량인 걸 알았다면 사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손해배상액으로 차량 값 전액을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한다”며 “반면 폭스바겐과 아우디 측은 ‘리콜 받으면 차를 이용하는 데 제한이 없는데, 무엇이 손해라는 것이냐’라고 맞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BMW와의 소송은 자동차관리법의 자기인증제도에서 결함 은폐가 있었느냐를 밝히는 게 핵심이라고 전했다. 자기인증이란 자동차 제작사가 차량이나 부품이 각종 안전·환경기준에 적합한지 스스로 인증하는 제도다. 자기인증 조사에서 부적합 판정을 받으면 판매중지, 과징금, 리콜 등의 조치가 내려진다.
하지만 BMW코리아는 부품 결함을 은폐한 정황이 있다는 것이다. 하 변호사는 “지난 2015년 말부터 520d 차량에서 화재가 여러 번 발생했다. 디젤 차량이니 EGR을 화재 원인으로 일찍 지목할 수 있었음에도 원인불명이라고 사건을 무마했다”고 지적했다. 결함이 발견되면 미국의 경우 파악한 날로부터 5일, 한국은 30일 안에 리콜 조치를 해야 한다.
또한 BMW코리아가 이번에 리콜을 결정하면서 2017년 차량 부품으로 바꿔준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하 변호사는 “이는 이후에 설계변경이 됐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따라서 BMW 회사 측은 이미 기존 설계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지했다고 추론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외에도 화재 원인이 EGR 결함이라면 왜 한국에서만 화재 사고가 발생하고 있는지, 전세계적으로 똑같은 부품이 들어가는데 왜 한국만 리콜을 하는지 등의 의혹도 BMW 측이 투명하게 설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법무법인 바른 측에서는 폭스바겐·아우디와의 소송의 경우 올해 안에 1심 선고가 나올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최근 디젤 게이트와 관련해 독일에서도 소비자들이 승소한 판결이 여러 건 나오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독일 검찰이 최근 마르틴 빈터코른 전 폭스바겐 회장을 비롯해 조작에 관여한 39명 경영진에 대해 기소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 변호사는 “피고에 독일 본사가 들어가 있어 자료와 서면을 해외 송달하면서 재판을 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며 “독일에서의 사건 진행 과정과 판결도 한국 재판부에 제출하면 재판이 마무리되리라고 본다”고 전망했다.
BMW 소송에 대해서도 “한두 대도 아니고 수십 대가 정상적인 운행 중 화재가 났다. 발화가 시작된 엔진룸은 운전자가 통제하는 영역이 아니다. 제조사가 관리하는 영역이다. 따라서 입증책임도 BMW 측에 있다. 따라서 이번 사고는 상당히 승산이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현재 법무법인 바른 차원에서는 따로 화재사고 원인을 분석하고 있지 않고, 자동차안전연구원에서 진행 중인 조사 분석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한다.
일각에서는 독일 자동차 기업과 한국 소비자들 사이에 분쟁이 나는 것이 결국 한국의 환경부와 국토부의 사건 초기 대응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자동차업계 한 관계자는 “한국의 대기환경보전법은 미국의 법과 비슷하다. 그럼에도 한국의 환경부가 독일 본사에서 내놓은 리콜 방안을 승인해줌으로써, 폭스바겐과 아우디가 버틸 수 있는 구실을 허용해 줘 고객들이 권리를 보호받지 못하게 됐다”며 “이번 BMW 화재 논란을 봐도 국토부는 BMW 대변인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그들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문제가 처음 벌어졌을 때부터 자체적으로 차량을 가지고 테스트를 하는 등 진상조사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외국 자동차 업체들의 행태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도 한국의 사법부가 엄중한 처벌을 내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 변호사는 “독일의 자동차 기업들은 사고가 나도 결함을 인정하지 않는다. 제대로 자료 공개도 안 하고, 근원적 해결책을 내놓지 않는다. 모든 잘못을 운전자에게 돌린다”며 “한국 정부와 기관, 소비자들을 우습게 보는 것이다. 디젤 게이트 인증서류 위조사건이 대표적이다. 이번 기회에 결함은폐 의혹을 철저히 조사해 선례를 남겨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BMW코리아 측은 “EGR쿨러의 결함으로 파악, 자발적 리콜 결정을 내린 이후 긴급안전진단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고객들의 안전과 편의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제기되는 소송에 대해 성실히 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