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GR 결함’ 고의로 감췄나? 또다른 화재 원인 있나? 민사·형사 소송전 돌입
이광선 BMW 피해자모임 대표와 하종선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차량 화재 피해자들이 9일 오전 서울 중구 남대문경찰서에서 BMW 결함은폐 의혹 관련 고소장을 제출하고 있다. 최준필 기자
지난 6일 BMW 코리아가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사과의 말을 전했다. 연이어 터지는 BMW 차량 화재사고로 인한 사과였다. 여기에는 본사 임원인 요한 에벤비클러 품질 관리 부문 수석 부사장이 등장했고 김효준 BMW코리아 회장까지 직접 나서 고개를 숙였다. 긴급 기자회견과 등장한 인물들의 무게가 상황의 심각성을 느끼게 했다. 그만큼 BMW가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BMW 측은 사과 전에 리콜 방안도 발표했다. BMW 측은 “현재 리콜 대상 차량은 약 10만 6000대로 8월 20일 기준으로 BMW 본사에서 리콜에 착수, EGR(배기가스 재순환 장치) 모듈 전체 교체 혹은 쿨러 교체를 진행하고 EGR 파이프 세척을 실시한다. 고객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통해 빠른 시일 내에 리콜을 수행할 예정이다”라면서 “BMW 코리아는 정식 리콜 서비스 이전에 2주 내 완료를 목표로 고객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긴급안전진단을 실시한다. 긴급안전진단에서 EGR 모듈의 침전물을 발견하게 되면 곧바로 교체 작업에 착수한다”고 발표했다.
사과와 리콜 방안이 발표됐지만 BMW 차주들의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화재 위험 때문에 차를 운행하지 못하고 있고, 정부에서는 운행정지 시키겠다고 하는 데다, EGR 부분을 리콜받는다 해도 중고차 시장에서 BMW 차량 가격의 폭락은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BMW가 실제로 전소된 차주와 함께 아직 사고를 겪지 않은 BMW 차주 일부는 BMW 측에 소송을 제기하고 나섰다.
이번 소송에서 가장 치열하게 부딪힐 지점은 바로 은폐 여부와 ‘EGR’ 공방이다. 피해자를 포함한 차주들은 ‘다수의 화재 사고가 2015년부터 발생했음에도 신속하게 제대로 된 점검과 분석을 하지 않은 것을 두고 BMW가 차량 결함을 고의로 은폐하려 했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2016년 말부터 판매된 ‘2017년식 차량 모델’이 EGR 쿨러 및 EGR 밸브 설계가 모두 바뀐 것을 두고도 의혹을 제기했다. 통상 차량 모델 설계 변경은 1년 전부터 진행되기 때문에 진작부터 화재발생의 위험을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피해자들은 이처럼 BMW가 결함을 은폐한 동기를 ‘개별 차량에서만 발생하는 문제로 축소시켜 전체 차량 리콜 실시보다 비용을 줄이려고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BMW 측은 “화재 사고를 밝히는 것은 매우 어렵다. 특히 전소됐을 경우 더욱 그렇다. 2015년부터 패턴을 알아내기 위해 노력하다 EGR 문제로 결론 낸 것이다”라며 “EGR 문제라는 게 밝혀지기 이전부터 전소된 차량은 모두 보상해왔다. 2017년 모델은 모델 전체가 바뀐 것이지 EGR 문제를 알고 바꾼게 아니다”고 반박했다.
이와 같은 반박에 대해 피해자 측은 ‘전소된 차량도 엉켜붙어 굳어 버린 플라스틱의 모양새를 비교하거나, 플라스틱을 용해한 뒤 EGR밸브의 파손과 EGR쿨러의 손상 상태 등을 파악하여 발화원인임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를 하지 않았다. 은폐 시도로 볼 수 있다’고 재반박하고 있다.
이처럼 은폐 여부를 두고 충돌하는 이유는 은폐가 사실로 밝혀지면 처벌 수위가 매우 높기 때문이다. 자동차관리법 제78조 1호에 따르면 결함을 은폐·축소 또는 거짓으로 공개하거나 결함사실을 안 날부터 지체 없이 그 결함을 시정하지 아니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피해자 측은 김효준 BMW 코리아 대표, 석상우 동성모터스 대표, 박신광 한독모터스 대표, 권오수 도이치모터스 대표, 윤창운 코오롱글로벌 대표, 김성률 내쇼날모터스 대표를 피고로 소장을 접수한 바 있다.
BMW 측이 화재 원인으로 든 ‘EGR 쿨러 결함’도 또 하나의 쟁점이다. 피해자 측은 과연 EGR 쿨러만의 문제라고 단정 지을 수 있느냐고 주장하고 있다. 리콜대상 차량이 아닌 차량에서도 화재가 발생하고 있어 다른 화재원인이 따로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9일 발생한 2대의 화재에서 1대는 리콜 대상 차량이지만 다른 1대는 리콜 대상 차량이 아니었다.
BMW는 EGR 모듈이 전 세계 동일 부품이라고 하지만, 한국에서만 유독 화재가 많이 발생하고 있는 사실을 보면 다른 화재발생원인이 있다는 의혹이 논리적으로 제기되기 때문이다. 미국과 영국에서 BMW 차량에 화재가 발생했을 때도 화재원인으로 배선장치의 결함과 전기적 과부하로 보고 BMW가 리콜을 실시한 사실을 비춰 볼 때 한국에서 발생한 화재가 이들 원인으로 인한 것이 아닌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BMW 차주들의 소송을 대리하고 있는 하종선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화재가 난 차주 4명과 화재가 나지 않은 차주 17명이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9일에는 21명이 형사 고소도 제기했다”며 “향후 약 300명의 BMW 차주가 추가 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BMW 측에 소송을 제기한 차주들은 전소된 차주는 2000만 원을, 화재를 겪지 않은 차주는 500만 원을 청구했다. 화재를 겪지 않은 차주들도 중고차 가격하락, 운행 중단으로 인한 자동차 사용이익 손해, 정신적 피해로 3가지 이유를 들어 보상을 요구했다.
이들이 든 중고차 가격하락은 현재 진행형이다. 폭락 수준은 아니지만 서서히 가격이 빠지고 있다는 게 수입차 전문가들의 견해다. 팔려는 사람은 늘고 있는데 살 사람은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중고차 값이 잘 떨어지지 않고 제값을 받을 수 있다고 평가받던 BMW에게는 예외적인 상황이다.
리콜 대상 차량의 운행중단도 사실상 불가피하다고 보여진다. BMW가 리콜하겠다고 밝힌 차량만 10만 대가 넘기 때문이다. 정부가 내세운 점검 마감 시간 내에 점검을 마치지 못한 차량, 부품 수급이 되지 않아 EGR 쿨러 등을 교체받지 못한 차량이 엄청날 것으로 예상된다. 더군다나 김 장관의 발언대로 차량 약 10만 대에 대한 운행정지 처분까지 내려지면 BMW 차주들의 분노는 폭발할 것으로 보인다.
하종선 변호사는 “하늘 아래 영원히 감춰질 수 있는 은폐는 없다”며 소송전을 예고했다. BMW 측은 “소송 절차가 진행되면 성실하게 조사에 응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