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당원 “고위 당직자가 가슴 만진 뒤 ‘너도 좋지?’ 말해”…당에 신고했지만 조치 안 취해
바른미래당 여의도 당사. 사진 박은숙 기자.
A 씨는 너무 놀라 제대로 저항도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마침 당 관계자 곽 아무개 씨가 이를 목격하고 제지하면서 상황이 종료됐다.
곽 씨는 “당시 차 안에 있었는데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을 보고 바로 나가서 ‘뭐하는 거냐’고 했다. B 씨가 저를 보고 놀라더니 저한테 ‘미안합니다’라고 하고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B 씨가 만취 상태는 아니었고, 약간 취한 듯 보였다”고 증언했다.
곽 씨는 “당시 사건을 확실히 목격했고 정식으로 조사를 한다면 얼마든지 증언할 수 있다”고 했다.
A 씨는 “나는 두 아이의 엄마다. B 씨도 내가 두 아이의 엄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B 씨는 그 사건 이전에도 저한테 ‘첫 경험이 언제냐’는 등 부적절한 언행을 했지만 참고 넘어갔다”고 말했다.
A 씨는 “당시 ‘너도 좋지?’라고 묻는데 당황스러워 대꾸도 못하고 얼어있었다. 너무 수치스러웠다.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할지 몰랐다. B 씨와 친분이 있었기 때문에 그 사람 인생이 불쌍해서 사과한다면 그냥 넘어가려고도 했다. 그런데 사과는커녕 뻔뻔하게 나왔다. 이후 한 행사장에서 마주쳤다. 내가 당 관계자들한테 돕고 싶다는 말을 하고 있었는데 옆에서 듣고 있던 B 씨가 ‘A 씨는 말 안하고 예쁜 척하고 가만히 있어주면 된다’며 여성을 무시하는 말을 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B 씨는 “그 자리에 참석한 것은 맞다. A 씨가 자꾸 어디에 투자를 하라는 식의 말을 했다. 처음 만나는 당 관계자도 있어 그런 말을 하지 말라고 A 씨에게 주의를 줬다. 그래도 계속 이상한 말을 하길래 밖으로 불러냈다. 다소 언쟁이 있었는데 나한테 가까이 와서 이야기를 하려고 해 밀쳐냈다. 그런 몸싸움이 있었던 것은 맞지만 성추행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B 씨는 “몸싸움을 하고 있는데 누가 소리치면서 다가온 것도 맞다. 밤이었고 그 사람은 꽤 멀리 있어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잘못 보고 오해하고 있는 것 같다. 당시 나는 술을 많이 마시지도 않았고, 전혀 모르는 당 관계자들도 함께 만난 자리에서 성추행을 했겠느냐”고 주장했다.
B 씨는 “그날 이후에도 A 씨와 별 문제없이 지냈다. A 씨를 SNS운동원으로 추천해주기도 했다. 어느 날 A 씨가 대출을 받게 도와달라고 하더라. 내가 도와줄 수 없다고 했더니 갑자기 자기를 성추행하지 않았느냐고 메시지가 왔다. 술자리 이후 한 달 정도 지난 시점이었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주장했다.
앞서의 목격자 곽 씨는 B 씨의 주장에 대해 “(B 씨가) 그걸 몸싸움이라고 표현하나. 저는 몸싸움이 아니라 분명히 성추행하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다시 한 번 확인해줬다.
A 씨는 B 씨의 성추행을 신고하기 위해 경찰서에 가서 상담도 받았지만 지방선거를 앞둔 민감한 시기라 당에 피해가 갈까봐 정식 접수는 하지 않았다. A 씨는 대신 당에 신고를 해 최소한 B 씨를 제명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A 씨는 “B 씨의 행동보다 바른미래당의 대응에 더 실망했고 상처받았다”고 말했다.
A 씨는 어디에 신고를 해야 할지 몰라 당시 공동대표였던 박주선 의원실에 전화를 했다. 박 의원실은 중앙당 여성국으로 전화를 하라고 했다. 여성국 전화번호는 자신들도 모른다고 했다. 여성국 전화번호를 알 수 없어 중앙당으로 전화를 거니 중앙당에서도 여성국 번호를 몰랐다.
당 관계자는 “당시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어 여성국 인력을 선거 지원에 투입해 여성국이 잠시 해체됐었다. 그래서 여성국 전화번호를 알 수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에서는 일단 이메일로 피해사실을 접수하라고 했지만 누가 볼지도 모르는 이메일로 민감한 성추행 사실을 신고할 순 없었다.
이 과정에서 당시 공동대표였던 유승민 의원실 조 아무개 비서관에게 도움을 받기 위해 전화를 해봤지만 받지 않았다. 대신 조 비서관으로부터 ‘문자 메시지를 보내주세요’라는 문자 메시지가 왔다. A 씨는 문자 메시지로 ‘당에서 성추행을 당했다’고 알렸으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조 비서관은 “A 씨는 저에게 공천 면접을 보게 해달라는 등의 청탁을 했던 분이다. 그래서 A 씨의 연락은 의도적으로 받지 않았다”면서 “A 씨가 성추행을 당했다는 문자를 보낸 것은 제가 ‘문자로 말해 달라’고 답장한 후 약 20일 뒤였다. 이 문자를 최근에야 확인했다. 당시에는 그런 문자가 왔는지 몰랐다”고 해명했다. A 씨는 “그게 무슨 청탁이냐. 그리고 그 건과 이 사건이 무슨 관계가 있나. 황당하다”고 말했다.
신고를 위해 중앙당에 여러 차례 연락했던 A 씨는 미투지원단장을 맡고 있던 권은희 의원실에 연락해보라는 답변을 받았다.
A 씨는 권은희 의원실 최 아무개 보좌관에게 연락했지만 “의원실은 신고 창구가 아니다. 중앙당에 전달해주겠다”며 또 다시 신고를 접수받지 않았다.
당시 통화녹취록을 들어보면 A 씨가 “의원님이 미투지원단장을 맡고 계신데 무책임한 것 아니냐”고 말하자 최 보좌관은 “뭐가 무책임하냐”며 언성을 높였다. A 씨가 왜 화를 내느냐고 묻자 최 보좌관은 “기분이 언짢아서 그렇다”며 “그러시면 직접 (신고를 어디에 해야 하는지) 찾아보라”고 말했다.
최 보좌관은 당시 대응에 대해 질문하는 기자에게도 본질과 상관없는 꼬투리를 잡으며 언성을 높였다. 최 보좌관은 “‘고발’은 수사기관에 하는 거다. 당에는 ‘신고’하는 거다. 기자면 단어를 잘 알고 쓰라”며 언성을 높였다.
이후 최 보좌관은 A 씨의 성추행 피해 사실을 중앙당 장 아무개 차장에게 전달했고, 장 차장은 다시 김 아무개 여성국장에게 전달했다. 미투지원단장인 권은희 의원에게는 관련 사실이 보고되지 않았다.
미투지원단장을 맡으면 의원실로 여러 신고가 접수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왜 접수창구를 만들지 않은 것이냐는 질문에 권은희 의원은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오늘(8월 7일) 보고 받았다. 당시 지방선거 기간이라 제가 지방에 내려가 있었다. 그래서 최 보좌관이 중앙당에 신고를 하도록 안내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최종적으로 보고를 받은 김 여성국장은 “피해자에게 피해 사실을 이메일로 접수하도록 안내하라”고 부하 직원에게 지시했지만 A 씨는 이후 당으로부터 어떤 연락도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메일로 피해접수가 되지 않았지만 김 여성국장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왜 다시 피해자에게 연락해보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김 여성국장은 “최초에 당으로부터 이메일로 접수를 하라는 안내를 받았는데 접수를 안 한 것은 피해자가 신고할 의지가 없었던 것”이라며 “왜 접수를 안했는지 다시 전화해서 물어보는 것은 2차 가해가 될 수 있어 하지 않았다. 더 이상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그냥 넘어갔다. 우리가 잘못 대응한 것은 없는 것 같다”고 답했다.
바른미래당의 대응에 A 씨는 억울함을 토로했다. A 씨는 “이외에도 당원 생활을 하며 알게 된 전직 국회의원 등에게도 피해 사실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했지만 아무도 나서서 도와주지 않았다. 2차 가해를 걱정하는 당이 성추행 사실을 신고하려 전화한 피해자에게 화를 내느냐”고 말했다.
A 씨는 “바른미래당을 사랑해서 열심히 활동했는데 배신감이 크다. 고위당직자에게 당원이 성추행을 당했다는데 미투 운동에 앞장섰던 바른미래당이 외면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 이제는 바른미래당에서 탈당했고 개인적으로 B 씨를 수사기관에 고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바른미래당은 취재가 시작되자 뒤늦게 B 씨에게 소명서를 제출 받는 등 자체 조사에 착수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