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북미 정상회담 이후 밀거래 급증, 투자 빌미 먹튀 등 부작용도 속출 ‘주의보’
7월 31일 열린 남북장성급 군사회담. 사진공동취재단
몇 년 전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화장품 사업을 했던 이 아무개 씨는 최근 중국의 한 거래처 대표로부터 제안을 받았다. 북한에서 나오는 희토류의 매입처를 알아봐주거나 아니면 직접 사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처음엔 솔깃했지만 북한산 희토류가 거래 금지 품목이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거절했다. 이 씨는 “아쉬웠다. 워낙 싼 값에 살 수 있어 이익을 많이 남길 수 있었기 때문”이라면서 “위험을 무릅쓰고 거래를 하는 사업자들이 제법 있는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중국 현지에서 북한산 석탄을 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한다. 한 중국인 무역 중개상은 “올해 들어 북한 석탄이 쏟아지고 있다. 이를 처리하는 방법은 많다. 러시아산에 북한 석탄을 섞어서 ‘러시아산’ 라벨을 붙여 파는 것도 그 중 하나다. 중국이나 인도 등에 고객이 많다”고 말했다. 또 북·중 접경지대인 단둥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한 중국인도 “북한산 석탄을 찾는 외국 기업들이 있다. 그래서 전문적으로 북한과 외국 기업을 연결해주는 브로커들까지 있다”면서 “우리도 (브로커들을) 소개해줄 수 있다”고 했다.
석유가 북한으로 공공연히 반입되고 있는 모습도 종종 포착된다고 한다. 최근 평양의 휘발유 가격이 하락했다는 외신 보도가 나온 바 있는데, 이는 밀반입된 석유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란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유엔은 북한의 석유 제품 수입 한도를 연간 50만 배럴로 한정했는데, 이는 북한 내 수요를 채우기엔 턱없이 부족한 규모다. 북한이 사활을 걸고 석유 반입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중국 현지에서 이 과정을 자세히 취재한 한 외신기자의 말이다.
“북한 나진항을 거쳐 러시아로 들어가는 배에 북한으로 들어가는 석유가 실려 있다는 제보를 받아 확인을 해보니 그럴 개연성이 상당히 높다는 결론을 얻었다. 이밖에도 석유를 실은 화물차들이 하루에도 수십 차례 중국에서 북한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파악됐다. 중국이 북한의 석유 밀수를 묵인하고 있다는 증거라고도 볼 수 있다. 최근 북한의 석유 공급 상태가 눈에 띄게 좋아진 것도 이렇게 비공식적으로 밀반입되고 있기 때문이 아니겠느냐. 이러한 상황은 유엔에서도 알고 있는 것으로 전해 들었다.”
유엔의 대북제재결의안 및 미국의 독자제재로 부족해진 현금과 석유를 채우기 위해 북한이 이러한 밀거래를 시도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남북·미북 정상회담 이후 경제 제재 완화 기대감이 높아지자 이러한 움직임은 더욱 활발해진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거래하는 상대방도 어느 정도 부담감이 줄어들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아직 대북제재가 유효하다는 것을 감안하면 향후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눈길을 모으는 것은 북한 측이 투자 유치에도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북중 접경지역은 물론 베이징과 상해 등 대도시에서 기업 등을 상대로 투자를 유치하는 북한 관계자들이 종종 목격된다고 한다. 여기엔 한국 기업도 포함돼 있다. 한 대기업의 경우 제재 해제를 전제 조건으로 대규모 투자 방안을 북측에 전달했고, 이에 대해 북에서도 긍정적인 답을 보내온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 관계자와 상해에서 만났다는 한 외국계 기업 임원은 “조만간 대북 제재가 해제될 예정이니 미리 계약을 맺어두자고 했다. 나중엔 경쟁이 치열해 하고 싶어도 못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의 생산 공장을 북한에 건설하면 각종 특혜를 주겠다고 했다”고 귀띔했다. 중국계 회사의 한 임원도 “대사관 직원이라는 북한 인사와 만났다. 도로와 통신 등 사회간접시설 투자를 원했다. 공사대금을 철강 등 현물로 치러도 되느냐고도 물었다. 현재 투자 여부를 검토 중”이라고 했다.
중국 내부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들에 따르면 북측 관계자들의 이러한 활동을 중국 당국이 알고도 사실상 모른 체하거나 오히려 지원하고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앞서 석유의 밀거래를 묵인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과 궤를 같이 한다. 한 중국인 소식통은 “중국 모르게 북한이 이런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면서 “제재보다는 경제적 지원이 장기적 측면에서 우리에게 더 유리하다는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북한에서도 그 어떤 나라보다 중국의 투자를 절실히 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에 대한 주의보도 곳곳에서 들린다. 우선 투자를 핑계로 사기 사건이 공공연히 발생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수면 아래에서 은밀히 거래가 이뤄지다 보니 이를 악용한 브로커들이 중국에서 돈만 받고 이른바 ‘먹튀’를 하는 사례가 늘어났다는 것이다. 상해에 소재한 일부 기업들은 북한 출신으로 추정되는 브로커 리스트를 공유하며 이들에 대한 수사를 중국 당국에 요청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 대북 변수는 예측이 힘들고 리스크가 높다는 것도 투자자들의 주의를 요구하는 대목으로 꼽힌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