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협 “응급키트 구비 허용하라”vs의사협 “불법의료행위 하겠다는 거냐”
지난 6월 한의원에서 봉침 치료를 받던 30대 여교사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래픽=백소연 디자이너
8월 8일 부천 오정경찰서는 치료 과정에서 30대 여교사 A 씨를 사망하게 한 혐의(업무상 과실치사)로 한의원 원장 B 씨를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5월 허리통증으로 한의원을 찾은 A 씨는 B 씨의 권유를 받고 봉침치료를 받던 중 쇼크반응을 일으켰다. 이후 B 씨는 인근 가정의학과 의사를 불러 응급치료를 시도하고 차도가 없자 119구급대를 불러 A 씨를 인근 병원에 옮겼다.
하지만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A 씨는 6월 초 끝내 숨을 거뒀다. 유족들은 “가정의학과 의사가 방문했을 때는 쇼크에 대비한 약물도 구비돼 있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A 씨의 사망 원인을 ‘아나필락시스 쇼크’로 보고 있다. 과민성 쇼크라고도 불리는 아나필락시스 쇼크는 특정 물질에 과민하게 반응하는 증상이다. 봉침의 경우 체질에 따라 두드러기, 소양감, 호흡곤란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고 대부분은 30분 내로 소멸하지만 증상이 심한 경우 약물치료가 필요하다.
독으로 치료하는 봉침 시술은 적정량의 투여가 핵심인 만큼 전문의의 역할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벌침을 몸에 직접 쏘이는 상당수의 무면허 봉침 시술과 달리 한의원에서 진행하는 시술은 살아있는 벌에서 채취한 독을 적정 농도로 희석해 투여한다. 또 같은 양의 벌독을 주입해도 체질·건강상태에 따라 반응이 달라 사전 테스트가 필수적이다. B 씨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사전테스트를 진행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앞선 사례처럼 전문가에 의해 정상적으로 시술을 받아도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대한의사협회가 2015년 전국 응급의학과 전문의 66명을 대상으로 한방치료 부작용 사례를 조사한 결과, 37명의 응답자가 약침·봉침 치료로 부작용을 겪는 환자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빠른 응급처치가 중요한 까닭이다.
반면 대한한의사협회 관계자는 “한의사에 의한 정상적인 봉침 치료에도 개인 체질에 따라 문제가 발생하는 예도 있으나 이는 극히 드물다”며 “대한한의사협회는 이러한 아주 낮은 위험 가능성도 방지하기 위해 더욱 많은 한의원이 ‘전문의약품 응급키트’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의사협회 쪽의 반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A 씨의 사망을 계기로 8월 9일 대한한의사협회는 ‘전문의약품 응급키트’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한 상태다. 대한한의사협회는 성명서를 통해 “미국의 경우 응급구조사가 ‘에피네프린’ 등 다양한 응급약물을 투여할 수 있고 영국은 에피네프린을 포함한 20~30여 종의 약물투여가 가능하다”며 “우리나라는 양방의 무조건적인 반대에 부딪혀 의료인인 한의사가 봉독 이상 반응에 필요한 에피네프린과 항히스타민 등의 응급 의약품을 단지 전문의약품이라는 이유만으로 사용에 제한을 받는 실정”이라고 주장했다.
A 씨의 사례처럼 봉침에 의한 이상 반응은 빠른 대응이 무엇보다도 중요하지만, 양방과 한방의 갈등 속에 해결은 좀처럼 쉽지 않을 전망이다.
사건 관계자에 따르면, 6월 대한의사협회는 대한한의사협회가 한의사들에게 전문의약품 사용을 조장했다며 협회와 최혁용 협회장을 검찰에 고발한 상태다.
대한한의사협회 관계자는 “한의학적 근거에 따라 각 한의원과 한의병원에 에피네프린, 스테로이드 등의 전문의약품 응급 구조약의 사용을 안내한 것에 대해 양방 측이 트집 잡고 우리를 고발조치를 한 상태”라며 “양방에서도 사실상 봉침과 거의 같은 약품인 ‘아피톡신’을 사용하면서 쇼크에 대한 대비는 본인들만 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환자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만큼 중요한 가치는 없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사건에 대해 대한의사협회는 한의원 봉침 시술의 안정성 자체를 검증해야 한다며 반박에 나섰다. 봉침을 비롯한 모든 약침이 의약품 분류가 되지 않아 안전성 효과가 검증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대한의협은 8월 10일 “한의원의 봉침을 비롯한 약침행위의 위험성을 지적하며 복지부와 식약처의 관리·감독을 강력히 요구해오고 있으나, 복지부와 식약처는 관리책임을 서로 상대방에게 떠넘기며 제 역할을 하지 않고 있다”며 “한의원에 현대의학의 응급전문의약품을 구비하도록 하겠다는 주장은 한의원에서 아나필락시스 같은 생명이 위중한 환자를 진료하고 치료하도록 하겠다는 것으로 한의사들에게 무면허 불법의료행위를 시키겠다는 것”이라며 공식 입장을 밝혔다.
박혜리 기자 ssssch33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