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서울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열린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사퇴 관련 긴급 기자회견에서 입을 굳게 다물고 있는 설정 스님. 사진=연합뉴스
설정 스님은 13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조계종 사부대중에게 드리는 글’을 통해 “어떤 오해와 비난이 있더라도 종단 개혁의 초석을 마련하고 2018년 12월 31일 총무원장직을 사퇴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설정 스님은 지금까지 제기된 각종 의혹에 대해 “전혀 근거가 없고 악의적으로 조작된 것”이라며 “(진실을) 명백히 밝혀 한 점 부끄러움을 남기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종단 안정을 위해 스스로 사퇴하고자 했으나, 기득권 세력에 의해 은밀하고도 조직적으로 견제되고 조정되는 상황을 목도하면서 사퇴만이 종단을 위한 길이 아님을 깨닫게 됐다”고 퇴진 번복 이유를 설명했다.
자신을 향한 각종 의혹 제기와 불교계의 분열이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대로 물러나지 않고, ‘개혁’ 기치로 내걸고 4개월 남짓 총무원장직을 수행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앞서 설정 스님에 대한 주요 의혹은 지난해 선거과정부터 터져 나왔다. ‘서울대 학력위조 의혹’은 본인이 인정한 뒤 사과했지만, 거액의 부동산 보유 의혹과 숨겨둔 부인·자녀(은처자)가 있다는 의혹은 부인했다.
하지만 의혹 제기는 끊이지 않았고, 결국 설정 스님은 지난달 27일 기자회견을 통해 “조속한 시일 내에 종단의 안정과 화합을 위한 길을 진중히 모색해 진퇴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 1일에는 교구본사주지협의회장인 성우 스님을 만나 “16일 이전 용퇴하겠다”고 전했다.
사퇴 유보 이유로 개혁을 내세운 설정 스님은 “사부대중의 개혁에 대한 열망과 뜻을 담아 종헌종법을 재정비해 조계종 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하겠다”며 “혁신위원회를 새롭게 발족해, 실질적이고 명실상부한 개혁위원회가 되도록 하겠다. 종단 원로 스님과 개혁 의지가 투철하고 경험 있는 분들로 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강조했다.
또한 설정 스님은 혼탁하고 세속적이라는 비판을 받는 총무원장 선거 제도에 대해 “직선제를 포함해 다양한 방안에 대해 의견을 수렴해 모든 사부대중이 인정할 수 있는 선거제도를 만들겠다”고 답했다.
사퇴 기한을 연말로 못 박은 이유에 대해서는 “나는 종권에 연연하지 않고, 일종의 배수진을 친 것”이라며 “그동안 많은 스님과 불교 단체들이 많은 주장을 했는데, 그분들이 나름대로 생각한 바를 불교 개혁으로 엮어내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설정 스님이 즉각적인 사퇴는 거부했지만, 정상적으로 총무원장 업무를 수행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설정 스님은 지난 9일 성문 스님을 새 총무부장으로 임명하는 등 ‘인사권’을 행사했지만, 성문 스님은 하루만인 10일 사퇴했다. 이어 13일에는 현고 스님을 총무부장으로 다시 임명하려 했지만 이마저도 좌절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오는 16일 열리는 중앙종회에서 설정 스님에 대한 총무원장 탄핵안이 가결될 가능성도 있다.
이에 따라 조계종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혼돈으로 더욱 빠져들 것으로 전망된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