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여고 내신문제 유출 의혹 핵심 근거로 학원 레벨 평가 제기돼 ‘웃프다’
숙명여자고등학교에서 교무부장의 쌍둥이 딸이 동시에 전교1등을 한 것에 대해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일요신문DB
발단은 숙명여고에 재학 중인 쌍둥이 자매가 2학년 1학기 문·이과에서 나란히 전교 1등을 한 것이었다. 성적이 단기간에 크게 오르며 칭찬받아야 할 학생들에게 따가운 시선이 쏟아진 것은 쌍둥이 자매의 아버지가 같은 학교의 교무부장으로 재직하고 있어서다. 교사들 사이에선 간부급으로 통하며 차기 교감 승진을 앞두고 있는 현 아무개 교사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시험지를 유출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 것.
처음 의혹은 지난 7월 교육청에 민원이 들어가며 시작됐다. 그 뒤 대치동 학부모들이 교육 정보를 공유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디스쿨’과 페이스북의 ‘대치동 대신 전해드립니다 페이지’에서 논란이 일파만파로 확산됐다. 최근들어 전국에서 학교 내신 성적을 잘 받기 위해 시험지를 유출하는 사건사고가 터지며 시험지 유출 의혹에 더욱 불을 지폈다. 하지만 근거로 제기된 것들이 신빙성이 떨어지고, 허위사실이 유포되며 학생들의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
고교 내신 시험의 경우 교무부장은 시험지 원안 검토의 결재라인에 있어, 시험지를 볼 수 있다. 해당 교무부장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켜 죄송하다. 사죄의 말씀을 올린다”며 제기됐던 의혹에 대해 해명을 내놨다. 숙명여고 교장도 13일 공식 해명을 냈다. 하지만 당사자의 해명이 도리어 의혹에 불을 붙였다는 평가가 나왔다.
논란이 됐던 부분은 △교무부장의 두 딸이 2018 숙명여고 2학년에 재학 중이다 △두 딸의 1학기 내신이 문과 이과 각 전교 1등이다 △두 딸의 1학년 전교등수는 300등대다△두 딸 중 최소 한 아이가 대치동 A 수학학원의 낮은 레벨 클래스에 재학 중이다 △두 딸 중 최소 한 아이가 학교 수학시간에 기본적인 문제 풀이도 못했었다 등이다.
현 교사의 해명에 따르면 숙명여고는 재직교사의 자녀가 같은 학교에 다닐 경우 지켜야 할 학년배제와 출제배제 등 원칙을 철저히 지켜왔다. 학급·수업·출제·감독 등에서 배제할 경우 교사는 자신의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서 근무할 수 있다. 다만, 공교롭게도 쌍둥이 자매가 동시에 전교 1등을 했지만 이는 결과론적인 것이라 어떻게 설명할 방법이 없다는 것.
특수목적고와 외고 진학을 염두에 뒀던 쌍둥이는 숙명여고에 입학한 뒤 고교생활에 적응을 못했다. 자매 중 이과로 진학한 학생은 1학년 1학기 전교 59등에서 2학기 전교 2등으로, 2학년 1학기 전교 1등을 했다. 문과로 진학한 딸은 1학년 1학기 121등을 해 수학에 자신감이 떨어진 상태였지만 수학클리닉을 병행하는 등 집중학습을 통해 1학년 2학기 전교 5등으로 성적이 상승했다. 결국 고교에 입학한 뒤 쌍둥이 자매가 피나는 노력을 기울인 끝에 성적이 올랐다는 것이다.
성장하는 학생이 노력을 기울여 성적이 향상되는 것에는 근거나 배경을 지적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대치동에서는 쌍둥이 자매의 본 실력에 대해 유명 A 수학학원 레벨 테스트를 핵심 근거로 들고 있다. A 학원은 대치동의 유명한 스타강사가 원장으로 있고 분원도 여러 지역에 있다. 이 학원 수업을 듣기 위해서는 무조건 레벨테스트에 응시해야 하는데 응시료도 수강생이 내야 할 정도로 까다롭고, 수준에 따라 학생을 가려 받는다. 스타강사 한 아무개 원장은 1레벨을 비롯한 최상위권 고3 학생만 직접 강의하고 있다.
학부모와 학생들은 쌍둥이 자매가 A 학원 1~5레벨 중 낮은 수준의 학생이 다니는 3레벨과 5레벨 반에 다닌다는 것을 실력 척도의 근거로 삼았다. “3레벨이라는 말에서 이미 의혹이 아닌 (성적 조작은) 진실이다” 등과 같은 글들이 온라인에 우후죽순 올라왔다. A 학원의 1레벨 반에는 강남 8학군은 물론 서울 여타 지역의 전교 상위권 학생들이 포진해 있는데, 3레벨 수준의 학생이 전교 1등을 하는 것이 어불성설이라는 주장이다.
사설 학원의 레벨테스트에 대해서 숙명여고의 현 교무부장은 즉각 해명했다. 쌍둥이 자매가 중학생 시절 선행학습을 하지 않아 낮은 평가를 받은 것이며, 수학 공포감 극복을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인 끝에 수학성적이 상승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 공교육의 최전선에 있는 고교 교무부장이 사설학원 평가 결과까지 해명하는 것이 씁쓸하다는 반응이다.
숙명여고를 졸업한 한 학생은 “성적을 조작했다는 근거로 학원 레벨테스트를 드는 것이 우스꽝스러운 일이다”며 “A 학원이 유명 학원인 것은 맞지만 사교육 시장에서 얻던 성적이 대학 입시결과와 꼭 연관되는 것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A 학원 측은 숙명여고 자매의 성적 수직상승 논란에 대해 “학생 실력에 따라 입원이 불가할 수도 있지만 여러 레벨의 클래스가 있어 수강은 대부분 가능하다. 논란이 됐던 원생과 관련해서는 더 이상 답변드릴 수 없다”고 말했다.
대치동 학부모들은 강남 8학군에서는 1점 상간에도 학생이 촘촘하게 몰려있어 단번에 내신 성적이 수직상승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전국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모의고사와 달리, 평균적으로 성적이 높은 강남권 학생들끼리 경쟁하는 내신은 쉽사리 성적을 뒤집기가 어렵다는 것. 더군다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쌍둥이 자매가 내신 실력은 조작했지만 공인된 실력 평가를 회피하기 위해 3월과 6월 모의고사를 치르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확인 결과 쌍둥이 자매는 모의고사를 제대로 치른 것으로 밝혀졌다. 숙명여고 관계자는 “지자체별로 다르지만 서울시 경우 부모와 자식이 한 학교에 다니는 것이 금지되지 않는다”며 “학교는 자체조사 및 학생들의 피해 상황과 분위기를 파악하고 사태 진화를 위해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교육청은 13일 숙명여고에 본청 장학사 1명과 강남서초교육지원청 인력 2명 등을 파견하고 8시간에 걸쳐 사실관계 확인을 마쳤다. 16일부터는 교육청 특정감사팀이 서울시교육청 감사실에 팀을 꾸려 감사를 진행한다. 대입 학생부종합전형에 대한 신뢰도가 땅에 떨어진 데다 민감한 내신 조작 의혹이 제기돼 강도 높은 감사가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의 숙명여고 관계자는 “논란이 된 부분에 대해 교육청은 물론 학교 측에서도 진위 여부를 파악하고 있다. 어린 학생들이 큰 상처를 입지 않도록 허위사실이나 근거 없는 의혹이 제기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