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하드 업체 ‘큰손’과 필터링 업체 간 유착 의혹…오래전부터 긴밀한 관계 소문 파다
디지털장의사 업체는 애초 ‘잊힐 권리’에 따라 온라인상에 남은 고인의 흔적을 없애주는 인터넷 기록 삭제 대행업체로 출발해 지금은 기업과 개인에 대한 불필요한 기록을 지워주는 온라인 평판 관리 작업을 주로 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몰카 관련 범죄가 급증하면서 피해자들의 의뢰를 받고 웹하드 사이트와 SNS 등에 불법 유포·유통되고 있는 영상을 삭제해주는 역할도 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일부 디지털장의사 업체가 웹하드 업체와 유착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7월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역 인근에서 여성들이 몰카 범죄에 대한 편파수사 규탄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2016년 5월부터 시행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에 따르면 특수유형부가통신사업자(웹하드사업자)는 불법음란정보 유통을 방지하기 위해 의무적으로 기술적 조치를 이행해야 한다. 웹하드 업체는 음란물 유통을 막기 위해 관련 금칙어를 설정하고 차단 필터링을 적용해 자체 모니터링을 해야 한다. 또 웹하드 업체들은 필터링 업체와 함께 기술적 조치(필터링)도 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웹하드 사이트에서는 디지털성범죄 촬영물이 유통되기 일쑤다. 불법 촬영물 관련 키워드를 ‘금칙어’로 설정해놓긴 했지만, 변칙 키워드를 통해 계속 검색·유포되는 것. ‘국산’, ‘국노’라는 직접적 단어로는 검색되지 않지만 다른 검색어로 얼마든지 국내에서 불법 촬영된 몰카나 불법 영상물을 찾아볼 수 있다.
이 때문에 해당 영상물 피해자들은 개인적으로 디지털장의사 업체에 큰 돈을 주고 불법 촬영물을 삭제해달라고 요청한다. 디지털장의사 업체의 기록 삭제 대행서비스는 기간과 유출 정도에 따라 비용이 천차만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디지털장의사 업체가 웹하드 업체와 유착관계에 있다는 점이다. 피해자들이 절실한 심정으로 찾은 디지털장의사 업체마저 웹하드 업체와 연결돼 있으니 영상물이 제대로 삭제될 리 없다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피해자들은 불법 영상물 유포를 ‘방조’한 웹하드 업체에 울고, 이와 연결된 디지털장의사 업체에 또 한 번 울게 되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여성가족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삼화 국민의당 의원은 “웹하드사와 필터링업체(디지털장의사 업체) 간 유착관계 관련 제보를 받았다”며 “웹하드 업체는 불법 촬영물을 유통하고, 장의사 업체는 해당 영상을 삭제하며 돈을 버는 구조”라고 말했다. 김 의원의 주장에 따르면 불법 촬영물이 유통되는 국내 대형 웹하드 업체와 불법 영상물을 걸러주는 필터링 업체가 긴밀히 연결돼 있으며, 해당 업체는 또 디지털장의사 업체를 차려 피해자들에게 돈을 받고 영상을 삭제해준다. 결국 디지털성범죄의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 영상물을 유포하는 웹하드 업체에 돈을 지불하면서 피해 구제를 요청하는 셈이다.
이른바 ‘웹하드 카르텔’의 의혹과 실상이 짙어지자 많은 사람이 분노를 금치 못하고 있다.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에서 열린 ‘제4차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에는 4만 5000여 명이 참여해 ‘웹하드 카르텔’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집회 주최 측인 ‘불편한 용기’는 “경찰은 생산자, 유포자, 소비자, 디지털장의사, 필터링 업체로 거대하게 연결된 웹하드의 유착관계를 철저히 조사하고 처벌의 자리에 서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도 웹하드 카르텔과 디지털성범죄 산업에 대해 특별 수사를 요구하는 청원이 올라왔으며, 지난 22일 기준 12만 4400여 명이 동참했다.
최근에는 웹하드 업계 1, 2위인 A 사와 B 사가 ‘웹하드 카르텔’ 의혹의 중심에 섰다. 지난해 매출 210억 원과 159억 원을 각각 기록한 웹하드 업체 A 사와 B 사의 공시를 확인해본 결과, 두 회사의 지분은 모두 H 사가 100%를 보유하고 있다. 서로 다른 회사처럼 보이지만 실제 소유주는 같은 것. A 사와 B 사는 또 필터링 계약을 맺은 필터링 업체 C 사와 긴밀한 관계인 것으로 의심된다.
이들 회사의 등기부등본을 살펴보면 이들이 얼마나 밀착돼 있는지 짐작 가능하다. 이들 회사는 모두 경기도 성남시에 위치한 같은 빌딩 같은 층 옆 사무실에 있었다. A 사가 805호, B 사가 808호, H 사 807호, 필터링 업체 C 사는 809호를 사용했다. 유착 의혹이 일자 필터링 업체인 C 사는 회사를 이전하고 지난 3일 등기부상 주소도 변경됐다. C 사가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진 디지털장의사 업체는 현재 홈페이지를 닫은 상태다.
익명을 요구한 IT업계 한 관계자는 “A 사와 B 사의 실제 소유주는 동일인물이며, 웹하드 업계의 큰손으로 알려져 있다”며 “3~4년 사이 업계가 다소 침체해 60개가량 운영되던 것이 현재 40여 개 정도가 남아 있으나 A 사와 B 사의 실소유주가 다수 웹하드 업체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A 사와 B 사가 필터링 업체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 업계에 파다하다”고 덧붙였다.
디지털성범죄 피해자를 지원하는 여성인권운동단체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한사성) 서승희 대표는 “세 회사가 이렇게 붙어 있으면 유착관계라는 의혹이 들 수밖에 없다”며 “현재 알려진 업체뿐 아니라 시장지배력이 상당한 다른 필터링 업체 또한 한 대형 웹하드 업체와 유착관계인 정황이 포착됐다”고 말했다.
경찰청은 지난 13일 경찰청 사이버안전국 산하에 사이버성폭력 특별수사단을 구성해 특별단속에 나선다고 밝혔다. 특별수사단은 주요 웹하드 업체와 웹하드 사이트에서 활동하는 헤비업로더, 유착 의혹이 제기된 디지털장의사 업체 등을 종합 단속할 계획을 갖고 있다. 특별수사단 관계자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에서 제보받은 내용들을 확인하고, 최근 거론되는 업체들 위주로 수사를 해나갈 계획”이라며 “100일간은 상황실을 설치하는 등 특별히 집중적으로 조사하고 이후에도 계속 단속할 것”이라고 전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