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병원 출신 의사, 수만 건 촬영해 검거됐는데도 ‘간호사 몰카’ 연관 수사 안해
서울대병원 산하의 B 병원에서 간호사 탈의실 몰카가 발견됐는데도 경찰이 제대로 조사에 임하지 않아 피해자들이 고통받고 있다. 일요신문 DB
서울대병원 산하의 B 병원 몰카가 발견된 것은 2015년 1월이다. 병원 간호사들이 옷을 갈아입는 경의실을 불법 촬영한 영상이 발견된 것. 병원 측은 심각한 고통을 받던 간호사들과 면담을 했으나 노조 측이 문제제기를 하지 않도록 하는 데 더욱 신경을 썼다. 동시에 병원에 이 사건에 대한 모든 처리를 위임토록 했다. 몰카 촬영 사건 처리를 위임받은 병원은 서울동작경찰서에 고발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범인은 잡히지 않았지만 경찰은 2개월 만에 수사를 종결했다.
문제는 두 달 뒤인 2015년 5월 해당 병원에서 근무했던 의사가 몰카촬영 및 유포 혐의로 검거되며 불거졌다. 경찰은 첩보를 통해 이 아무개 씨를 검거했다. 서울의 유명 의과대학을 졸업한 이 씨는 2013년 앞서 몰카사건이 발생한 B 병원에서 근무를 했다. 가정의학과 전문의 수료를 한 뒤 이 씨는 강원도 평창에서 공중보건의로 대체복무를 하고 있었다. 이미 2012년 성범죄특별법 위반 혐의로 처벌 받은 전례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씨의 몰카 범죄는 장소와 대상을 가리지 않고 이뤄졌다. 경찰에 의해 드러난 것만 해도 130여 명을 대상으로 2만 건 이상의 불법 촬영이 이뤄졌다. 여자친구와의 성관계 영상에서부터 카페 여자화장실, 산부인과 진료실, 지하철 등에서 수많은 여성들의 신체를 촬영한 것이 드러났다.
이 씨는 동료 여의사, 간호사, 스튜어디스 등을 비롯해 마취상태의 환자까지 성범죄의 대상으로 삼은 것으로 알려진다. 죄질이 나쁜 것은 물론 의사로서 최소한의 직업윤리마저 저버린 셈이다. 또 그는 불법촬영물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알게 된 지인들에게 유포한 혐의도 받았다. 결국 이 씨는 2015년 8월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 받았다.
민주노총 의료연대본부 서울지역지부 서울대병원분회에 따르면 경찰이 확보한 이 씨의 몰카 영상 중에 ‘병원 탈의실’과 같은 이름의 영상도 다수 발견됐다. 노조는 경찰의 미온적 수사태도를 비판하고 나섰다. 한 병원에서 몰카 영상이 유출된 후 두 달 만에 해당 병원 의사가 몰카범으로 붙잡혔지만 두 사건 간 연관성에 대해 조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조는 문제 영상을 삭제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동작경찰서는 삭제가 어렵다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몰카 피해를 입은 간호사는 2015년 직장을 그만두고 해외로 출국했지만 여전히 과거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피해자는 “제대로 해결하고 사과 받지 않는다면 절대 저절로 잊히지 않는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며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여전히 범인은 잡히지 않고 있고, 당시 경찰의 수사결과도 공개되지 않고 있다. 노조는 사건결과를 제공해달라고 주장했으나 병원 측은 어떠한 답변도 내지 않고 있다.
3년이 지난 뒤 다시 노조가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지난 7월 온라인에 다시 간호사 몰카 영상이 올라오면서다. 피해자들은 또다시 고통에 시달리고 있으며, 새롭게 드러난 영상에서 추가 피해자까지 발생했다. 추가 피해자 발생으로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 10명 이상의 병원 직원이 피해를 입은 것으로 파악된다.
간호사와 노조는 범죄가 발생했을 때 범인을 잡지 못하고, 미온적 대응에 그친 경찰과 병원을 비판했다. 특히나 해당병원에서 근무했던 의사가 수만 건의 몰카를 촬영하다 검거됐는데도 경찰이 B 병원에서 발생한 몰카 사건과 연관해 수사하지 않은 것은 쉽사리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서울대병원 몰카 유출 사건이 남성이 피해자인 몰카 사건에 비해 경찰의 고질적인 ‘편파수사’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병원에서 유출된 몰카가 간호사 탈의실에 설치돼 외부인보다는 내부인이 범인일 확률이 높고, 한정된 인원을 대상으로 수사를 하면 범인을 색출할 수 있다는 것도 여기에 힘을 실었다. 몰카 범죄가 너무나 빈번하게 발생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경각심을 크게 갖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현재 경찰은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에 ‘B 병원 탈의실 불법촬영 사건’ 재수사를 맡겼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