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리면 얄짤 없다”…어제의 아군이 오늘은 적군
친문계로 분류되는 정청래 전 의원(왼쪽)이 문파들의 비판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문파들이 정 전 의원에게 처음부터 적대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해 19대 대선 직전 정 전 의원은 문재인선대위 국민참여공동본부장을 지내기도 했고, 문재인 당시 대선 후보의 당선을 위해 SNS 홍보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친 바 있다. 정 전 의원은 자신의 트위터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시대를 열기 위해 이 한 몸 바치겠다’ ‘오로지 정권교체 민주정부 수립을 통한 적폐청산을 위해 뜻을 모으고 힘을 합쳐 뛰고 또 뛰겠다’며 적극적으로 친문으로서의 행보를 보였다.
그렇게 친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던 정 전 의원에게 문파들은 왜 등을 돌렸을까. 여기에는 뜻밖의 인물,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이해찬 당대표 후보가 등장한다. 정 전 의원은 지난 8월 25일 민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이해찬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정 전 의원은 같은 달 2일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나는 이해찬 전 총리가 문재인정부의 성공과 어쩌면 원심력이 작동할 수 있는 문재인 정권 중반기를 안정적으로 이끌어갈 적임자로 판단했다”며 지지 메시지를 던졌다. 다음날도 ‘강한 민주당→오직 문재인정부 성공→결국 이해찬’이라고 입장을 굳혔다.
문제는 정 전 의원이 이 후보를 지원사격하기 위해 문파들이 밀어주고 있던 김진표 후보를 지속적으로 견제‧비판했다는 점이다. 정 전 의원은 ‘더불어민주당 지지자의 선택(1위: 이해찬), 자유한국당 지지자의 선택(1위: 김진표)’라는 글과 함께 이와 관련된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했다. 또한, 김 후보가 ‘최순실재산환수특별법’에 서명을 하지 않은 것을 끌어와 비판하기 시작했다. 이런 공세에 김 후보 측은 ‘위헌 소지’ 등을 내세우며 그 이유를 해명했다.
그럼에도 정 전 의원은 김 후보의 2년 전 ‘전술핵 배치 주장’ 등의 과거 발언을 다시 재조명하며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그러자 김 후보 측은 당시의 발언 전문을 인용하며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에 나섰다. 이후에도 정 전 의원은 ‘김 후보가 삼성특검 조기 마무리를 주장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이어가며 네거티브 공세에 집중했다. 정 전 의원의 비방과 김 후보 측의 반박이 반복된 것이다.
마찰 끝에 김 후보 측은 정 전 의원을 향해 “민주당의 전당대회가 진행 중인 기간에 정청래‧정두언 등 출연자와 함께 김진표 후보에 대한 비판적인 내용을 방송(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자주 내보낸 바 있다”며 “김 후보가 (해당 방송의) 출연을 거절한 것은 이 같은 프로그램의 공정성 문제와 함께 시간상 출연이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반격에 나섰다. 여기에도 정 전 의원은 “제가 뉴스공장에 출연해 김 후보의 어떤 부분을 비판했다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밝혀달라”며 강경한 대치를 이어갔다.
‘친문’이던 정 전 의원이 이 후보를 지지하고, 김 후보를 견제한 것에 문파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정 전 의원이 꾸준히 글을 작성해오고 지지자들과 소통해온 온라인 커뮤니티 ‘엠팍(MLB PARK)’에서도 정 전 의원에 대한 비판‧비난글이 쇄도하기 시작했고 대부분의 이용자들이 정 전 의원으로부터 등을 돌린 상태다.
문파가 정 전 의원을 비판하는 배경에는 이재명 경기지사가 있다. 이 지사는 현재 문파들 사이에서 견제해야 할 공공의 적이다. 이 지사가 문파들에게 적이 된 것은 지난 6‧13 지방선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 지사의 아내 김해경 씨로 추정되는 인물이 트위터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비방‧모욕하는 내용의 글을 작성해 문파들은 이 지사의 지지를 철회했다. 이후 조폭연루의혹‧여배우스캔들 등이 터지며 문파들은 민주당 지도부를 향해 ‘이재명 제명’을 요구해 왔다.
이처럼 이 지사를 둘러싼 문파들의 신경전이 과열되고 있던 상황에서 민주당 전당대회의 막이 올랐고, 온갖 논란에 휘말린 이 지사의 거취가 뜨거운 감자로 올랐다. 여기서 이해찬 후보와 송영길 후보는 이 지사를 감쌌고, 김 후보는 이 지사의 사퇴를 주장하며 초강수를 뒀다. 문파의 눈엣가시였던 이 지사를 김 후보가 공격하자 문파의 눈이 김 후보에게 쏠린 것이다. 물론 모든 문파가 그런 것은 아니다. 일부 또는 대부분의 문파가 그렇게 ‘김진표 지지’를 시작했는데, 자칭 문파라는 정 전 의원이 김 후보를 공격하니 문파들의 ‘정청래 역공’도 시작된 셈이다.
아무리 아군인 친문이라 할지라도 용납할 수 없는 작은 실수를 저지르면 선을 긋고 적군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 문파다. 손혜원‧표창원‧박주민 의원은 문재인 당시 당대표의 대표적인 영입 인사로 친문계로 분류됐지만 지금은 문파들의 적이나 마찬가지다. 문파들은 손 의원의 “우리 당 지지자들은 나이브(Naive, 순진한)하다”라는 발언에 대해 실망을 토로한 적이 있다. 또한, 이 지사를 감싸는 방송인 김어준 씨와 이해찬 대표를 두둔한 것에 대해서도 문파들로부터 뭇매를 맞았다.
표 의원은 지방선거 며칠 전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 후보의 자격 논란이 한창이던 때에 “선거 후 자세한 말씀 드리겠다. 일단은 한반도 평화, 문재인 정부 성공, 경기도 행정혁신과 공정한 도정 위해 #기호1번(이재명 후보) 투표 부탁드린다”는 글을 올려 논란에 휘말렸다. 박 의원은 최근 심상정 정의당 의원 등과 공저로 ‘소년소녀, 정치하라’는 책을 출판했다. 이 책에는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의 장서연 변호사와 문 대통령의 그림이 담겨 있다.
이는 실제로 2017년 문재인 대통령 후보가 토론회에서 동성애에 대한 입장을 드러낸 것에 분노한 성소수자 단체가 문 후보 기자회견에 기습 항의하던 모습을 그대로 묘사하고 있다. 이 사건 때문에 문파는 장 변호사를 비롯한 성소수자 단체를 적대적인 눈으로 바라봐 왔는데, ‘문픽(문재인 픽)’으로 알려진 박 의원이 쓴 책에 이들이 담긴 것이다. 때문에 일부 문파들은 ‘후원은 민주당원으로부터 받아놓고 문재인 공격한 성소수자들과 놀고 있느냐’며 박 의원으로부터도 등을 돌렸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