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블랙홀같이 사람들을 빨아들였다. 그의 꿈은 점점 더 커졌다. 어느 날 갑자기 풍선이 터지듯 그의 사업왕국의 성벽에 구멍이 났다. 그는 사기범이 되어 법정에 섰다. 그는 살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수십 명의 유명변호사를 고용하고 정치권의 연줄을 동원했다.
그러나 그는 성경 속의 부자 욥같이 해일이 되어 덮치는 불운을 막을 수가 없었다. 재판장은 그에게 징역 12년을 선고하면서 ‘이카루스의 날개’를 아느냐고 물었다. 엉성한 밀랍 날개로 태양 근처까지 너무 높이 날아오르려다가 추락하는 것이라고 했다. 재판장은 자기 사업왕국의 성벽이 무너지는데도 수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인 건 사기라고 결론지었다. 그는 날개 없이 깊은 어둠의 골짜기로 추락했다.
그가 세상에서 사라지고 8년쯤 흘렀을 때였다. 우연히 길거리에서 만난 당시의 주심판사가 무슨 생각이었는지 이런 고백을 했다.
“재판을 할 때 저는 상당히 동정적이었습니다. 처절한 난관을 뚫고 성공한 그를 무겁게 처벌하고 싶지 않았어요. 재판장인 부장님도 마찬가지였죠. 그런데 말이죠, 어느 날 저한테 로비가 들어오는 거예요. 그를 죽이라고 모두 돌을 던지고 있는데 정신이 번쩍 들더라구요. 그래서 부장님하고 다시 의논해서 징역을 올려 12년으로 정했습니다.”
주심판사가 굳이 그런 비밀을 말하는 걸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섭리라는 걸 알려주는 계시일까. 이런 내막을 알면 그가 어떤 심정이 될까. 세상의 권력과 돈을 장악한 악마는 자기에게 무릎을 꿇으면 그것들을 주겠다고 사람들을 유혹한다. 그러다 마지막에는 꼭 지옥 속으로 패대기를 치곤 검은 웃음을 흘리는 것 같다.
모래시계의 중간을 흐르는 입자처럼 세월이 흘러 그의 징역 12년이 끝나갈 무렵 그를 찾아간 것이다. 사십대 말의 중후한 인상을 주던 재벌 회장이 때 묻은 솜뭉치처럼 하얗게 늙어버렸다. 더 이상 그는 신하도 가족도 변호사도 돈도 없는 것 같았다. 나는 그의 영혼만은 비를 촉촉하게 맞은 나무같이 생생하게 살아나기를 빌면서 물었다.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예수나 부처를 따르지 말고 나를 따르라고 했었는데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교만했죠. 인간은 무엇을 소유할까보다 영혼이 변해야 해요. 9년을 감옥 안 독방에서 지냈는데 여기 만한 좋은 ‘기도방’이 없습디다.”
그는 오히려 내면의 평화와 안정을 얻은 것 같아 보였다. 나는 그의 로비가 오히려 독이 된 주심판사의 얘기도 해 주었다.
“행운의 여신이 도와주는 줄 알았는데 악령한테 잡혀 있었던 거네요.”
그가 담담하게 내뱉었다. 변호사로 일하다 보면 현실 속에서 천국과 지옥을 보며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지를 생각한다.
엄상익 변호사
※본 칼럼은 일요신문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