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수연 누나가 오늘 갑자기 하늘나라로 갔어….”
순간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이지? 수연 씨가 죽었다고…. 겨우 가슴을 진정하고 후배에게 물었다.
“왜? 수연 씨가 갑자기 왜?”
평생 영화인으로 살았던 강수연 배우는 뇌출혈로 2022년 하늘로 올라가 영원한 영화인으로 남게 됐다.
강수연 배우는 세 살 때부터 배우를 시작해 국내 영화계에서 독보적인 여배우로 자리매김했다. 무엇보다 세계적인 영화제인 ‘제44회 베니스 영화제’에서 영화 ‘씨받이’로 한국배우 최초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1989년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영화 ‘아제아제 바라아제’로 또다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이때부터 강수연 배우를 ‘월드스타’로 칭하며 한국영화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한 배우였다.
1990년 가을 대학을 졸업하고 광고감독이 되고자 광고제작사의 막내 조감독으로 근무했다. 만 26세의 사회초년병인 나는 강수연이라는 어마어마한 배우가 우리 회사에서 제작하는 모 화장품의 메인모델로 같이 촬영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촬영하기 한 달 전부터 가슴이 떨렸다. 그녀를 직접 만난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하루하루를 설레는 마음으로 강수연 배우를 만나는 날만 고대했었다.
드디어 촬영이 시작되고 강수연 배우와 영동대교 위에서 촬영을 시작했다. 이틀에 걸쳐 스튜디오와 야외에서 촬영은 진행되었고 난 광고조감독이 아닌 오래전부터 팬으로서 그녀를 흠모해왔기에 그녀와 같이 작업하는 동안 이게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감히 그녀에게 “팬으로서 배우님을 만난 게 영광이었습니다”라는 말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오만 번 고민했다. 결국 용기(?)가 없어 말하지 못했다.
촬영이 끝난 오후 강수연 배우는 고생한 스태프들을 위해서 저녁자리를 마련했다. 강수연 배우는 감독이나 프로듀서는 물론 나를 포함한 막내 스태프들에게도 소주를 한 잔씩 따라주며 고마움을 표했고 감사의 악수와 포옹을 나누었다.
스태프들을 위한 저녁자리를 마련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었는데 그녀가 직접 모든 스태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직접 응원했다는 것은 막내조감독에겐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이었고 그녀의 응원과 격려는 나를 아직도 이 영화산업에서 일하게 만든 계기가 됐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녀와 나는 그로부터 23년 후인 2013년 제1회 한국 ‘튀르키예 영화제’에 게스트로 초청돼 튀르키예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나는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의 제작자로서 참석을 했고, 강수연 배우는 한국을 대표하는 여배우로서 참여하게 된 것이다.
그녀와 저녁을 먹으면서 23년 전의 기억을 떠올렸고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그때 막내가 이렇게 잘 성장하셨네”라며 다시 만난 것을 기뻐했다. 그로부터 그녀와 나는 동료 영화인으로서 그리고 같은 꿈을 꾸는 친구로서 우정을 나누게 되었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이런저런 이유로 난관에 빠져있던 2015년 그녀는 부산국제영화제의 공동집행위원장으로 위기에 빠진 영화제를 특유의 사교성과 영화인으로서의 주관과 품격을 지키면서 잘 이끌어왔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회자되는 그녀의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는 말은 그녀가 얼마나 영화인으로서의 자긍심을 중요하게 생각했는지를 대변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존심이 강한 그녀는 나에게도 특유의 친화력을 보여줬었다.
“원 대표, 우리 영화제를 위한 1일 호프집을 여니까 후원해. 내가 후원하라고 하는 것 자체가 영화인으로서 영광인 거 알지?”
두말없이 후원하는 영광을 마다하지 않았다. 2022년 초 그녀와 가로수길 막걸리 집에서 만나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나누었고 특히 강수연 배우는 오랜만에 작업 중이었던 작품에 대해서 많은 기대와 달라진 촬영현장에 적응하느라 힘들지만 그래도 현장이 가장 행복하다고 했었다.
그런 그녀가, 나보다 두 살이나 어린 월드스타가 50대 중반의 나이로 하늘나라로 홀연히 떠나버렸다.
그녀의 장례식 날 내가 그토록 사랑하고 존경하던 그녀의 관을 들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의 관을 운구하면서 가슴 깊이 그리고 너무나 간절하게 기도했다.
“강수연 배우님, 하늘나라에서 한국영화를 지켜줘. 그리고 하늘에서 후배들이 만드는 영화를 보면서 조금이라도 위로받길 바라. 하늘에서도 영화를 보면서 당신이 행복하길 바라.”
※외부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원동연 영화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