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핀테크’ 허브…아시아 너머 세계가 주목
싱가포르의 상징물 머라이언 공원에서 바라본 마리나 베이 샌즈. 한국기업이 지은 건물로 한국인도 많이 찾는다.
[일요신문] 싱가포르 비치 로드에 있는 버스터미널입니다. 골든 마일(Golden Mile)에 있습니다. 여행사들도 많은 지역입니다. 이곳에서 싱가포르 내 관광지, 이웃나라로 가는 대형버스들이 새벽부터 줄지어 떠납니다. 젊은 부부와 아이들, 청년들과 연인들이 휴가를 보내러 어디론가 갑니다. 말레이 반도를 넘는 국경의 다리에는 대형버스와 자가용들의 끊임없는 행렬이 출입국 수속을 기다립니다. 영어가 공용어지만 들리는 건 온통 중국말입니다. 그만큼 중국계 사람들이 많이 사는 도시이자 나라입니다. 땅은 서울보다 조금 크고 인구는 절반이 안된다고 하지요. 저는 이 작은 나라의 대학교육을 취재하기 위해 왔습니다.
금융과 무역의 아시아 기지 싱가포르의 다국적 빌딩들.
이른 새벽이라 여행사 오피스에서 오늘자 싱가포르 조간신문을 펴듭니다. 1면에는 미얀마 로힝야 난민을 취재하다 구금된 로이터 소속 기자의 선고공판 기사가 실려 있습니다. 문화면에는 금주의 베스트셀러 순위가 있습니다. 그런데 픽션 1, 2, 3위가 모두 한 작가의 작품입니다. 한국에서도 곧 개봉할 영화의 원작과 후속편들입니다. 제목은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스’(Crazy Rich Asians). 싱가포르를 무대로 미국서 온 연인이 겪는 코믹한 드라마입니다. 한마디로 중국계 부자들 이야기입니다. 미국에선 예상 밖으로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흥행에 성공했습니다. 요즘은 여러 가지로 싱가포르가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세계 주요회담들이 줄줄이 여기서 열립니다. 컨벤션이나 전시 등 마이스(MICE) 산업이 발달됐기 때문입니다. 서방에는 동남아 부자들이 부를 이룬 과정이 많이 소개되곤 합니다. 싱가포르인 2% 이상이 다른 나라에 언제든지 투자할 수 있는 큰 자금을 가지고 있다는 조사도 있습니다. 중국이 덩샤오핑 시절부터 지금까지 경제모델로 삼는 곳이 싱가포르입니다. 실제로 최근 중국의 몇 개 도시는 싱가포르와 합작으로 그 콘셉트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좁은 나라 전역을 인공미로 관광자원화하였다.
중국 내 싱가포르식 도시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부패 없는 안정된 정치, 특성화를 꿈꾸는 도시가 그것입니다. 쑤저우 공업도시, 톈진 생태도시, 광저우 지식기반도시들이지요. 한편 금융과 무역의 아시아 기지로 자리 잡은 싱가포르에서는 새로운 산업이 활기를 띠고 있습니다. 그것은 세계화로 향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금융과 IT기술을 결합한 금융서비스 핀테크(Fin Tech) 산업, APEC(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의 굵직한 글로벌 회사들의 시장을 만드는 일입니다. 이 국제기구의 본부가 싱가포르에 있습니다. 이젠 여기서도 페이스북, 구글 등의 경영진들을 쉽게 만납니다.
가든스 바이 더 베이는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꽃과 나무들을 바이오로 만들어냈다.
싱가포르는 찾아오는 외국인에게 안락함과 풍요를 느끼게 합니다. 그래서 다시 오게 합니다. 싱가포르가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호텔문화에 있다고 늘 생각합니다. 음식, 관광, 언어, 서비스는 호텔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싱가포르에는 크고 작은 호텔이 2000개가 넘습니다. 리조트, 빌라, 게스트하우스까지 합치면 3500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싱가포르의 랜드마크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은 한국기업이 지었습니다. 여기에는 심플하고 아담한 2800개 객실이 있고,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최고의 셰프들이 레스토랑을 운영하므로 전세계 음식문화를 만들어냅니다. 물론 이곳의 오랜 전통음식도 유명합니다. 해산물요리 칠리크랩(Chilli Crab), 락사(Laksa), 꼬치구이 사테(Satay), 전통음료인 차 테타릭(Teh Tarik) 같은 것들이지요. 이렇게 호텔문화가 많은 성장동력을 일구었습니다.
아이들이 케이블카를 타고 센토사섬으로 가고 있다.
이 나라엔 호텔경영을 배우러 외국학생들도 많이 옵니다. 한국 청년들도 있습니다. 미국의 유명 호텔학교 분교도 있습니다. 2006년에 싱가포르에 개교한 UNLV(University of Nevada Las Vegas) 대학입니다. 정상급 호텔학교답게 긴 실습시간을 이수해야 합니다. 교양은 많은 학점이 필요하고, 마케팅, 식음료, 관광정책, 음식 트렌드, 행사기획 등을 공부하는 게 이채롭습니다. 한국의 제주도에도 호텔관광과 조리학이 유명한 대학이 들어서서, 우리 학생들과 외국청년들이 많이 공부한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제주는 서울, 도쿄, 오사카, 베이징, 상하이, 타이베이 등 인구 500만 명이 넘는 도시 18곳에서 비행기로 2시간 이내에 올 수 있는 위치라고 합니다.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친환경 국제자유도시의 꿈은 이뤄질 것입니다.
외국기업이 지은 건물과 외국 사람들이 넘치는 싱가포르. 인공미의 극치 센토사 섬이 그렇고, 기울기의 극치 마리나 베이 샌즈가 그렇습니다. 처음 타워1을 건축할 때 각도는 26도. 2와 6을 합치면 8이 되므로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숫자입니다. 번영과 부를 뜻합니다. 또한 물고기 몸에 사자머리를 한 머라이언(Merlion)은 싱가포르의 상징입니다. 엄격한 법질서에 잘 순종하는 국민, 어릴 때부터 시험에 익숙한 아이들, 권력을 견제하는 언론이 거의 없는 이 나라가 때론 머라이언처럼 좀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50년이란 짧은 기간에 국민이 단결하여 만들어낸 작은 나라이기에 우리나라처럼 느껴집니다. 이젠 큰 나라 중국이 닮고 싶은 나라니까요. 이제 비치로드에 제가 탈 이층버스가 도착했습니다. 이제 국경을 넘을 시간입니다.
정선교 Mecc 상임고문
필자 프로필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일요신문, 경향신문 근무, 현 국제언론인클럽 미얀마지회장, 현 미얀마 난민과 빈민아동 지원단체 Mecc 상임고문 |
싱가포르 골목을 거니는 청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