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팔’ 찍으며 연기자 직업에 욕심…“내 연기 자평? 다시 찍고 싶죠!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단 걸 느꼈어요”
걸그룹 걸스데이의 멤버로 출발해 예능을 거쳐 드라마 주연으로 도약한 혜리가 이젠 스크린까지 넘보고 있다. 추석 명절을 겨냥해 12일 먼저 개봉한 ‘물괴’(감독 허종호·제작 태원엔터테인먼트)가 그의 새로운 무대다. 다양하면서도 과감한 변화와 도전을 거듭하고 있지만 부담이나 책임감에 눌리기보다 그 도전 자체를 즐기는 듯하다. 오랜 시간 아이돌 그룹으로 활동하면서 쌓은 친화력도 혜리를 바삐 움직이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도전이 꼭 만족스러운 결과나 평가로 이어지란 법은 없다. 혜리도 마찬가지다. 본연의 매력으로 인기를 얻고 있지만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인 연기력으로는 냉정한 평가를 받는 게 사실. 이런 반응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가 바로 혜리 자신이다. 그는 “상처 받을 때도 있지만 극복할 자신이 있다”고 했다.
사진제공 =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 “나답게 하는 게 중요하다”
고등학생 때 걸스데이로 데뷔한 혜리는 스무 살이 지날 무렵 더 큰 무대가 궁금했다고 한다. 일단 부딪쳐보는 쪽을 택했다.
“예능도 잘할 수 있고, 연기도 정말 하고 싶었어요. 시상식 진행자도 맡겨만 주세요! 그랬죠. 잘할 수 있는 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더 신중해요. 내가 어떤 모습을 보여야 좋아할까…. 그런 고민을 하죠. 나와 맞지 않는 신중함이 생겼다고 할까요.”
혜리의 목소리는 남보다 한 옥타브 정도 높다. 말할 때 동작도 큰 데다 웃음소리는 더 크다. 대부분 밝은 에너지를 내뿜고 있지만 사실 혜리도 상처받을 때가 있다. 특히 자신에 대한 평가를 실시간으로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는 위축된다고 했다. 이런 대화를 나누면서 그는 “상처를 받지 않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라고 반문했다.
사진제공 =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대중 앞에 서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적지 않은 시간 단련된 ‘내공’도 엿보였다.
“제가 만족한 작품이나 모습이라고 해도 대중이 ‘잘못했다’고 한다면, 그건 제 잘못이에요. 반대로 제가 못했다고 위축돼 있어도 대중이 ‘엄지척’ 평가한다면 그건 잘한 거고요. 대중이 좋아하도록 만드는 건 제가 할 일이잖아요. 그걸 잘 해낼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대중은 혜리는 ‘애교 많은 아이돌’ ‘귀여운 매력’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 특유의 친화력으로 인해 사실 ‘안티팬’은 거의 없는 편. 혜리에 관심 없는 이는 있어도, 싫어하는 이는 드물다는 평가도 나온다.
“저는 직업을 여러 개 갖고 있잖아요. 어떤 일을 해도 ‘나답게’ 하지 않으면 불편해요. 그래서 무슨 일을 하든지 ‘혜리 같은 상태’에 있으려고 하죠. 가장 솔직하고, 가장 편안하게. 사람들이 예능에서의 제 모습을 좋아하는데 그건 아마도 가장 솔직한 상태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 “영화 촬영 때도 하루 삼시세끼는 꼭 챙겨”
여유까지 가진 혜리의 주변에는 사람도 많다. 나이 차이가 큰 선배 연기자들과도 친구처럼 어우러진다. 2016년 출연한 SBS 드라마 ‘딴따라’의 상대역 지성도 그 가운데 한 명이다. 마침 지성이 주연한 영화 ‘명당’도 추석에 맞춰 개봉한다. 그런 지성은 지금 혜리와도 절친한 배우 한지민과 tvN 드라마 ‘아는 와이프’ 촬영에 한창이기도 하다. 혜리의 거미줄 인맥이 발동했다.
“지민 언니가 촬영장에 한번 놀러오라고 해서 갔어요. 지성 오빠에게 슬쩍 다가가서 ‘명당’이 어떤지, 잘 나왔는지, 물어도 보고요. 하하하! 같은 작품을 하는 배우들과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눠요. 목표가 같아야 작품도 잘 나오는 것 같아요. 작품 끝나고도 인연은 다 이어가고 있어요.”
혜리가 드라마 주연의 자리로 올라선 계기는 2015년 방송한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부터다. 이 드라마는 혜리에게 연기라는 작업과 연기자라는 직업에 욕심을 내게 했다. 그는 “우리가 ‘함께한다’는 의미의 감사함을 배웠고, 배우끼리 ‘호흡한다’는 의미도 알게 된 작품”이라고 돌아봤다. 영화 ‘물괴’ 제안을 받았을 때도 부담이나 걱정보다 기대가 더 컸던 이유도 그런 과정을 거친 덕분이다.
영화 ‘물괴’ 홍보 스틸 컷
‘물괴’는 조선왕조실록(중종 22년)에 기록된 ‘생기기는 삽살개 같고 크기는 망아지 같은 것’으로 묘사된 괴이한 짐승의 존재에서 모티프를 얻은 이야기다. 백성이 공포에 휩싸이자 왕(박희순 분)은 옛 내금위장(김명민 분)을 불러 수사를 맡긴다. 혜리는 내금위장이 난리 통에 만나 키운 딸. 혜리의 설명에 따르면 “한양에 사는 아씨들처럼 정통적인 사극 말투를 쓰는 아이가 아니라 산에서 자급자족하면서 자란 설정이라 편하게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영화 출연은 처음이라 아쉬움이 남아요. 내 연기만 자평한다면? 다시 찍고 싶죠! 다시 하면 지금보다 잘할 것 같거든요. 첫술에 배부를 수 없지만 저는 첫술에 배부르길 바랐나봐요.”
제작비가 100억 원을 훌쩍 넘는 작품의 주연으로 나섰지만, 처음 경험하는 영화 현장에서도 혜리는 특유의 친화력을 발휘했다.
“야외에서 찍는 장면이었는데 점심 먹고 나니 시간이 남는 거예요. 앉을 곳도 마땅치 않아 보여서 그늘진 곳에 돗자리를 펴고 ‘선배님들~ 낮잠 시간이에요~’ 소리쳐 불러서 같이 쉬었어요. 의상까지 챙겨 입은 김명민, 김인권 선배님이랑 다 같이 누워서 쉬고, 기념사진도 찍고. 저는 깜빡 잠이 들었는데 눈을 떠 보니 선배님들은 가고 없더라고요. 하하!”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