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라이터처럼 성격과 모습은 달라도 주변을 밝혀요”
김종수(왼쪽)와 손종학이 가지고 다니는 라이터
2014년은 ‘미생’의 해였다. 종합상사 배경으로 직장인의 애환을 담았던 윤태호 작가의 만화가 정윤정 작가와 김원석 감독의 손에 다시 태어났다. CJ ENM의 TV 채널 tvN이 대표 드라마 채널로 자리잡게 한 데에는 ‘미생’이 결정적이었다.
‘미생’이 화제를 모은 건 주연인 이성민과 임시완의 열연뿐만 아니었다. 이제껏 보지 못했던 배우의 격 높은 연기는 회마다 화제를 모았다. 특히 영업본부를 맡았던 김 부장 김종수의 겉과 속이 다른 따뜻함, 강소라의 얼굴에 상처까지 만든 악마 자원본부의 마 부장 손종학의 연기가 호평을 받았다.
김종수. 사진 제공 = 아티스트컴퍼니
둘이 각각 가지고 다니는 라이터는 둘을 닮았다. 김종수는 10년 빼곡한 인생을 함께한 황동색 지포 라이터를 늘 지니고 다닌다. 2006년 영화 ‘밀양‘ 촬영 뒤 학생 단편 영화 찍으러 서울 왔다가 받은 출연료 15만 원을 쪼개 산 라이터란다. 이곳 저곳 흠집이 가득하지만 불꽃은 시간이 흘러도 변함 없다.
손종학은 토치형 라이터를 가지고 다닌다. 불을 켜면 일정한 불이 일직선으로 뻗어 나온다. 젊은 겉 모양새에 불길은 힘차다. 선배 연극배우가 줬던 라이터다. 허나 그가 지금 가지고 다니는 라이터는 그때 받은 라이터가 아니다. 탐내는 후배가 있으면 언제나 하나씩 던져줬다. 하나를 주면 남대문 시장에서 또 새 걸 산다. 그가 들고 다니는 라이터는 늘 젊어지지만 변치 않는 사랑은 늘 일정하다.
둘이 들고 다니는 라이터만큼 둘의 행보 역시 다르다. 손종학은 2014년 말 ‘미생’을 마치고 2015년 초에 연극판으로 돌아갔다. 연극 ‘맨 프럼 어스’에 출연했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면서도 해마다 연극판에 얼굴을 꼭 내민다. 그를 이끄는 건 사람 냄새다.
“연극은 작품 외적으로도 즐거운 게 많다. 동료와 땀 흘리고 울고 웃고 하는 시간이 늘 행복하다. 연극 마치고 술자리에서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는 사람 냄새에 중독돼 버린 거다.”
자신을 찾는 어린 새싹의 작품에도 손종학은 시간을 할애한다. 최근에는 한예종 영상원에 들러 심요한 감독(34)의 새 작품 ‘어서오시게스트하우스’에도 출연했다.
이와 반대로 김종수는 내내 영화와 드라마에만 몰두했다. 도통 연극판에서 보기 힘들어졌다. 김종수 말했다. “30년 했으면 됐다. 종학 선배는 나보다 여유가 있지. 나는 짬이 없다. 드라마 하나 끝내면 영화 하나 들어오고 해치우면 또 작품 들어오고.” 그러면서 이내 처음 연극을 시작했던 이야기를 했다.
“연극 이야기 하니까 처음 했던 작품 생각이 나네. 나는 첫 연극 ‘에쿠스’에서 이른바 ‘뽕’을 맞았어. 내가 맡은 배역이 정신질환에 걸려서 박사한테 찾아가거든. 박사의 ‘어떻게 됐어?’란 질문에 독백을 해. ‘말을 탔어. 신나게 달렸어. 그런데 난 갑자기 말에서 떨어졌어’ 이렇게. 막 정신이 어딘가에 빠져있는 상태를 그린 거야. 감독이 그 대사 때 따로 액션을 주진 않았어. 근데 그 대사를 치면서 뭔가 액션을 하고 싶은 거야. 대사를 치며 공중에서 한 바퀴 딱 돌아 봤어. 바닥으로 팍 떨어지면서 ‘말에서 떨어졌어’ 대사를 쳤거든. 바닥이 합판이라 소리가 너무 큰 거야. 꽝! 나는 좋았는데 극 집중도가 흐트러진다는 반응이 많았지. 감독도 말렸고. 근데 마지막 회차 때 감독한테 ‘마지막인데 내 맘대로 하면 안 될까? 한 번만!’ 했거든. 그리고 했지. 덤블링을 했어. 구르면서 소리 최대한 안 나게. 탁 떴는데 갑자기 세상이 느리게 흘러 가더라고. 슬로모션을 보는 느낌. 무대 위에서 처음으로 뭔가 다른 걸 느꼈어. 물아일체가 된 느낌이라고 할까. ‘에쿠스’에 몰입해서 인물 파악하고 연습했던 것도 다 기억 못하는 순간이었는데 뭔가 깔끔했어. 아주 깔끔한 느낌. 짧지만 갑자기 그 순간을 느꼈어. 후배는 ‘질긴 아편 꽃을 씹었다’고 하더라고. 그 뒤엔 아직까지 그걸 다시 못 느꼈어.”
연극 30년 했으면 이제 됐다고 말했던 사람은 1분도 안 돼 자신의 첫 연극 이야기를 그렇게 풀어냈다.
손종학. 사진 제공 = 더프로액터스
“내가 원래 전공이 건축학과였어. 그땐 건설 경기가 좋았지. 그냥 졸업했어도 먹고 살았을 거야. 그런데 대학교 1학년때 ‘사막의 꽃이 되리라’라는 연극을 보고 인생이 바뀌었지. 수없이 봤어. 볼수록 뭔가 뜨거워지는 게 느껴졌어. 그러고 2학년 때 극단 ‘민예’에 들어갔어. 연극이란 게 뭔지도 모르고 시작했지. 근데 연극이 밥 먹여 주나. 아니지. 그런데 ‘미생’ 이후 삶이 폈어. 나 평생 소원이라면 죽을 때까지 연기를 해보는 거야. 그냥 하는 거지. 그걸 가능하게 만든 게 바로 ‘미생’이었지. 싸움도 잘하고 액션이 큰 캐릭터, 아주 진한 멜로가 꼭 하고 싶어. 그런데 그거 다 밥벌이 고민에서 벗어나야 낼 수 있는 욕심이야.”
김종수도 비슷했다.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연극 티켓을 줬어.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를 시민회관에서 봤지. 소름이 다 돋더라. 그걸 보고 ‘저거 재미있겠다’ 생각했지. 그게 머리에 박혀 있다가 ‘나도 한번 해봐야겠다’고 한 거야. 대학 때 극단에 바로 들어갔지. 부산에서 대학을 다녔으면 극회라도 들어갔을 텐데 울산엔 대학이 하나였어. 극단 포스터 보고 전화번호 적어놨다가 들어가게 된 거지. ‘연극 해봤냐’ 묻길래 ‘연극은 안 해봤다. 웅변은 해봤다’고 하니까 주인공을 시켜줬어. 그게 ‘에쿠스’야.”
“연극을 그때부터 했지. 근데 친구들 만나면 늘 ‘넌 하고 싶은 거 하잖아’라고 하지. 그럼 속으로 욕 한 바가지를 했어. ‘난 사람 구실도 못 해 이 놈들아’라고. 사람 구실 포기하고 한 거야. 명절 때 아버지 선물도 돈 없어서 못했고 어머니 아플 때도 뭐 난리 났었지. 그거 벗어나게 해준 건 정말 큰 거야. 안정되니까 이제 작품도 고를 여유가 생기고 하고 싶은 것도 뚜렷해졌어. 뭔가 중량감 있는 역할이라고 해야 하나. 분량의 길고 짧음이랑 관계 없이 존재감이 있는 몫을 해 내는 역할. 카리스마 가득한 뭐 그런 거지. 특히 아주 독특한 역할을 해보고 싶어. 우리가 사람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람을 진짜 모르거든. 극단적인 역할이 주어지면 관찰하고 생각하며 이야기를 촘촘하게 만들 수 있어. 진짜 사람에 대한 이야기. 배우로서 정말 도전해 보고 싶지. 대본 받았을 때 내가 상상한 것보다 특이해서 ‘어? 이거 뭐지?’ 하는 작품. 그게 하고 싶어.”
손종학. 사진 제공 = 더프로액터스
‘미생’에 출연했던 배우 여럿은 아직도 자주 만난다. 자원팀 과장이었던 정희태(44)는 김종수와 손종학 사이를 이간질하는데 도가 튼 사람이다. 정희태의 농간이 시작되면 이내 둘은 티격태격을 시작한다. 늘 김종수가 먼저 반응한다. 타고난 긴장 때문이다. 김종수는 말한다.
“연기하며 만나는 스태프나 배우 모두 나름의 바닥에서 올라온 전문가야. 현장에 가면 일단 폐를 끼치면 안 되겠다는 마음이 가장 먼저 들어. 그들과 결을 함께 맞추는 게 좋아. ‘나만 살아보겠다’고 하면 그게 가장 안 좋은 행동이야. 결에 맞춰서 완성도를 더 매끄럽게 만들어놔야 작품이 돼. 이런 게 늘 마음에 장착돼 있다 보니까 내가 좀 경직돼 있는 편이지. 희태가 많이 놀렸지. 푸는데 시간이 좀 걸리거든. 종학이를 처음 만났을 때 사실 형인 줄 알았어.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동생이더라고. 나이 쉰 넘어서 만났는데 바로 ‘선배’라고 하더라. 존중으로 시작하더라고. 연극 하는 사람 가운데 지방 연극계 출신을 안 쳐주고 그런 문화가 있었거든. 연기 안에서도 코미디 배우를 안 쳐주는 것처럼. 근데 종학이는 안 그랬어. 그러면서 ‘형, 형’하며 말을 놓은 거지. 지금은 종학이가 되게 귀여워. ‘밥 먹었어?’ 하면서 전화 오고 둘이 드라이브도 가. 되게 고맙지.”
이제 둘을 알아보는 이 많다. 8일은 드라마 ‘미생’의 유 대리 역을 맡았던 배우 신재훈의 아들 돌잔치였다. 돌잔치가 끝나고 손종학은 동료 배우와 함께 근처 국숫집엘 갔다. 제법 많은 사람이 차있었다. 사장 혼자 돌보는 집이었다. 주인은 쉴 새 없이 음식을 하며 밖을 내다 보지도 않았다. 주방에서 주문을 받은 뒤 “음식 나왔어요. 와서 가져 가세요”라고 말했다.
손님이 하나둘 빠져 나간 뒤 국숫집엔 여유가 제법 찾아왔다. 그제야 사장은 밖으로 나왔다. 손종학을 한 번 쓱 본 뒤 이내 주방으로 다시 들어갔다. 일반 고등어 조림을 시켰는데 묵은지가 깊게 파묻혀 있는 고등어 한 상이 나왔다. 누룽지 막걸리가 서비스로 나왔다. 주인은 또 다시 작은 접시를 내왔다. “고들빼기 김치 맛나게 익었는데 먹어 보세요.” 손종학은 두툼한 고들빼기 하나를 입에 집어 넣었다.
김종수. 사진 제공 = 아티스트컴퍼니
둘은 다르지만 점점 닮아간다. 후배 에너지를 받아 가며 ‘젊은 완생’으로 나아간다. 둘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 손종학은 신재훈 아들 돌잔치 때 미국 도시 뉴욕의 약자 NY가 크게 적힌 하얀 모자를 쓰고 나타났다. 구멍이 숭숭 뚫린 티셔츠 위에는 ‘Dreamer’란 글자가 써진 패치가 여러 개 달려 있었다. 청바지에 악어 무늬 단화. 젊은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함께 자리했던 배우 오민석, 손난희 등과도 잘 어울렸다. 손종학은 자주 가는 승마장으로 후배를 자주 부른다. 말 타며 심신을 가다듬고 후배와 소통도 즐긴다.
김종수도 젊은 배우와 어울리는데 모자람이 없다. 8월 22일 김종수는 물이 빠진 회색 티셔츠를 입고 나왔다. 흔히 말하는 빈티지 스타일이었다. “이거 배정남이 ‘행님. 이게 뭡니꼬. 젊게 좀 입으시소. 우리 집 갑시다’하며 준 티셔츠다. 안 맞을 줄 알았는데 입어 보니 잘 맞아서 입고 다닌다”고 했다. 인터뷰 뒤 김종수는 후배를 만났다. 후배가 새 대본을 받았는데 함께 읽어달라고 청해서 만났단다. 만나자마자 김종수는 “밥은 먹었냐”고 먼저 물었다. 안 먹었다는 후배를 갈비탕 집으로 데려가 밥부터 먹였다.
둘은 참 다르게 생겼다. 둘이 가진 라이터도 참 다르다. 그런데 그 라이터 둘 다 불만 켜면 주변이 환해진다. 김종수와 손종학도 마찬가지다.
최훈민·김태현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