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한일 위안부 합의 직후 청와대·대법원 재판거래 추진 의혹 제기…일본, 문재인정부 무효 결정 내릴까 걱정
# “흐름 번복될까 우려” 일본 불편한 입장 전달
검찰이 사법농단 관련 법원행정처를 수사 중인 가운데, 위안부 판결 관련 일본은 수사 결과와 향후 여파에 대해 여러 경우의 수를 우려하고 있다. 일본 정보에 밝은 외교계 관계자는 “최근 일본이 사법농단 수사 맥락 중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얘기가 나온 것에 대해 ‘결과가 번복돼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한국 측에 전달했다”고 털어놨다. 일본은 공식, 비공식 루트를 통해 이런 의견을 우리 정부 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수사 맥락부터 살펴보자.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 특수3부 등은 수사 과정에서 “2015년 12월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 직후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법원에서 강제 징용 피해자 배상이 확정되면 나라 망신이다’고 말했다”는 진술을 받아냈다. 대법원이 상고법원을 도입하기 위해 청와대와 재판 거래를 추진했다는 것. 박근혜 정부를 위해 ‘일본 강제 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을 지연한 의혹이 있다’고 판단한 검찰은 당시 청와대와 외교부 관계자들을 조사해 이 같은 혐의를 구체화하고 있다.
사법농단 수사가 검찰과 법원의 힘겨루기 양상을 보이며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사진은 대법원 전경.
지난 2015년 일본과의 합의에서, 일본은 위안부 합의 위로금 10억 엔을 보내주기로 했다. 당시 이는 논란이 됐다. 위안부 할머니 등에 대한 사전 설득이 없었기 때문.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 등 당시 청와대는 일본과 합의를 했으니, 이에 성의를 보여야 한다는 취지였고 이를 대법원에 전달했다.
실제 외교부는 전범 기업의 입장이 담긴 의견서를 내라는 청와대의 지시에, 한일 양국이 맺은 ‘위안부 합의’에 대한 비난 여론을 고려해 의견서를 법원에 제출하지 않았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이 “일본 정부로부터 위안부 합의 위로금 10억 엔이 들어오는 대로 의견서를 제출하라”고 다시 외교부를 압박했고, 실제 외교부는 그해 11월 대법원에 의견서를 제출했다.
현재 일본이 우려하는 것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검찰 수사와 결과를 토대로, 박근혜 정부와 한 배상 합의가 무효화될지에 대한 우려다. 일본 소식에 밝은 검찰 관계자 역시 “사법농단 수사 결과 강제 징용 대법원 판결에 박근혜 정부가 개입했고 이 과정에 문제가 있으니 일본과의 합의 자체도 무효로 한다는 결정을 문재인 정부가 내릴까봐 걱정하고 있다”며 “검찰 수사가 앞선 합의를 뒤집을 경우 외교 문제로 확산될 수 있다고 생각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분위기를 설명했다.
# 앞만 보고 가는 검찰, ‘영장 기각’ 법원 맹비난
그런 가운데 사법농단 수사 초기부터 일부 문건만 검찰에 전달하는 등 비협조로 일관하던 법원이 압수수색 영장을 번번이 기각한 데 이어 사실상 증거 인멸까지 방조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검찰 내에서는 “법원이 가장 큰 피의자”라는 말이 나올 정도인데, 잇따른 증거 파기까지 이어지면서 김명수 대법원장 책임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문제가 된 것은 최근 검찰 수사를 받은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 유 전 수석재판연구관은 최근 법원행정처로부터 “강제 징용 사건 관련 대법원 근무 당시 자료를 제출해 줄 수 있냐”고 질의를 받았다. 하지만 유 전 연구관은 ‘영장이 기각된 후 출력물은 파쇄했고, 컴퓨터 저장장치는 분해해 버렸다’고 답변했다.
이 사실을 법원으로부터 전해들은 검찰은 격노했다. 3차례에 걸쳐 유 전 연구관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에서 모두 기각됐기 때문. 법원은 이런 사실을 세 번째 영장이 기각된 지 한 시간 조금 지나서 공개했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직접 입장을 낼 정도였다. 윤석열 지검장은 기자단에 공유한 메시지를 통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증거인멸 행위에 대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정한 책임을 묻겠다”며 법원을 맹비난했다. 서울중앙지검장이 직접 입장을 밝히는 것도, 문재인 정부의 ‘신임’을 받는 윤 지검장의 메시지라는 점 모두 의미가 상당하다는 게 법조계 평이다.
9월 12일 ‘양승태 사법부의 사법농단 의혹’ 관련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출석 중인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 연합뉴스
법원행정처도 한발 물러섰다. “유 전 연구관에게 자료 제출을 문의했는데 ‘영장이 기각된 후 출력물은 파쇄했고, 컴퓨터 저장장치는 분해해 버렸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밝히며, 먼저 그 사실을 언론에 공개했고 곧바로 유 전 연구관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했다.
검찰 관계자는 “유 전 연구관에 대한 증거 인멸 혐의가 성립되지 않더라도 그에게 자료를 건넨 것으로 보이는 현직 대법원 판사에 대한 증거 인멸이 될 수 있고, 이를 방조한 행정처도 수사 대상”이라며 “유 전 연구관과 변호인은 자료를 보존하겠다는 서약서까지 검찰에 제출한 상황이었다”고 반발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법원이 ‘제 식구 감싸기’를 넘어 ‘수사 방해’ 수준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 김명수 대법원장은 “사법행정의 영역에서 필요한 협조를 마다하지 않겠다”고 공언했지만,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 처장에 대한 하드디스크 제출 요구도 디가우징이 됐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재판부도 사법 행정권 남용 외 판사들의 비위로 수사를 확대하려는 검찰의 수사를 영장기각으로 막았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검찰의 수사에 억울함을 토로한다. 유 전 연구관은 검찰 출석에서 “검찰 수사상황이 거의 실시간으로 언론에 공개돼서 조사를 받기도 전에 엄청난 범죄자로 기정사실화되는 상황”이라며 ‘증거물을 훼손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제출하고도 자료를 파기한 것에 대해서는 “형사소송법상 (서약서) 작성 의무가 없는데도 검사가 장시간에 걸쳐 확약서 작성을 요구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작성한 것”이라고 반발했다.
다른 법원 관계자 역시 “수사를 받고 온 동료 얘기를 들으니 검찰이 수사 과정에서 고압적인 태도를 보이지는 않았지만, 다른 영역으로 자꾸 묻는다는 느낌이 있었다고 한다”며 “이렇게 법원 전체의 신뢰가 바닥을 치게 만든 김명수 대법원장 역시 책임을 질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안재화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