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입국해 난민 신청을 한 예멘 청년들이 취업에 대해 상담하기 위해 제주시 삼도동 중앙성당 후문에 모여있다./ 박해송 기자
[제주=일요신문] 박해송 기자 = 제주 예멘 난민 신청자 23명에 대해 인도적 체류 허가 결정이 내려진 가운데 국제인권단체 동아시아 담당 조사관이 홈페이지를 통해 제주도 예멘 난민 문제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다.
제주출입국·외국인청은 지난 14일 도내 예멘 난민심사 대상자 484명(신청 포기자 3명 포함) 가운데 면접이 완료된 440명 중 23명에 대해 1년 간 체류를 허가하기로 결정했다.
인도적 체류허가가 된 이들은 주로 본국의 내전이나 후티 반군 강제징집을 피해 한국에 입국해 난민 신청을 한 이들이다. 다만 난민협약과 난민법상 5대 박해사유(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 구성원 신분, 정치적 견해)에 해당하지 않아 난민 지위는 부여하지 않기로 했다.
인도적 체류는 난민에는 해당되지 않지만 송환될 경우 생명이나 신체의 자유를 현저히 침해당할 수 있다고 인정할 만한 합리적인 근거가 있을 때 허용된다.
인도적 체류가 허용된 이들은 정부 승인을 받아 취업할 수 있으며 타 지역으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있다. 다만 1년 단위로 체류 연장 허가를 받아야 하며 난민과 달리 건강보험, 기초생활보장 등의 지원을 받을 수 없다.
이와 관련 히로카 쇼지(Hiroka Shoji) 국제앰네스티 동아시아 담당 조사관은 지난 8월 홈페이지에 게재한 글을 통해 “예멘인들이 그림처럼 아름다운 제주섬을 찾는 이유는 여느 관광객들과는 다르다”며 “아름다운 풍경이 아닌, 피난처를 찾아서 온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들의 고향은 전쟁터”라며 “예멘에서는 지금까지 1만6000명이 넘는 민간인들이 죽거나 다쳤고, 200만 명이 피난을 떠나야 했으며, 어린이 340만 명이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있다. 예멘 전체 인구의 75%에 해당하는 2220만 명은 생존을 위한 인도적 지원이 필요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2018년 1월부터 5월 사이, 약 550명 정도의 예멘인이 말레이시아를 통해 제주도에 도착했다. 난민을 법적으로 규제하지 않는 한국과 달리, 말레이시아의 난민 신청자들은 구금, 기소되거나 채찍질형에 처해질 수도 있으며 그로 인해 강제 송환될 수도 있다. 예멘인들은 30일간 무비자 입국을 이용해 한국에 들어와 임시 비자를 발급받아 난민 신청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불법난민신청자 외국인대책 국민연대(난대연)는 지난 6월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에서 ‘난민법 및 무사증 폐지 촉구집회’를 열고 난민법 및 무사증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히로카 쇼지 동아시아 담당 조사관은 “예멘인들은 한국에 도착한 뒤로 친절보다는 대부분 적대적인 시선을 받아왔다”며 “2018년 7월에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예멘 난민들이 한국의 경제적 안정성을 이용하려는 “가짜 난민”이라고 주장하며, 난민 신청을 거부해 달라는 청원에 71만4000명 이상이 서명했다. 2017년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 가장 많은 인원이 참여한 청원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국은 난민 신청자들이 흔히 찾을 만한 곳은 아니다. 한국은 난민협약에 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난민 지위를 인정하거나 인도적 차원에서 체류를 허가하여 매년 받아들이는 난민 신청자의 수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한국의 난민 인권단체인 난민인권센터(NANCEN)에 따르면 2017년 한 해 동안 약 1만 건에 이르는 난민 신청 중 한국 정부가 받아들인 건수는 그 중 1.5%에 불과했다. 그렇게 많은 한국인들이 예멘인 550명을 받아들이는 데 거부감을 보이는 것은 이처럼 난민 수용에 익숙하지 않은 점도 한 몫 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난민들이 고향을 떠나게 만든 예멘에서의 위협은 현실적이며,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수백만 명의 예멘 민간인들이 ‘철저히 인간이 초래한 재앙’ 속에 휘말린 채 갇혀 있으며, 그 재앙은 만연히 이루어지는 인권침해와 국제인권 및 인도법을 위반하는 행위로 더욱 악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분쟁의 당사자들은 구호품 조달을 빈번히 제한하며, 학교와 병원 등의 민간 시설을 계속해서 공격하거나 파괴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주도 연합군은 민간인과 민간 시설에 무차별적으로 과도한 공습을 수십 건 감행했고, 이로 인해 주택과 학교, 시장, 예식장, 병원, 모스크가 피해를 입었다. 이러한 공격의 대부분은 국제법상 전쟁범죄에 해당된다”고 지적했다.
제주녹색당은 지난 7월 18일 제주시청 앞에서 정당연설회를 열고 “낯선 사람에 대한 두려움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두려움을 이용해 거짓 정보를 유통하고 피상적 만남을 통해 공포를 확대해 나가는 것은 경계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제주녹색당
그는 “난민 신청을 신속히 처리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 절차는 반드시 공정해야 하며, 신청자 개개인은 법적 대리인의 도움을 받아 심사 결과에 항소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면서 “정부는 각각의 난민 신청건을 필요한 만큼 충분히 검토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여론의 압력을 이유로 심사 절차를 성급히 처리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피난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을 따뜻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시민권이 없는 사람에게 자선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같은 인류로서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며 “한국의 지도자들과 국민들은 앞으로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이 어떤 사회에서 살아가기를 원하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는 더욱 안전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저마다 맡은 역할이 있다. 갈 곳 없는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이들에게 위험으로부터 안전한 장소를 제공하는 것도 그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ilyo9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