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발 정계개편? 원죄 안은 자유한국당은 어려워...민주당 합리적 진보주의자들 함께할 수 있어”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18일 오전 국회 당대표실에서 취임 후 본지와의 첫 인터뷰를 갖고 현안 정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박은숙 기자
[일요신문] 요즘 정계 트렌드 중 하나는 ‘올드보이’의 귀환이다. 지방선거 이후 여야 각 정당에서 치른 일련의 전당대회에서 경륜을 앞세운 후보자들이 당권을 쥐게 됐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도 그들 중 하나다. 손 대표는 그 누구보다 어깨가 무겁다. 바른미래당은 지난 지방선거에서 참패를 당했다. 무엇보다 기존 세력 간 불안한 통합이 발목을 잡았다. 그 간극은 현재진행형이다. 그 쉽지 않은 과제를 안고 선 손학규 대표를 일요신문이 직접 만나봤다. 인터뷰는 추석 연휴를 앞둔 9월 18일, 국회 당대표실에서 진행됐다. 공교롭게도 이날 평양에선 남북정상회담이 있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당이 쉽지 않은 상황 속에서 당대표 자리에 올랐다.
“지난 지방선거 결과가 좋았다면, 내가 나왔을 리가 없다. 나를 나오라고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또 나를 대표로 만들지도 않았을 거다. 당이 지방선거를 전후해 공중분해 위기에 처했었다. 사실 이전 양당 통합이 불안한 통합이었다. 껍데기 통합이었다. 선거 이후 거덜난 거다. 그 과정서 이 위기를 누가 추스를 수 있을까. 누가 당을 통합하고, 당을 바꾸고, 당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 속에서 손학규를 선택한 것이다.”
―통합을 말했지만, 사실 전당대회 과정서 이른바 ‘안심’ ‘안풍’에 대한 이야기도 오갔다.
“선거 결과를 놓고 보자. (안심은) 별거 아니었다. 물론 안철수 지지자들이 나를 지지한 것은 사실이다. 다만 전통적인 안철수 지지세력은 이미 갈렸다. 그리고 바른정당 출신 쪽에서도 많은 이들이 나를 지지해 줬다. 난 안풍이나 안심에 대해선 조금도 거리낌 없다.”
―통합의 구체적인 방법론에 대해선.
“지난 지방선거, 특히 공천 과정에서 극심한 공개적 분열이 있었다. 선거 결과가 어땠나. 반성이 우선이다. 지도부가 공개적으로 싸우면서 표를 달라 했다. 국민들이 표를 주겠나. 통합이란 특별한 방법보다 절실함이 있어야 한다. 특히 공정하고 투명한 인사가 우선이다. 다만 내가 당대표가 되고 그렇게 인사에 대해 조바심을 갖고 빨리하겠다는 생각은 안 한다. 당 사무처부터, 실무기구부터 제대로 공정하게 통합해야 한다. 그럼 사무처 직원부터, 당원들부터 그리고 국민들이 ‘아, 바른미래당이 통합을 위해 노력하는구나’ 생각할 것이다. 당장 무슨 지지율 올린다는 것은 안 된다. 우린 지금 지지율 재고할 여유도 없다. 스스로 반성, 통합, 개혁해야 한다.”
―손 대표도 그렇지만, 다른 정당들도 경륜 있는 당대표를 선출했다.
“이번 지방선거를 보고 느꼈다. 우리 정치의 한 시대가 갔다고.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다. 또 우리 지도부도 그렇고 다른 당의 지도부도 그렇고 젊어졌다. 다만 각 당의 대표만 ‘올드보이’의 귀환이 됐다. 이건 그래도 아직 젊은 세대들이 당 리더십을 갖고 안정적으로 운영하기엔 부족하다는 생각들이 있었던 거다. 송영길 의원도 강하게 어필했지만, 결국 당대표가 되진 못했다. 좀 안정적으로 경험 있는 사람이 여야 관계를, 대정부 관계를 이끌어야 한다는 요구가 있었던 셈이다.”
―함께 경쟁했던 신임 지도부와의 호흡은 만족하는가.
“아주 만족한다. 하태경, 이준석 최고위원 모두 적극 협조해 준다. 또 각자 의견은 꿋굿하게 제시하고 있다. 이게 민주정치다. 당의 한 가지 정책 결정 과정서 일방통행 식으로 하면 안 된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을 봐라. 청와대가 하라는 것은 한 마디 거역 없이 한다. 거수기, 앵무새 노릇만 한다. 민주당은 민주정당이다. 촛불혁명으로 성장했다. 민주화를 위해 열심히 산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대통령의 권위가 모든 것을 짓누르고 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도 아무 말을 못하지 않나. (그것과 비교하면) 우리는 정치 스펙트럼이 꽤 넓다. 그런 면에서 미래가 있다.”
―현재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진행 중이다. 본인은 동행을 거절했다.
“기본적으로 난 이번 정상회담이 반드시 성공하길 바란다. 이번 회담은 한반도 평화 정착의 변곡점이다. 문 대통령이 회담에 집중했으면 한다. 다만 아직 잔치 벌일 때가 아니다. 오늘 보니까 평양에서 김정은 내외가 환송했다. 사열도 거창했다. 그건 잠깐의 형식이다. 회담에선 치열한 수 싸움과 기 싸움이 있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그것만 했으면 한다. 그런데 야당 대표나 국회의장이 가서 할 일이 별로 없다. 이것이 다 이뤄진 잔치였다면 거국적으로 참여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진지하게 협상할 때다. 잔치 분위기 연출하는 것은 도움 안 된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김관영 원내대표가 18일 오전 국회에서 제3차 남북정상회담 TV중계를 시청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그러면서 손학규 대표는 ‘비핵화’의 과정을 다시금 강조했다.
“평화의 길로 가는데 비핵화란 걸림돌이 있다. 이거 제대로 제거하느냐에 따라 앞이 바뀐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4·27선언과 최근 특사단과의 자리서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표했다. 그런데 의지 표명으론 안 된다. 핵시설, 핵물질, 핵무기에 대한 리스트를 내놓고 검증 받을 로드맵을 내놔야 한다. 이번 회담서 어디까지 나올지는 모르겠다. 최소한 북한은 구체적 실천계획을 갖고 국제사회가 인정할 만한 믿음과 신뢰를 보여줘야 한다.
―이번 회담에 대한 기대는.
“이번 회담에서 다 끝나리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다만 이번 단계서 어디까지는 얻어내야 남북, 북미관계가 제대로 간다. 그동안 북한이 ‘핵무기’를 두고 남한을 상대하지 않았던 것을 비춰보면, 이번에 비핵화가 공식 회담 의제가 된 것은 커다란 진전이다. 공식 의제가 된 만큼 확실한 결과가 있어야 한다. 다만 다시 말하지만 지금 대통령은 국회의장이다 야당 대표다 동행하며 폼 잡을 때가 아니다.”
그러면서 손학규 대표는 대북문제에 대한 자신의 진정성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난 평화주의자다. 경기지사 시절 당이 달랐어도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공개 지지했다. 벼농사 지원 사업을 비롯해 여러 남북교류협력 사업을 진행했다. 특히 지금 임진각의 평화누리는 그때 만든 거다. 지금도 그곳에서 온 국민이 즐기고 있다. 우리 문재인 정부가 너무 조급성을 가지면 안 된다. 우리가 무엇을 주면 북한이 뭐를 주겠다는 식의 생각은 안 된다. 천천히 여유를 갖고 해나가야 한다.”
―이번 회담엔 재벌 총수들이 동행했다. 어떻게 보나.
“우리나 북한이나 경제교류는 중요한 과제다. 긍정적으로 본다. 장기적으론 남북경협이 북한뿐만 아니라 남한에게도 경제성장 기회 확대에 꼭 필요할 것이다. 우린 성장 동력에 한계가 왔다. 또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빨리 재개되어야 한다. 그것을 통해 확대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 이는 역시 유엔의 대북제재에 다 들어 있는데 결국 비핵화가 관건이고 이번에 진전을 보여줘야 희망이 있다. 앞으로 대북, 북방경협을 통해야 한다. 다만 보여주기 식은 안 된다. 당장 (총수들이) 구체적인 프로젝트나 실적을 내놓지는 못할 것이다.”
―곧 추석이지만, 민생은 대단히 어렵다.
“정부가 지금 두 가지를 잘못하고 있다. 경제에 대한 기본 철학이 문제고 보여주기 식 정치가 문제다. 두 번째 것부터 이야기하자. 탁현민 행정관은 현 정부 보여주기 정치의 훌륭한 연출가다. 그 연출은 초기에 괜찮지만 내용이 뒷받침 안 되면 결국 실패다. 대통령 업무지시 1호가 일자리위원회 설치였다. 스스로 위원장에 취임했다. 청와대에 일자리 현황판을 만들었다. 이 정부 보여주기 정치의 시작이었다. 그런데 결과는 어떤가. 일자리 35만 개를 만든다고 했지만 올해 작년과 비교해 고작 3000개밖에 안 늘었다. 일자리 예산만 54조 원이었고, 실제 43조 원이 집행됐다. MB 4대강 사업에 22조 원이 투입된 것을 두고 얼마나 욕을 했나.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1년 반이란 시간 동안 일자리 예산으로 43조 원을 썼다. 그리고 아무 것도 된 게 없다.”
그러면서 손학규 대표는 이번 부동산 대책을 두고 문재인 정부의 경제에 대한 철학 문제를 거론했다.
“경제는 시장에서 움직이는 거다. 일자리도 기업이 만들지만, 부동산 정책도 그렇다. 지난해 정부가 8·2 부동산 대책을 내놓고 서울 집값을 내리겠다고 했지만, 그동안 21%나 올랐다. 경제는 수요 공급의 원칙에 따라 움직인다. 공급은 늘리지 않고, 수요만 억제하면 안 된다. 시장의 논리와 심리를 보지 않고, 세금으로 누르고, 수요를 억제하면 어림없다.”
손학규 대표는 현 정부에 대한 날선 비판을 이어가면서도 본인이 몸 담고 있는 바른미래당의 현재에 대해 매우 냉정하게 평가했다. 박은숙 기자
“최저임금이 16.4%나 올랐다. 어떻게 감당하란 얘기인가. 결국 소규모 영세자영업자들, 소상공인들이 영향을 받는다. 능력이 없으니 사람을 자른다. 편의점 연합회에 가 보니, 지난해 점당 평균 4.5명의 고용인원이 올해 3.5명으로 줄었다. 전국 편의점이 4만~5만 개인 것을 추산하면 1년 사이 실업자가 5만 명 가까이 발생한 셈이다. 시장을 왜곡하는 경제정책은 실패다. 대통령은 소득주도 성장을 지향하고 장하성 실장은 기다리라고만 한다. 이해찬 대표는 그동안 경제구조를 탓한다. 억지다. 경제를 시장이 아닌 이데올로기 편향으로 운영하고 있다. 정작 신성장동력을 발굴한다면서도 알앤디 예산 증가율은 4%에 불과하다. 말로만 혁신성장이지 전체 예산 증가율 9.7%와 물가상승률 감안하면 제로다.”
―손학규발 정계개편 얘기가 여전하다. 정계가 곧 총선 모드에 돌입한다. 여전히 자유한국당과의 통합은 부정적인가.
“자유한국당은 박근혜 탄핵, 이명박 구속의 원죄자들이다. 탄핵 이후에도 정책이나 이념지향성이 그대로다. 비대위도 마찬가지다. 홍준표 전 대표의 막말이 조금 없어졌을 뿐이다. 비대위는 국민성장을 말했지만, 그게 무슨 말이냐. 차라리 얘기하지 말았어야지. 우리 정치 지형이 왼쪽으로 옮겨갔다. 정의당의 지지율이 오르고 더불어민주당은 거대여당이 됐다. 오른쪽은 지리멸렬이다. 자유한국당 중심으로 가면 과거 이데올로기 지향적인 것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중도개혁으로 개편해야 하고, 바른미래당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자유한국당과 통합하면 그저 보수우파들에게 휩쓸려 간다. 그럴 수는 없다.”
반면 손학규 대표는 내년을 거론하며 더불어민주당 일부 세력과의 연대는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더불어민주당에 변화가 있을 것이다. 지금은 대통령의 권위에 찍소리도 못하지만 내년 중반 즈음에 가면 파열음이 있을 것이다. 이번 지도부 선거에선 전부 친문만을 주장했지만, 개중엔 합리적, 개혁적 진보주의자들이 있다. 그 사람들과 새로운 정치세력을 구축해서 다음 집권을 위한 대안세력이 되어야 한다. 다만 지금은 그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다. 바른미래당은 아직 그 역량이 안 된다. 제대로 내부 혁신해서 뿌리를 단단히 내려야 한다. 그 이후에야 우리는 ‘앞장설 테니 함께하자’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바른미래당과 본인 역시 ‘호남’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우리 당의 결정적 약점이 통합과정에서 호남을 버린 거다. 호남 국민들도 우릴 내다버렸다. 심지어 우리를 심판의 대상으로 여겼다. 그런데 우리 당이 처음 3당이 될 때 전적으로 호남표를 얻었다. 그 호남을 버려서 지금의 우리가 된 거다. 호남 없는 야당은 아니다. 어떻게 호남의 신뢰를 얻을지 고민해야 한다. 무조건 우리가 고개 숙인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 대안정당이 될 수 있을 때 호남 국민들도 지지할 것이다. 그분들은 매우 전략적인 분들이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