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웨이에 기술력 3개월 처져…기댈 수 있는 건 보안 이슈뿐
그러나 삼성전자의 것은 4G 이동통신인 LTE(Long Term Evolution) 장비 위에 5G 장비를 덧씌우는 이른바 ‘LTE+5G 호환’ 형태에 한정된다는 점에서 경쟁력 상실 우려는 여전하다. 5G는 기존의 LTE 장비 위에 5G 무선 장비를 추가하는 비단독 모드(Non Stand Alone, NSA)와 5G 전용 장비로 구축되는 단독 모드(Stand Alone, SA)로 나뉜다. 진정한 5G는 단독 모드다. 이동통신 업계에선 “모든 유무선 장비를 5G 전용으로 도입해야 하는 5G 시대, 즉 5G 단독 모드 시기가 되면 가격과 기술력에서 뒤지는 삼성전자가 보안 이슈만으로 국내 이동통신사 선택을 받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2018 정보통신·이동통신전에 5세대(5G) 이동통신을 의미하는 ‘5G’ 조형물이 전시돼 있다. 연합뉴스
삼성전자는 세계 이동통신 장비 시장에서 뒤처져 있는 게 사실이다. 시장조사업체 IHS의 세계 통신장비 시장조사에 따르면 화웨이가 지난해 시장 점유율 28%를 차지하며 1위에 올랐다. 삼성전자의 시장 점유율은 3%에 그쳤다. 특히 5G 장비 기술력에서 화웨이는 삼성전자에 3개월 넘게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5G 전국망 대역인 3.5㎓의 경우 화웨이의 AAU(Active Antena Unit)는 장비 하나당 18개인 데 비해 삼성전자는 화웨이의 3분의 1인 6개 수준이다. 삼성전자 5G 장비 3개가 있어야 화웨이 5G 장비 1개의 통신 수준에 도달한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개당 가격은 오히려 화웨이가 삼성전자보다 20~30% 정도 싼 것으로 평가된다.
삼성전자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한 SK텔레콤은 호환성을 우선 고려했다고 설명한다. SK텔레콤은 “5G 주파수 3.5㎓에서 LTE에 기반한 복합 5G인 NSA 규격을 설치할 예정이니만큼 이미 깔려 있는 기존 네트워크(LTE)와 5G 기술을 융합하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기존 서울·수도권 LTE 장비 공급 업체인 삼성전자를 쓰는 게 유리하고, 서울·수도권에서 화웨이 LTE를 사용 중인 LG유플러스는 화웨이를 택할 것으로 보인다. KT 역시 삼성전자 장비를 쓰고 있으니 NSA에선 삼성전자 선정이 호환·가격 측면에서 유리하다. 결국 세계 시장에서는 3% 점유율에 불과하지만 국내에선 맹주라는 삼성전자 이점이 활용된 셈이다.
정부는 일단 삼성전자를 밀어주고 있다.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앞서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로 5G 스마트폰을 내놓을 때 장비도 단말기도 우리 것이어야 하지 않겠나”라고 했다. 문제는 5G 상용화 기준으로 삼은 내년 3월 이후다. 국내 이동통신사는 5G 상용화를 달성하기 위해 먼저 NSA로 5G 상용화를 추진하고, 이후 SA로 인프라를 교체해나갈 계획인 것으로 알려진다. SA의 경우 유선 네트워크 장비부터 새로 깔아야 하기 때문에 장비 호환성에 따른 제약이 거의 없다. 화웨이는 현재 SA가 5G 장비 경쟁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연구개발(R&D) 투자 확대 등 모든 역량을 SA 5G 장비 개발에 투입하고 있다.
안정상 더불어민주당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기술력에서 화웨이가 삼성전자에 앞서 있는 것은 맞다”면서 “삼성전자는 5G 전국망 대역인 3.5㎓보다 28㎓에 집중했고 와이브로 상용서비스에 치중하느라 이동통신 장비 시장 대응이 상대적으로 늦은 측면이 있으며 무선통신 장비 R&D 부문에서도 크게 밀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화웨이 등 중국 기업이 보유한 5G 관련 필수 특허는 전체 특허의 10%를 넘는다. 유럽통신표준기구(ETSI)에 따르면 화웨이는 차세대 통신 표준으로 꼽히는 5G AAU 기술 분야에서 1481건의 특허를 출원, 세계에서 가장 많은 특허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삼성전자와 화웨이 간 5G 이동통신 장비 경쟁이 향후 이동통신사의 5G 단독 모드 전환 시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사진=연합뉴스
현재로서는 삼성전자가 기댈 수 있는 부분은 보안이 전부다. 삼성전자는 “미국 내 1·2·4위 이동통신사가 택한 만큼 기술력을 인정받은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미국은 중국 통신장비를 배척하고 있다. 미국은 2012년 하원 정보위원회가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며 중국 통신장비 사용을 금지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발표, 중국 통신장비 사용을 막고 있다. 호주 정부도 이 같은 움직임에 동참했고 일본 정부까지 중국 배제에 보조를 맞추기로 한 상태다. 실제로 삼성전자 관계자는 “일본 1·2위 통신사가 삼성전자 장비 채택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이동통신 1·2위 사업자인 도코모와 KDDI는 화웨이 장비를 도입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통신업계에서는 미국과 중국 간 통상 갈등으로 중국 통신장비 업체 화웨이에 불똥이 튄 사이 삼성전자가 경쟁력을 얻는 상황이 생겼다고 분석하고 있다. 중국의 경제 확장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통상압력으로 삼성전자에 호재가 이어졌다는 것. 유영민 장관의 발언에서 자율주행차·인공지능·사물인터넷 등 미래 서비스의 핵심 인프라가 될 5G망을 중국 업체가 독식하는 것을 볼 수 없다는 정부 기관 계산도 엿보인다. 반면 호주 내 일부 이동통신사는 화웨이보다 20~30% 비싼 장비를 써야 하냐며 반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통신장비 선정은 기술적 문제를 넘어 정치적 문제로 넘어갔다”면서 “반도체 등 국내 주요 산업의 수요처가 중국인데 보안 우려나 통상 압력에서 미국 편에 가담하다 사드 사태처럼 역으로 통상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안 수석전문위원은 “LTE에서 화웨이 장비를 도입한 LG유플러스는 단 한 번도 보안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며 “중국 기업에 대한 일방적 배제는 국내 기업의 대중 수출에도 커다란 장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화웨이 관계자는 “중국 정부가 고객 정보를 요구한 적이 없고 그에 따른 보안 사고가 발생한 적도 없다”고 강조했다.
배동주 기자 j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