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사실 확인 없는 받아 쓰기도 문제
전명규 교수는 이제껏 최순실 국정농단이 한창이던 시절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 차관 때문에 힘든 시기를 보냈다고 줄곧 주장해 왔다. 2017년 9월 21일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도 “김종 차관이 계속 괴롭혀서 소치 동계올림픽 뒤 매우 힘든 시기를 보냈다“고 했다.
이는 마치 사실 같아 보였다. 언론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전명규 교수의 이런 주장과 유사한 흐름으로 기사를 냈던 까닭이었다. ‘스포츠서울’은 ”숨은 그림자의 조종으로 반 집행부 세력들은 ‘안현수가 귀화한 건 전명규 때문이다’는 허위사실을 퍼뜨렸고 이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까지 가세하면서 감히 손을 댈 수 없는 하명사건으로 비화됐다. 대통령의 하명사건은 당시 김종 차관이 중심이 된 체육개혁에서 전명규를 적폐세력으로 규정한 결정적 배경“이라고 했다.
이어 ”박근혜 대통령까지 가세했던 전명규 찍어내기는 이후 더욱 속도를 냈다. 김종 차관을 앞세워 한체대 교수 자리마저 빼앗으려 했다“고 보도했다. ‘주간조선’은 ”소치올림픽이 끝나자 대대적인 감사가 시작됐다. 빙상연맹의 대표팀 선발과정부터 예산집행 내역까지 조사했지만 별다른 혐의점은 나오지 않았다“고 썼다.
진보언론이 특히 전명규 교수의 주장과 비슷한 논조를 상세히 적었다. ‘경향신문’은 ”올림픽이 끝난 뒤 문체부는 동계스포츠 종목 단체를 대상으로 대대적인 감사를 실시했다. 김종 차관이 주도한 스포츠4대악신고센터를 통해 투서를 받았고 행정 및 재정 감사를 통해 모든 것을 뒤졌다“며 ”그 중 대한빙상연맹에 대한 감사는 유별났다. 당시 파벌 싸움의 원인을 제공하고 빙상연맹에서 전횡을 일삼은 것으로 지적된 전 교수가 표적이 됐다. 그는 이 정부 들어 무슨 일인지 문체부에 의해 척결대상이 됐다. 문체부 감사는 전 교수가 결재한 사안을 하나하나 들췄고 그가 쓴 영수증 한 장까지 챙기려 달려들었다“고 전했다.
‘경향신문’은 ”여론의 집중 포화 속에 김종 차관이 주도한 스포츠4대악센터가 빙상연맹에 대한 대대적인 감사를 벌였지만 어떤 흠집도 잡아내지 못했다“는 문장까지 곁들였다. ‘한겨레신문’은 ”자기관리에 철저한 전명규 교수가 권력의 뒷조사까지 받는 등 탈탈 털리면서 압력을 받았다“고 적었다.
실제 문체부는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안현수 귀화 사태가 터지자 대대적인 감사를 예고했었다. 2014년 4월 1일 문체부는 ”빙상, 아이스하키, 컬링, 스키, 바이애슬론, 봅슬레이스켈레톤, 루지 등 7개 겨울스포츠 종목의 경기단체에 대하여 강도 높은 감사를 실시할 예정“이라며 ”국가대표 선발 과정과 시설 및 장비 운영의 문제점 등에 초점을 맞춰 진행된다. 비위 사실이 적발되면 ‘범부처 스포츠혁신 특별전담팀’과 연계해 검찰 및 경찰청에 수사를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발언에 맞춘 감사 예정 발표였다. 감사 예정 발표에 앞선 2014년 2월 13일 문체부의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박 전 대통령은 ”안현수 문제가 파벌주의, 줄 세우기, 심판 부정 등 체육계 저변에 깔린 부조리와 구조적 난맥상에 의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었다.
대통령의 발언과 문체부의 감사 예정 발표, 언론의 보도까지 곁들여지다 보니 전명규 교수의 피해 주장은 이제껏 사실처럼 받아들여졌다. 허나 ‘일요신문’ 취재 결과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뒤 빙상연맹은 문체부의 감사를 받지 않았다고 나타났다. 아예 감사 자체가 없었던 까닭이었다.
‘감사’보다 낮은 신고 사안 ‘조사’였다. 이 조사 결과에서 조차 전명규 교수 이름은 없었다. 공공기관은 산하단체 등에서 특정 사안이 발생하면 중요도에 따라 조사에서 감사 순으로 확인 절차의 규모를 확대하고 결과에 따라 사안을 징계하거나 수사기관에 사건을 넘긴다.
문체부 관계자는 “당시 문체부가 스포츠4대악신고센터(현 스포츠비리신고센터)와 함께 겨울스포츠 종목 일부 단체 조사를 진행했다. 스포츠4대악신고센터에 접수된 신고 사항 위주였다. 언론에서 스포츠4대악신고센터가 감사를 벌였다고 보도했는데 스포츠4대악신고센터는 신고만 받는 곳이다. 감사를 하는 조직이 아니다”라며 “대한스키협회와 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 신고가 많았다. 빙상연맹도 일부 했는데 당시에는 장명희 전 빙상연맹 회장 내용이었다. 전명규 교수 관련 내용은 조사 결과에도 전혀 나오지도 않는다. 게다가 감사조차 아니었다”고 말했다.
스포츠비리신고센터 관계자는 ”우리는 제보를 받고 제보된 내용의 사실 관계만 파악하는 곳이다. 감사를 진행하지 않으며 권한도 없다. 전명규 교수 관련 내용은 우리 쪽에서 진행한 바 없다고 알고 있다“고 밝혔다.
안현수 귀화 사태가 발생한 소치 동계올림픽에 앞서 김종 전 차관 시절 문체부는 빙상연맹을 감사 대상에 올렸던 적이 있긴 했다. 대상은 빙상연맹뿐만 아니라 체육단체 전체였다. 문체부는 빙상연맹 포함 121일간 2099개 스포츠단체를 감사했다. 그 가운데 문제가 크다고 판단된 관계자 30명을 불러들였다. 전명규 교수는 30명 명단에 조차 포함되지 않았다.
5월 23일 빙상연맹 감사결과를 발표하는 노태강 문체부 차관
감사는 정관과 회계 집행 등 표면적 감사에 그쳤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스포츠단체 2099곳을 121일간 감사하려면 하루 평균 17곳을 감사해야 한다. 8시간 근무 기준 단체 1곳 당 30분이 걸리는 감사였다. 평창 동계올림픽 직후 문체부가 실시한 빙상연맹 특정감사와 대비된다. 문체부는 5주간 빙상연맹 한곳만 감사를 벌였다. 전명규 교수의 전횡은 그제야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이를 두고 한 유력 빙상인은 ”전명규 교수는 단독 인터뷰 등을 언론에 제공하며 기자와의 유대관계를 돈독히 쌓아왔다. 정적을 제거하려 ‘기획’ 서류를 언론에 제공하기도 했다. 일부 기자에겐 스포츠 공공기관 자리도 줬다고 알고 있다“며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는 전 교수에겐 가장 소중한 기회였다. 모든 걸 최순실의 농단으로 규정하면 도망갈 수 있는 최적의 루트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전명규 교수는 여러 차례 연락에도 아무런 해명을 내놓지 않았다.
한편 전명규 교수 관련 옹호 기사를 보도했던 기자 가운데 2명은 한체대 박사 과정에 진학했고 장학금을 받기도 했다고 드러났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