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각에서는 김병준-김무성 밀약설도 돌아…측근들은 “사실 무근”
4일 조직강화특위에 합류한 전원책 변호사의 취임일성이다. 전 변호사는 김병준 비대위원장으로부터 인적쇄신 전권을 위임받았다. 조강특위는 전국 253개 당원협의회(당협) 위원장을 재선임하는 역할을 한다. 당협위원장에서 탈락하면 지지 기반이 사라지기 때문에 차기 공천권을 받기 어려워진다. 한국당은 이에 앞서 지난 20일 전국 당협위원장을 일괄사퇴시킨 바 있다.
4일 자유한국당 조직강화특별위원회 외부위원으로 내정된 전원책 변호사가 국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즉, 자유한국당이 미루던 인적쇄신에 돌입했다고 볼 수 있다. 김병준 비대위원장 체제에서 인적청산보다는 ‘보수가치 재정립’을 앞세우던 모습에서 변화된 모습이다. 조강특위는 위원장을 맡는 김용태 사무총장을 비롯해 김석기 전략기획부총장, 김성원 조직부총장 등 당내 인사 3명과 전원책 변호사를 비롯한 외부 인사 4명 등 7명으로 구성된다.
전 변호사의 조강특위 선임, 인적청산 본격화를 두고 당내 반발도 있었다. 친박계 성향의 초·재선 의원 17명은 “특정인에 의한 ‘인치적’, ‘제왕적’ 개혁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표명하기도 했다. 이런 입장표명에도 불구하고 당의 인적청산 방향은 이미 확고한 기조로 봐야 한다는 얘기가 팽배하다. 지난 20일 추석 연휴 직전 한국당이 253곳 당협 가운데 사고 당협 22곳을 제외한 231곳의 당협위원장 전원을 사퇴시킨다는 발표부터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김 비대위원장은 비공개회의에서 당협위원장 일괄사퇴 안건을 만장일치로 의결했다고 전했다. 이를 두고 당의 핵심권한을 쥔 비대위 사정에 밝은 한국당 관계자는 “국민 눈높이에 맞춘 인적 청산을 안 할 수는 없다. 다만 계파에 따른 청산은 안해야 한다”며 “친박이라 자르고 비박이면 살려주면 이 당은 망한다는 공감대는 있다고 알고 있다. 전원책 변호사를 영입한 이유도 전 변호사가 누구 말 따를 사람이 아니라는 공감대가 결정적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즉 전 변호사 영입은 친박, 비박 모두 어느 쪽에 치우치지 않게 칼을 휘두를 거라는 세평이 결정적이었다는 후문으로 볼 수 있다. 또한 한국당 내에서는 전 변호사가 최소한 자기 정치를 하거나 차기 당 대표 등에 출마하진 않으리라는 공감대도 역시 작용했다고 보여진다.
인적쇄신을 두고 일각에서는 김병준 비대위원장, 김무성 전 대표의 일종의 밀약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당 지지세가 요지부동인 상황에서 김병준 위원장은 인적 청산에 손을 댈 수밖에 없었지만 손에 피 안 묻히고 자르고 싶었다. 특히 현재 한국당 내 계파는 친박, 친홍, 비박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 중에서 비박 이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여기에 차기 당 대표를 노리는 비박 대표주자 김무성 전 대표 입장에선 가장 껄끄러운 게 친박이니 양쪽의 이해가 맞아 전 변호사를 영입한 게 아니냐는 얘기다.
이에 앞서의 한국당 관계자는 “김무성 전 대표가 차기 전당대회에 출마한다는 소식은 많이 들었지만 사실이 아니다. 사실 김 전 대표는 더 이상 정치에 뜻이 없고 사실상 은퇴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불출마를 선언한 것도 세간에서 해석하듯 차기 전대에 출마하기 위한 포석이 아니라 진짜 정치에서 떠나려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 전 대표를 잘 아는 한 당직자도 밀약설에 대해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그는 “현재까지 입장은 차기 당 대표 선거에 나갈 마음이 없다는 쪽이 더 크다. 전당대회 출마 안하고 총선 불출마하면 사실상 은퇴다”라며 “측근들이 전당대회 출마를 설득하고 있는데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귀띔했다. 김 전 대표 측근들은 이번에 마지막으로 만회할 기회이자 아름다운 마무리를 할 순간이라는 이야기로 설득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밀약설은 뒤로 미루더라도 당장 인적쇄신 자체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도 나온다. 당에 뿌리가 없는 김병준 비대위원장, 전원책 변호사가 과연 인적청산을 시원하게 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상대적으로 당 내 기반이 없는 김병준 비대위원장 입장에서는 믿고 맡길 사람이 마땅치 않아 선택한 카드로 보인다”며 “당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알고 뿌리가 있어야 겉돌지 않고 인적 청산에 성공할 수 있다. 지금으로서는 쇄신 가능성을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지적은 비박 성향의 한 당직자에게서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이번 한 번으로 인적 청산이란 게 성공하리라 보지 않는다”며 “지속적으로 걸러내야 한다. 단순히 막말, 친박이 아니라 박근혜 전 대통령과 국정농단에 책임이 있는 의원, 한국당과 결이 맞지 않는 정책성향을 갖고 있는 의원은 과감히 이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어떤 청산을 해야 할까. 앞서의 신 교수는 17대 총선을 좋은 사례로 들었다. 이어 신 교수는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에서는 김문수 전 지사가 공천심사위원장을 맡았다. 김 전 지사는 당시 당 대표였던 최병렬 전 대표부터 공천 탈락시켰다. 실권이 있는 상징적인 사람을 잘라야 국민에게 지지받을 수 있다. 17대 총선 사례가 지금 한국당에 좋은 귀감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비대위 내부에서도 이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어떤 카드를 만지작대는지 인적쇄신에 대한 국민들의 의심의 눈초리를 가라앉힐 수 있을지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비대위 한 관계자는 “단순히 몇 명 쳐내면 특정 계파가 희생양 됐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다. 희생이나 모범도 필요하다. 상징적인 인물을 두고 깜짝 놀랄 만한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