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방·가짜뉴스·총추위 특정후보 지지 등 점입가경…상징성 크고 정부 요직 진출 기회 많아 과열양상
제27대 서울대학교 총장 재선거가 일정 초반부터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0월 12일 제27대 서울대 총장 예비후보 5명이 선정되면서 총장 선거 일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서울대 총추위는 지난달 6일부터 21일까지 총장 후보를 모집, 후보 등록을 마친 총 9명 가운데 8명을 예비 후보군으로 선발했다. 총추위는 이들의 자격요건 등을 심사해 후보군을 다시 5명으로 추렸다.
총장 예비후보로 선출된 강태진 전 공과대학장, 남익현 전 경영대학장, 오세정 전 바른미래당 의원, 이우일 전 연구부총장, 정근식 통일평화연구원장은 오는 24일과 26일 각각 연건캠퍼스와 관악캠퍼스에서 진행되는 공개소견발표회에서 학교 운영 방안 등을 설명할 예정이다. 일정대로라면 정책평가단과 총추위는 후보자의 정책 등을 심사해 내달 14일 후보자 3인을 선정, 27일 이사회가 이들 중 한 명을 최종 총장 후보자로 뽑는다. 이번 선거는 지난 7월 총장 최종 후보의 낙마로 다시 진행하는 재선거다.
문제는 선거 초반부터 후보자, 후보 지지자들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선거가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것이다. 언론보도를 통해 후보자 스스로를 홍보하거나 가짜뉴스 유포, 투서로 상대 후보를 깎아내리는 등의 비방전이 도를 넘어섰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심지어 선거를 관리·진행하는 총추위 일부 위원이 학내구성원에게 연락해 특정 후보를 지지해달라고 부탁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서울대 A 교수는 “특정 후보가 언론 기사를 통해 선거 출마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이며 주변인들은 이를 어떻게 평가하고 바라보는지를 소개하면서 스스로를 홍보한다”며 “이러한 언론 홍보는 과거 선거에도 빈번히 관측됐다”고 설명했다. 선거가 과열양상을 보이자 서울대 교수협의회는 최근 교수들에게 “후보자 간 각종 음해시도, 간접적인 언론선전, 총추위의 특정후보 지지활동이 사실로 확인됐다. 주의를 요구하며 적발 시 강력 대응하겠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이번 선거의 경우 현직 국회의원이었던 오세정 전 바른미래당 의원이 의원직을 사퇴, 총장 선거에 출마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기도 했다. 4년 임기가 반 이상 남은 상황에서 대학가로 거처를 옮기는 행보가 이해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 오 전 의원이 서울대 총장직을 발판 삼아 정부 요직 등을 노리는 것 아니냐는 추측도 제기됐다. 오 전 의원은 “국회 업무는 주로 제도 개선 등을 목표하고 있어 일이 간접적으로 느껴졌다. 현장 일선에 나아가 좀 더 직접적인 일을 하고 싶었다”며 “국회의원직도 중요하지만 우리나라 교육을 선도하는 서울대를 책임지는 것도 나름 중요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서울대 총장 선거가 단과대 간 세력싸움으로 변모하고 있다고 지적이 나왔다. 총장 후보 5명의 정책을 평가하는 정책평가단에는 의과대·공과대·자연과학대 등 규모가 큰 단과대 소속 교수들이 다수 참여하고 있다. 이들이 해당 단과대 출신 후보자를 지원하면서 경쟁구도가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 그러다보니 해당 후보자들이 총장으로 선출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난 선거에선 의대 교수 1명, 공대 교수 2명이 이사회에 최종적으로 추천됐다. 앞서의 A 교수는 “단순 지지를 넘어 총장 후보자를 돕는 교수들이 많다”며 “소위 캠프라고 하는데 후보자를 적극 지원하는 거다. 그 과정에서 세력이 갈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지난 7월 9일 서울대 총학생회가 총장선거 파행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더군다나 선거 제도에 대한 내부 불만이 높았던 터라 총장 선거에 대한 불신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예비후보 5명을 3명으로 추리는 투표 과정에서 총장 선거를 관리·진행하는 총추위가 참여하는 것이 적절치 못하다는 지적이 줄곧 제기됐던 것. 서울대 B 교수는 “총선, 대선으로 치면 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도 관리하면서 투표도 하는 꼴”이라며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것으로 대부분의 교수가 이에 문제를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 총학생회는 지난 10월 18일 ‘총추위 정책평가 권한 삭제 요구를 위한 교수·직원·학생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또다시 불거진 총추위의 선거개입 의혹을 지적, 민주적 총장선거 실시를 요구했다. 박성호 서울대 부총학생회장은 “총장 선거를 둘러싸고 워낙 말이 많다보니 선거에 회의적이거나 비판적인 분위기가 있는 게 사실”이라며 “선거제도 개선 등을 위해 총추위를 계속해서 압박할 계획”이라고 했다.
대학가에선 서울대 총장직이 갖는 상징성이 커 선거 과열 경쟁이 벌어진다고 평가했다. 서울권 K 대학 교수는 “서울대가 국립대를 대표하는 것은 물론 지식인 집단들이 아직까지 존경하는 집단인 만큼 서울대 총장자리는 전통적으로 권위가 있다”며 “서울대 총장 선거는 최근 과열되고 있는 대학가의 총장 선거를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했다. 서울권 S 대학 교수는 “서울대 총장자리는 퇴임 후 정치권이나 정부로부터 러브콜을 받을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며 “총장 역임을 하나의 성공 사다리로 여기다보니 후보자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역대 서울대 총장 25명 중 6명은 총장 퇴임 후 정부 요직을 도맡았다. 제23대 서울대 총장인 정운찬 박사, 제20대 이수성 박사, 제16대 이현재 박사는 퇴임 후 국무총리를 역임했다. 제18대 총장인 조완규 박사, 제15대 권이혁 박사, 제5대 최규남 박사는 퇴임 후 교육부 장관으로 선출됐다.
이성진 기자 reveal@ilyo.co.kr
서울대 총장 어떻게 뽑나? 차기 서울대 총장 후보 모집공고는 총장 임기만료일 약 5개월 전에 실시된다. 외부인사 10여 명과 내부인사 20여 명으로 이뤄진 총추위가 모집공고를 실시해 후보등록을 받는 것. 총추위 내 총장후보초빙위원회(초빙위)는 공고 이후 1개월 이내에 내부 심사를 거쳐 외부인사 1명을 추천할 수 있다. 총추위는 초빙위가 추천한 외부 인사를 제외하고 나머지 후보들에 대한 서류심사, 발전계획서 평가를 진행해 총장 예비후보자를 5명 이내로 선정한다. 이후 총추위와 학생·교수·직원으로 구성된 정책평가단은 이들 후보자들의 정책을 평가한다. 이때 정책평가단과 총추위의 평가 결과는 75 대 25의 비율로 반영된다. 총추위는 이를 토대로 총 3명의 총장후보자를 선정, 이들을 순위를 매겨 이사회에 추천한다. 이사회는 통상적으로 1위를 기록한 후보자를 최종 총장후보로 선출한다. 최종 후보는 교육부 장관의 제청을 거쳐, 대통령이 차기 서울대 총장으로 임명한다. [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