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7개월 영아 ‘척수성 근위축증’ 진단에도 ‘선천성’ 이유로 보험금 지급 거절...법원 “생후 진단 선천성 보기 어렵다” 판결
서울 광화문 현대해상 사옥. 사진=박은숙 기자
해당 사건 판례는 태아 보험에서 ‘선천성’의 의미 정립과 보험금 지급 여부와 관련한 최초의 사례로 전해져 앞으로 보험업계에 적지 않은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경기도에 사는 Y 씨는 2014년 3월 임신상태에서 자신을 보험계약자와 수익자로 하고 태아를 피보험자로 하는 ‘무배당굿앤굿어린이CI’ 보험상품 계약을 현대해상과 체결했다.
보험계약은 Y 씨가 출산할 영아가 약관에서 정한 질병특정고도장해로 판정될 경우 현대해상이 보험 가입금 3000만 원을 Y 씨에게 보험금으로 지급한다는 내용이다. 구체적으로 영아가 특별약관에서 정한 질병의 결과로 장애가 발생해 ‘1급 또는 2급 장애인’이 될 경우 Y 씨는 현대해상으로부터 보험금을 지급받는다는 것이다.
Y 씨는 현대해상과 보험계약 체결 7개월 만인 2014년 10월 딸 K 양을 출산했다. K 양은 정상아로 태어났으나 생후 7개월 경인 2015년 5월 목을 가누는 힘이 줄어드는 증상을 보였다. 이에 Y 씨는 딸을 삼성서울병원에서 정밀 진단을 받게 했다. 결국 K 양은 병원으로부터 같은 해 7월 ‘척수성 근위축증’ 진단을 받았다. 희귀성 난치병인 척수성 근위축증은 척수와 뇌간 운동신경세포 손상으로 근육이 점차 위축되는 신경근육계 유전질환을 말한다.
이후 같은 해 12월 K 양이 1급 장애인으로 등록되자 Y 씨는 현대해상 측에 보험계약에 따른 보험금 지급을 청구했다. 이 보험계약 36조 1항은 ‘보험금 청구서를 접수한 날로부터 3영업일 이내 보험금을 지급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현대해상은 K 양의 질환이 선천적 질환이라며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다. 결국 Y 씨는 2016년 초 현대해상을 상대로 보험금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Y 씨는 “산모가 태아보험에 가입하는 이유는 출산 이후 영아에게 혹시 생길 수 있는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서다”라며 “보험사가 유전자 질환이라는 이유로 출생 시 아무 증상이 없었음에도 선천성 질환으로 판단하는 것을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다. 유전자 질환은 가족력이 없는 경우 산전 진단으로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라고 강조했다.
‘일요신문’이 1심과 2심 법원 판결문을 입수해 살펴보니 현대해상은 “Y 씨와 체결한 보험계약의 질병특정고도장해 보장 특별약관에 ‘피보험자가 선천적 질환일 경우 보험금을 지급하지 아니한다’라고 규정돼 있다. K 양은 선천적 질환이다”라며 지급 거절 이유를 주장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재판 과정에서 현대해상은 “K 양이 태어날 때부터 유전자 결손이 있었던 이상 질병은 선천적 질병에 해당한다”는 논리로 일관했다.
하지만 1심과 2심 법원은 “피보험자인 K 양이 진단받은 척수성 근위축증을 선천적 질환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결론짓고 Y 씨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피고는 원고에게 보험금 3000만 원과 기간에 따라 연 6%, 연 15%의 이자를 지급하라.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원고는 가집행할 수 있다”고 선고했다. 판결 이후에도 현대해상이 보험금 지급을 머뭇거리자 Y 씨는 결국 법정이자를 포함해 총 3800만 원을 수령했다.
법원은 판결의 근거로 K 양을 진료한 복수의 전문의들의 진료 소견을 참고했다. 특히 법원의 진료기록 감정촉탁에 따라 감정서를 작성한 서울아산병원 Y 의사의 소견이 결정적이었다. Y 의사는 감정서에서 “K 양은 출생 당시 상태가 매우 양호했다. 출생 직후 시행한 선천성 대사 이상 검사는 정상 소견이었다”며 “선천성 질환의 의학적, 학문적 의미는 태아 상태나 출생 과정에서 생기는 질환을 의미한다. K 양은 생후 7개월 경 진단받았으므로 선천성 질환으로 보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지난해 11월 1심 법원은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그리고 올해 5월 2심 법원도 피고의 항소를 기각했다. 이에 현대해상 측이 상고했으나 대법원은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2심 판결이 최종 확정됐다.
이번 사례는 태아보험의 선천성 질환 의미 정립과 관련한 최초의 판례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현대해상은 선례를 남기지 않는 보험사가 되기 위해 이 소송에 총력을 기울여 온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현대해상 관계자는 “소송과 관련된 당시 담당자들의 변동이 있어 사실 관계를 파악하고 있다. Y 씨에게 보험금과 이자를 지급한 것은 맞다”고 설명했다.
장익창 기자 sanbad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