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증평가 전 사전 리허설…의약품 관리 잘못 기록 삭제 지시, 허위진술 종용 등 인증평가 무용론 지적
참다 못한 서울대병원 직원들이 나섰다. 무법과 편법, 위법이 난무한 현재 서울대병원 운영상황은 제2의 이대목동병원 사태, 밀양병원 화재를 낳을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10월 23일부터 26일까지 4일 동안 국립 서울대병원은 의료기관평가인증원의 인증 평가를 받았다. 상급종합병원으로 지정받으려면 인증을 받아야 한다. 4년에 한 번 인증평가를 받는데, 서울대병원 의료진이 잘못된 병원 운영 실태를 폭로해 논란이다. 의료진은 최소한의 의료 수준 유지와 의료 공공성의 마지막 보루인 국립 서울대병원을 지키기 위해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서울대병원 노동조합은 임직원을 대상으로 투표 및 사례를 취합하고 제보를 받아 지금까지의 불법행위들을 스스로 밝혔다.
서울대병원 노동조합은 그간 의사의 구두처방에 대비해 주비해뒀던 비품약을 숨기라고 지시받았다고 폭로했다. 사진=서울대학병원 노동조합 준비 자료
응급중환자실 소속 최 아무개 간호사는 병원의 안전대책 부재 문제를 지적했다. 최 씨는 물론 다른 직원들은 소방안전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하지만 병원 측으로부터 인증 평가서에 소방안전 교육을 받은 것을 허위진술하도록 종용받았다. 최 씨는 “병원이 화재 시 안전대피요령을 영상으로 만든 것을 보면, 위급상황 시 중환자 스스로 링거와 온갖 장치가 주렁주렁 달린 베드를 밀어 탈출해야 한다”며 “아무런 재난대응에 대한 교육을 받지 못했는데 인증평가에는 허위로 받았다고 말하라고 시켰다”고 털어놨다.
본관 3층에 위치한 중환자실 병상은 50여 개인데, 현재 상황으로선 화재 시 환자는 죽음의 위기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 소방안전팀은 전체 인원이 5명, 그마저도 야간에는 한 명이 담당해 사실상 위급 사태에 대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환자들에게 투여해야 할 의약품 관리 문제도 원칙을 어기고, 불법적으로 관리됐다. 산부인과 병동의 한 간호사는 “아침에 1시간 일찍 출근해 그날 투여해야 할 약품을 다 준비한다. 투여직전 약품을 개봉해야 하지만 시간이 부족해 어쩔 수가 없다”며 “이대목동병원도 이 문제 때문에 신생아가 죽었다. 조속히 부족한 근로인원을 늘려야 한다”고 토로했다.
노동조합이 간호사를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 설문 참여자 전원이 ‘평소에는 하지 않던 의료 매뉴얼을 의료인증 평가 기간에 실시했다’고 응답했으며, 89%가 ‘실제로 하지 않는 일을 인증평가 위원들에게는 하고 있다고 대답하라고 요구받았다’고 답했다.
서울대병원은 규정대로 보관하지 않은 의약품에 대해 관련 기록을 삭제했다.
인증평가에 앞서 사전 리허설을 진행한 서울대병원 QA팀은 의약품 보관 기록 삭제도 지시했다. 의약품 냉장고는 일정한 온도를 유지해 의약품을 안전하게 보관해야 한다. 하지만 일정 온도로 관리되지 않은 것이 발견됐고, 병원은 오해를 없애기 위해 전체 온도계 이력을 삭제하라고 지시했다.
서울대병원 노조는 “보건복지부와 의료기관인증평가단에게 병원에서 자행되는 문제점들을 전달했지만 이를 묵살했다”며 “환자를 우선으로 생각해 이제라도 서울대병원 정상화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반면 서울대병원 측은 “노조의 폭로에 대해 일일이 대응하기 어렵다.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이다”고 말했다.
병원보다 더 큰 문제는 제대로 관리하기 어려운 현재의 의료기관 인증평가 제도다. 의료기관인증평가원은 병원의 전반적인 운영사항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역할을 맡는다. 하지만 제대로 감독이 되지 않아 최근 들어 상급종합병원에서조차 의료사고가 줄지어 일어나고 있다. 신생아 사망으로 문제가 된 이화여자대학교의과대학부속목동병원 역시 2015년 인증평가를 통과했다. 이처럼 의약품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고질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
잇따른 의료사고로 의료기관 인증평가가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쏟아진다. 인증평가가 시작된 2010년 이후 94% 이상 의료기관이 모두 인증평가를 통과했고, 자격 미달로 불인증을 받은 기관은 4.8%에 불과하다. 인증을 받은 경우 4년간 자격이 유지되는데, 의료기관은 매년 자체조사를 시행해 그 결과를 인증원에 제출해야 한다. 문제는 인증평가를 담당하는 조사위원이 모두 의료인으로 구성된다는 점이고, 병원의 자체조사로 현황점검이 이뤄져 제대로 된 감독이 불가능한 구조에 있다.
의료기관인증평가원은 의료법 제58조에 근거해 보건복지부 장관이 인증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정한 업무를 위탁받아 수행하는 인증전담기관이다. 하지만 보건복지부 산하가 아닌 비영리재단법인으로 설립됐고, 병원협회, 의사협회, 간호협회 등 보건의료인단체가 출연금을 내고 설립해 인증 업무를 보고 있다. 복지부는 의료기관평가인증원에 인건비 등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인증을 받고자하는 의료기관은 직접 인증평가 비용을 평가원에 지불한다. 상급종합병원의 경우 2100만~3400만 원 상당의 비용을 내야 한다. 이렇다보니 시민과 국민의 입장보다는 의료계를 대변해, 제대로 된 평가를 하기 어려운 구조다. 평가원에는 비상임이사가 17명인데 대부분이 의료계 인사고 시민대표는 3명 정도에 불과하다. 폐쇄적이고 한정적인 의료계 특성상 인맥이 있는 의료인끼리 서로를 평가하는 것은 객관성을 담보하기가 쉽지 않다.
의료기관인증평가원 측은 “서울에 있는 의료기관 경우 지방의 의료인을 조사위원으로 구성하는 방법으로 객관성을 담보한다”며 “서울대병원 역시 매뉴얼과 기준에 따라 원칙대로 평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