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커버] 2018 할로윈 현장을 가다1-할로윈 천태만상
바나나로 분장한 외국인들
이태원과 가까워질수록 서서히 할로윈 분위기가 났다. 마녀로 분장한 어린이가 어머니와 길을 걷고 있었고, 쇼핑백에 넣어둔 캐릭터 의상을 꺼내보는 외국 청년도 있었다. 비 소식이 있는 쌀쌀한 날씨였지만 거침없이 몸매를 드러낸 사람도 여럿 보였다. 거리에서 만난 대학생 이 아무개 씨(23)는 “할로윈 즐기러 이태원에 처음 왔다”며 “이태원이 핫(hot)하다고 들어서 재밌게 놀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친구와 함께 대구에서 왔다.
거리를 걷던 중 특수 분장사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은 일반 시민을 좀비, 해골 등으로 변신시키고 있었다. 할로윈 분위기를 느끼기 위해 직접 분장을 해봤다. 조커, 뱀파이어 등 얼굴 전체를 덮는 분장을 하고 싶었지만 대기 행렬이 길었다. 그나마 ‘상처’같은 특수 분장은 금방 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찢어진 입’과 ‘할퀸 상처’로 정했다.
경력 8년의 김 아무개 분장사는 ‘강렬하게 만들어 달라’는 기자의 말에 “예술혼을 불태워주겠다”고 답했다. 그는 기자의 얼굴에 인공피부를 얼굴에 붙이고 고무칼로 섬세하게 균열을 냈다. 이후 보조에게 ‘다른 붓을 가져오라’ 지시하며 예술혼을 불태웠다. 김 씨는 “오늘 오전 8시부터 나와서 일했다. 손님이 끊이질 않아 정말 정신이 없다”고 덧붙였다.
분장사는 기자의 입을 찢고 얼굴을 할퀴었다. 사진=차형조 인턴기자
분장을 마치니 분위기가 한껏 살았다. ‘메인 거리’라 불리는 해밀톤호텔 뒤편으로 들어섰다. 예상대로 온갖 캐릭터가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데드풀, 타노스, 트럼프, 김정은 등 장르를 불문하고 다양했다. 장난감 총, 모형 자동차 등을 활용한 분장도 볼 수 있었다. 이날은 지브리 스튜디오 캐릭터 ‘가오나시’가 눈에 많이 띄었다. 거리에서 만난 6인조 피에로는 “방금 비가 와서 조금 춥긴 하지만, 너무 재밌다”고 말했다.
영화 ‘인피니티 워’의 캐릭터 타노스. 사진=차형조 인턴기자
이태원 일대 가게는 할로윈을 맞아 각종 이벤트와 파티를 진행하고 있었다. 파티 분위기를 느끼기 위해 클럽으로 향했다. 기자가 ‘할로윈 분위기 느끼려면 어디가 좋냐’고 묻자 홍보활동 중이었던 A 클럽 직원은 “할로윈엔 라운지 펍도 좋다”고 말했다. 클럽도 좋지만, 할로윈 분위기에는 비교적 개방적인 라운지 펍도 추천한다는 뜻이었다.
라운지 펍으로 들어가 보니 으스스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곳곳에 거미줄같은 실타래가 걸려있었고, 누르스름한 조명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모든 직원은 드라큘라로 분장한 채 일을 했다.
사람들은 펍 안에서 함께 춤을 췄다. 캣우먼, 간호사 복장 같은 다소 과감한 의상들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강렬한 비트 위에 몸을 맡겼다. 음악소리는 가게 벽을 뚫고 나와 거리에 울렸다. 박재범의 ‘몸매’가 나오자 사람들은 후렴구를 외치며 환호했다. 농밀한 눈빛이 오가기도 했다. 시계를 보니 어느덧 하루가 지난 27일 오전 2시였다. 가게 밖의 거리는 여전히 사람으로 북적였다.
사건 발생으로 경찰이 출동했다.
즐거운 할로윈 속에도 사건・사고는 있었다. 27일 오전 2시 17분, 용산경찰서 이태원지구대엔 폭행 혐의로 한 남성이 연행돼 들어왔다. 그보다 훨씬 전부터 지구대 안엔 술에 취한 여성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굳게 잠긴 지구대 문 앞엔 지인들이 애 태우며 기다리고 있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을 따라가 보니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는 취객이 쓰러져 있었고, 2번 출구 방향 골목에는 한국인과 외국인의 다툼이 있었다.
옆에서 다툼을 지켜보던 다코야키 푸드 트럭 사장은 “싸움도 싸움이지만, 진짜는 승차거부다. 거의 전쟁을 치른다”고 말했다. 도로변에 있던 한 아무개 씨(26)는 “서소문에 빨리 가야하는데, 택시가 안 잡혀 큰일”이라고 말했다.
용산경찰서 이태원지구대 관계자는 “26일 하루만 약 150건의 사건・사고가 있었다”고 말했다. 하루 동안 10분에 한번 씩 출동한 셈이다.
새벽이 깊어 인파가 서서히 물러나자, 거리에는 버스킹을 하는 사람이 등장했다. 이태원역 2번 출구 방향 성인용품점 앞에는 타악기 젬베를 치는 사람이 있었고, 외국인들이 연주에 맞춰 춤을 췄다. 춤을 추던 외국인 매건은 “트릭 오어 트릿(trick or treat)이 없어서 좀 아쉬웠다. 그래도 미친 듯이 놀아서 즐거웠고, 토요일은 더 기대 된다”고 할로윈 소감을 말했다.
천재상 인턴기자 cjos3307@ilyo.com
2018 할로윈 현장을 가다2-할로윈 대목 맞은 이태원 상권 풍경上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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