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커버] 2018 할로윈 현장을 가다4-할로윈판 ‘만원의 행복’
지하철에서 강시 분장을 한 대학생들을 마주했다. 이태원역으로 향하는 지하철 6호선에는 할로윈을 맞아 분장한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사진=김명선 인턴기자.
26일 저녁 7시 30분. 지하철에서부터 할로윈 축제 주간임을 눈치 챘다. 이태원역으로 향하는 6호선 지하철에서 분장하거나 할로윈 코스튬(복장)을 입은 사람들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강시 옷을 입은 대학생 A와 B씨는 “재밌어서 매년 분장을 하고 축제에 참여한다”고 입을 모았다. tvN 예능 ‘신서유기 6’에서 강호동, 은지원, 송민호 등 출연진이 귀신 분장을 한 영향인지 귀신 분장을 한 사람들이 특히 많았다.
‘불금(불타는 금요일)’을 맞은 이태원역 인근은 청춘들로 북적거렸다. 때 이른 추위로 찬 바람이 쌩쌩 부는 날씨였지만 삼삼오오 모여 왁자지껄하게 웃고 떠드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클럽에서 나오는 비트소리에 맞춰 춤을 추는 청년들도 있었다.
길거리를 거닐다보니 ‘눈이 즐겁다’는 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일본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캐릭터인 가오나시부터 김정은 위원장 분장을 한 사람까지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이태원을 찾았다. 공짜로 연극 한 편을 보는 듯했다. 분장을 맛깔나게 잘한 사람들 주변에는 사람들이 앞다투어 사진을 부탁하는 광경도 벌어졌다.
가오나시 분장을 한 화장품 가게 직원. 사진=김명선 인턴기자.
어떤 이는 북한 김정은 위원장 분장을 하고 이태원을 찾았다. 사진=차형조 인턴기자.
길목 곳곳에 있는 ‘간이 분장실’도 눈에 띄었다. 사람들은 간이 의자나 돗자리에 앉아 특수 분장을 받고 있었다. 분장을 받으려는 사람들로 줄도 길게 늘어서 있었다. 학생 C(21) 씨는 “이태원에는 처음 왔다. 축제 기분을 내고 싶어서 분장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분장은 제일 싼 게 5000원이었다. 상처를 하나씩 추가할 때마다 5000원의 추가 요금이 붙었다. 할리퀸이나 조커, 뱀파이어 등 메이크업을 하려면 2만 원이 필요했다. 대학교 졸업사진 메이크업이 5만 원을 넘나든다는 것을 생각해볼 때 가격은 제법 싼 편이다. 기자도 5000원을 주고 오른쪽 볼에 상처를 하나 그렸다. 상처는 꽤 실감 나게 그려졌다.
5000원을 주고 상처 분장을 했다. 가격 치고는 꽤 실감 나게 그려졌다. 사진=김명선 인턴기자.
할로윈 축제를 맞아 특수분장을 받고 있는 사람들. 사진=김명선 인턴기자.
특수분장 가격은 대부분 5000원에서 1만 원 사이였다. 사진은 가격표. 사진=김명선 인턴기자.
분장에 돈을 쓰기 싫은 사람들은 인근의 화장품 가게로 모였다. 이들은 화장품 가게 진열대에 있는 테스터 제품으로 직접 분장을 하고 있었다. 남성들도 끼리끼리 모여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있었다. 화장품 가게의 직원이 특수 분장을 해주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화장품 가게 직원이 손님에게 특수 분장을 해주고 있었다. 사진=김명선 인턴기자.
얼굴에 상처 분장을 하나 얹은 기자는 머리띠와 가면을 파는 가게로 향했다. 대부분 머리띠가 2000원에서 3000원 사이였다. 나름 질이 좋아 보이는 가면도 3000원이라고 했다. 거울 앞에서 가면을 착용하고 있던 남학생 무리는 “의외로 싸서 놀랐다”며 웃어 보였다.
가게 주인에게 “이중 뭐가 제일 잘 팔리냐”고 묻자 “제일 싼 게 잘 나간다”며 2000원짜리 머리띠를 추천해줬다. 버튼을 누르면 불이 들어오는 머리띠였다. 하지만 2000원 머리띠는 귀가 아플 것 같아 금세 포기하고 1000원 더 비싼 머리띠를 택했다.
2000원짜리 머리띠는 버튼을 누르면 불까지 들어왔다. 하지만 귀가 아플 것 같아 기자는 다른 머리띠를 집었다. 사진=김명선 인턴기자.
질이 좋아 보이는 가면도 대부분 3000원이었다. 사진=김명선 인턴기자.
돈을 들이지 않고 ‘득템(得+item, 좋은 물건을 얻다)’할 수 있다는 것도 이태원 할로윈 축제의 즐길 거리였다. 몇몇 기업에서는 축제를 맞아 홍보 목적으로 제품을 나눠줬다. 설문 조사를 실시해 참가자들에게 축제 물품을 나눠주는 기업도 있었다. 기자는 공짜로 야광봉과 숙취해소음료를 얻었다. 단돈 8000원으로 상처 분장과 머리띠, 야광봉 그리고 숙취해소음료까지 손에 쥔 순간이었다.
설문조사 후 공짜로 얻은 야광봉. 사진=김명선 인턴기자.
숙취해소음료를 나눠주는 기업도 있었다. 사진=김명선 인턴기자.
축제 주간이기는 하지만 술이나 음식 가격을 할인해주는 가게는 드물었다. 대신 대부분 술집에서 맥주 한 잔 값만 내면 사람들과 함께 축제를 ‘제대로’ 즐길 기회를 제공했다. 할로윈 느낌으로 꾸며진 가게에서는 축제 분위기에 맞게 흥겨운 노래가 흘러나왔고 사람들은 함께 리듬을 탔다. 기자 옆에 앉아있던 남자 무리는 기자의 야광봉을 빌려 사진을 찍고 흔들어대기도 했다.
할로윈 분위기로 꾸며진 술집 모습. 사진=김명선 인턴기자.
“돈도 없다면서 무슨 축제야”
기자가 이태원 할로윈 축제에 참가한다고 하자 지인 한 명은 이런 반응을 보였다. 축제를 제대로 즐기려면 최소 5만 원은 필요하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날 기자가 쓴 돈은 1만 원을 겨우 넘겼다. 화장품 가게나 집에서 화장품으로 직접 분장을 하고 제일 싼 머리띠를 구매하고 술집 대신 편의점에서 술을 샀다면 돈을 더 줄일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이태원 할로윈 축제는 그야말로 ‘가성비 좋은 축제’였다. 잘만 활용한다면 정신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빈곤한 청년 세대가 최대한 적은 돈으로 많은 볼거리와 즐길 거리를 얻을 수 있는 기회였다. 밤 11시 30분 기자가 이태원을 떠날 때까지도 청년들의 웃음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김명선 인턴기자 line23@ilyo.co.kr
2018 할로윈 현장을 가다5(끝)-할로윈 파티가 끝나고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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