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 출입금지 등 고강도 개혁 시동…전정권서 ‘활약’하던 IO들 수사선상 오르기도
10월 2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으로 이전하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 분실에서 관계자들이 집기 등을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민간을 상대로 한 경찰 정보 수집 역할의 최전선, 정보분실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14년 12월. 박근혜 정부 당시 경찰청 정보분실에서 정윤회 문건이 유출된 사실이 드러나면서부터였다.
경찰은 경찰법과 경찰관 직무집행법에 명시된 경찰 직무 중 ‘치안정보의 수집·작성 및 배포’에 근거를 두고, 3개의 정보분실을 운영해 왔다. 예장동 소재 정보1분실(일명 남산 분실)과 장교동 소재 2분실(일명 청계천 분실), 그리고 한남동 소재 3분실(일명 한남동 분실)이었는데, 최순실 씨의 전 남편 정윤회 씨와 관련된 문건이 유출된 곳은 남산 분실이었다.
당시 청와대 문건 유출 혐의로 최 아무개 경위는 검찰 조사를 받아야 했고, 그 직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리고 경찰은 문건 유출 과정에 대한 책임을 묻는 성격으로 예장동 소재 정보1분실(일명 남산 분실)과 장교동 소재 2분실(일명 청계천 분실)을 모두 서울경찰청사 소속 건물로 이전시켰다.
그렇다고 해도 당시 정보분실 폐쇄는 정보 수집을 담당하는 기존 성격에 대한 변화는 아니었다. 당시 정보분실에 근무했던 경찰IO(정보요원 : intelligence officer)는 “당시 문건 유출 사고로 인해 분실이 서울청으로 들어가긴 했지만, 시민단체와 언론 등에 대한 정보 수집은 계속됐었다”며 “정보 문건 처리를 더 신중하게 했을 뿐 역할이 축소된 것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경력이 10년이 넘는 베테랑 IO들도 여전히 본청과 남은 한남동 분실에서 본연의 역할을 수행했다.
하지만 이번 한남동 분실 폐쇄는 성격이 좀 다르다는 게 IO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치안 정보’라는 개념에 대한 문제가 있다는 지점에서 시작된 개혁이기 때문이다. 실제 여러 시민단체들은 ‘치안정보’라는 개념의 의미가 불분명하고 이 때문에 경찰 정보활동이 민간 영역을 상대로 광범위하게 진행돼 인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크다며 강도 높은 개혁을 요구해 왔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마련된 경찰개혁위원회는 올해 4월 ‘정보분실’을 본청으로 이전할 것을 권고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시작된 사정당국 개혁의 칼날 앞에 경찰청 정보라인은 이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지난 24일 이뤄진 한남동 분실 폐쇄를 단순히 ‘근무지 이전’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또 다른 경찰 IO는 “분실이 본청의 관리를 받지 않고 운영되다보니, 정보 통제가 안 되는 부분이 있었다는 게 경찰 수뇌부의 판단”이라면서도 “본래 성격과 무관한 정보가 다뤄지는 것에 대한 불편한 심기가 그대로 들어간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 “비공식 루트로 출입 금지 지시 떨어져“
실제 경찰 정보 파트는 비공식적인 루트로는 사회단체와 언론사 등 몇몇 영역에 대한 출입 금지 지시도 내렸다.
앞선 경찰 IO는 “비공식적인 루트로 기존에 출입하던 주요 사회단체나 언론사 등에 대한 출입을 금지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며 “사실 분실에서 근무한다고 해도 현장에 나가서 돌아다니며 사람 만나고 범죄 정보를 모으는 게 우리의 일이다. 분실을 폐쇄하는 결정보다 국회 출입 IO를 대폭 축소하고 사회단체 출입을 비공식적으로 금지하는 게 더 큰 변화”라고 귀띔했다.
우려가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정보 파트는 각종 정보 수집 역할 외에 갈등을 절충하는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 익명을 요구한 경찰청 관계자는 “정보 경찰은 소소하게는 집회 시위 등을 할 때 경찰과 해당 시위 집회단체 사이의 비공식 의사소통 창구 역할을 담당해 충돌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는 역할을 한다”며 “그 외에도 여러 측면에서 비공식적으로 하는 역할이 정말 많은데 이번 결정으로 향후 경찰과 각종 사회단체 간 갈등 조정 능력이 약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 앞선 정권 당시 정보라인 수사선상에…
앞선 이명박, 박근혜 정부 당시 IO들이 경찰이나 검찰 수사를 통해 처벌을 받고 있는 점도 IO들을 더 주춤하게 만드는 맥락이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 청와대 문건을 전담 수사 중인 경찰 특별수사단은 지난 9월, 서울 한남동 경찰청 정보분실을 압수수색하며 수사를 펼치고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 불법사찰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올해 6월에는 서울중앙지검 공공형사수사부가 삼성 노동조합 와해 의혹을 수사하기 위해 이곳을 압수수색했고, 이 과정에서 베테랑 경찰 전직 IO가 구속되는 일도 있었다. 노동 담당 정보관으로 30년간 근무해 온 김 아무개 전 경정이 현금 1500만 원 등 총 6000여 만 원의 금품을 받고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관련 정보를 넘긴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김 전 경정은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노조와 진행한 교섭에 삼성 쪽 인사인 것처럼 참석해 삼성 쪽 입장을 대변했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베테랑 선배 경찰의 구속에 베테랑 IO들이 뒤숭숭한 것은 당연한 결과. 앞선 경찰 IO는 “김 전 경정 구속 이후 정보를 다룰 때 더 예민해지고 신중해졌다”며 “정보라는 게 워낙 예민한 탓에 정권이 바뀔 때마다 문제가 되다보니 더 위축되는 것이 사실”이라고 속내를 털어놨다.
# “경찰 정보라인도 이제 검찰처럼 변화할 듯”
결국 정보 수집 활동 위축은 불가피하다는 게 사정당국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자연스레 검찰 정보라인처럼 변화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 검찰은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대검찰청을 중심으로 주요 지방검찰청의 정보 파트를 모두 없앴다가, 수사 첩보 관련된 영역으로만 부활시킨 바 있다.
앞선 경찰청 관계자는 “이제 경찰도 직접적인 범죄 정보만 챙겨서 수사 라인에 넘겨주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며 “사찰 등 정치적으로 연관된 영역에서의 정보 수집 활동을 줄이라는 것 아니냐, 국회 IO를 대폭 줄인 점도 이 같은 맥락으로 보면 될 것 같다”고 풀이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