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커버] 예쁜 남자들에 주목하라3-남기자의 메이크업 도전기 with 백기웅 메이크업 아티스트
하지만 최근 ‘잘생김’을 현실 속에서 구현하려고 하는 남자들이 늘고 있다. 이들은 ‘의느님’의 도움을 받아 강남 일대를 찾아다니지 않는다. 메이크업으로 여성 못지않게 자신을 가꾸고 꾸민다. 화장하는 남자들이 과거에 비해 폭발적으로 늘어난 까닭이다. 거울 앞에서 화장을 통해 자존감을 높이는 남자들은 ‘예쁨’ 전략으로 ‘잘생김’을 현실로 만들어왔다.
기자는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화장을 해본 일이 단 한 번도 없다. 로션은 평소에 바르지 않는다. 겨울에 피부가 푸석푸석해지면 스킨을 찾는 정도다. 매일 가족들에게 “피부 관리 좀 해라”는 푸념을 듣지만 ‘귀차니즘’ 탓에 32년의 세월을 ‘노메이크업’으로 살았다. 취업준비생 시절 면접을 보러 다닐 때도 정장이 최선이었다. 안경을 벗고 렌즈를 끼었다면 그것으로 꽃단장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자신감이 아니었다. 화장을 할 필요가 없었다. ‘남성’ 대부분이 화장을 하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서 면도를 하다가 피를 흘리고 흉터가 생겨도 그대로 출근했다. 왁스로 머리를 한 번 쓸어 넘기면, 피부 트러블 따위는 보상을 받을 것이라고 여겼다. 기본적으로 꾸미는 것에 관심이 없는 인생이었다.
10월 31일 서울 용산의 스튜디오에서 백기웅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본지 기자를 화장하고 있다. 박정훈 기자
10월 29일 기자는 “예쁜 남자에 도전하라”는 미션을 받았다. ‘예쁨’보다는 ‘잘생김’이란 단어가 먼저 떠올랐다. “화장을 하면 혹시 잘생겨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언컨대 기자는 잘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평소 장동건의 얼굴로 하루를 살아보고 싶었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길거리에서 여성뿐만 아니라 잘생긴 남성들을 주목한다. 경외와 동경의 눈빛이다. 기자는 태생적으로 못생긴, 불가역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조건을 화장으로 극복해보고 싶었다. 남성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도움이 필요했다. 이심전심, 남자는 남자의 마음을 안다고 할까.
10월 30일 메이크업 아티스트 백기웅 대표를 서울 용산의 한 스튜디오로 초청했다. 백 대표는 ‘겟잇뷰티’ ‘곽승준의 쿨까당’ 등 유명 방송 출연 이력은 물론 K뷰티의 차세대 리더로 주목받는 아티스트다. 오후 3시경 도착한 백 대표는 분장실에서 검정색 천을 거울 앞 공간에 깔기 시작했다. 가방 속에서 형형색색의 화장품이 천 위에 깔렸다. 메이크업 준비 시간만 15분 이상 걸렸다.
백기웅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가방 속에서 나온 화장품. 박정훈 기자
준비를 마치고 기자는 떨리는 마음으로 거울 앞에 앉았다. 차가운 솜이 피부를 누르기 시작했다. “어떤 화장품이죠?”라는 질문에 백 대표는 “스킨입니다. 스킨은 밑바탕을 잡고 노폐물을 닦아주는 역할을 합니다”라고 설명했다. 거대한 진공청소기가 피부를 구석구석 빨아들이는 느낌이었다. 스킨에 이어 수분크림이 양쪽 볼과 이마를 적셨다. 수분 크림이 입가에 번질 때마다 시원하고 화끈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이제 눈썹을 다듬을 차례였다.
백기웅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본지 기자의 눈썹을 다듬고 있다. 박정훈 기자
“눈썹을 수정해도 괜찮죠? 훨씬 깔끔해질 겁니다.”
칼이 눈썹 아래쪽 털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미간을 향할 때는 얼굴을 찌푸렸다. 자연스레 눈이 질끈 감겼다. 작은 솔과 붓, 가위 등 온갖 도구들이 눈썹 주변을 오갔다. 백 대표는 “눈썹은 얼굴의 지붕입니다. 눈썹 모양에 따라서 첫인상이 많이 달라져요”라며 “메이크업에서 가장 신경 써야 할 부분이 피부와 눈썹입니다”고 말했다. 눈썹 손질을 마치고 거울 봤다. 눈썹의 선과 결이 가지런히 정리된 상태였다. ‘오’하는 탄성이 나왔다.
“지금 바르는 것은 메이크업 베이스입니다”
치약처럼 생긴 통에서 하얀색 크림이 나왔다. 백 대표는 손가락으로 크림을 찍은 뒤, 양 쪽 볼에 각각 4개의 터치를 했다. 이마 3개, 콧등 1개, 턱 3개 이렇게 총 15개의 크림 자국이 얼굴에 닿았다. 프라이머도 코 주변에 집중적으로 발랐다. “프라이머는 모공을 잡아주는 역할을 해요”라고 백 대표의 설명이 이어졌다.
백기웅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본지 기자의 입술을 칠하고 있다. 오른쪽은 화장 도구. 박정훈 기자
붓이 등장했다. 피부를 샅샅이 쓸고 지나갔다. 붓이 자신의 역할을 마치면 주먹만한 크기의 솜이 붓의 흔적을 따라왔다. 붓과 솜의 ‘터치’가 반복적으로 이어졌다. 백 대표는 “파운데이션을 바르고 있어요. 보통 피부 표현할 때 파운데이션으로 조절합니다. 얼굴 톤이 밝아질 거에요”라고 밝혔다. 파운데이션 화장을 마치고 거울을 본 순간 기자는 아연실색했다. 턱 주변의 수염 자국은 온데간데 없었다. 입술에 색까지 칠하니 입가가 확실히 말끔해진 느낌이었다.
메이크업에 걸린 시간은 약 30분. 기자는 거리로 나갔다. 화장한 것이 아까웠다. 집에 들어가기 싫었다. 한동안 카페를 서성였다. 당장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소개팅 주선을 부탁하고 싶었다. “진즉에 메이크업을 하고 소개팅에 나갈 걸”이라는 후회가 밀려왔다.
하지만 곧 불편함이 이어졌다. 커피를 마실 때마다 입술 자국이 컵에 찍힐 수 있어 조심스러웠다. 집에서 클렌징을 할 때는 ‘귀차니즘’이 다시 시작됐다. 손으로 얼굴을 문지르고 또 문질렀지만 화장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화장을 지우면 지울수록 거울에서는 기자의 원판이 드러났다. 그럼에도 매일같이 화장을 할 자신은 없었다. 메이크업으로 일상을 살아내는 여성들이 존경스러웠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
메이크업 아티스트 백기웅 대표가 말하는 ‘남자들이 예뻐지고 싶은 까닭’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고등학교 시절 축구를 했는데 개인적인 사정으로 그만두었다. 군 입대를 하면서 메이크업에 관심을 갖게 됐다. 군대에서 피부가 점점 안 좋아졌다. 잡지를 보면서 피부 관리를 하기 시작했다. 2010년쯤 전역한 이후 자격증 공부에 눈길이 갔다.” ―당시 남성 메이크업 아티스트에 대한 인식은. “그때만 해도 화장하는 남자가 소수였다. ‘남자가 어떻게 저런 메이크업을 하냐’, ‘나이가 들어도 끝가지 할 수 있는 직업이냐’라는 말을 들었다. 지금은 남성들이 메이크업 시장에 많이 뛰어 들면서 인식이 바뀌었다. 백화점 화장품 매장에서 남성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남성 손님들의 비율은. “비율이 높다. 10명 중 3명 정도다. 최근에 많이 늘어났다. 얼마 전 할로윈데이 때 남성 손님들이 단체로 와서 메이크업을 받고 갔다. 항공사 면접, 배우 오디션 등 중요한 일을 앞둔 남자 손님들도 헤어 메이크업을 받는다. 보통 방법을 모르다가 메이크업 이후에 화장의 매력에 빠진 분들도 있다. ” ―남성 뷰티 시장이 성장세를 보이는 이유는. “과거에 비해 남성들이 스스로를 많이 가꾸기 시작했다. 제 친구들도 가끔 ‘스킨케어를 뭘 발라야 하느냐’고 묻는다. 요즘 남성들은 헬스장을 가더라도 비비크림을 바른다. 그루밍(패션과 미용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남자들을 일컫는 신조어)족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수요의 증가로 자연스레 시장이 성장한 것이다.” [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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