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펠러의 세계 정복 음모’ 폭로 인터뷰 뒤 숨져…공식적으론 병사지만 암살설 돌아
1943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유태인 혈통으로 태어난 아론 루소는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은 아니었다. 제대로 고등학교도 마치지 않았던 그는 패밀리 비즈니스인 속옷 장사에 일찍이 뛰어들었고, 10대 시절에 이미 장사꾼 기질을 발휘했다. 20대가 되었을 때, 아론 루소는 시카고에 ‘키네틱 플레이그라운드’라는 나이트클럽을 열었다. 직역하면 ‘역동적인 놀이터’였던 그곳은 더 도어즈, 더 후, 제퍼슨 에어플레인, 레드 제플린, 그레이트풀 데드 같은 전설적인 록 그룹이 연주하던 곳이었다. 요절했던 록 뮤지션 제니스 조플린도 이곳에서 에너지를 폭발시켰다.
아론 루소
그는 한때 배우 베트 미들러의 매니저 일을 했는데, 그녀를 주연으로 영화를 한편 제작한다. 바로 자신의 클럽 무대에 섰던 제니스 조플린에 대한 전기 영화 ‘로즈’(1979)였고, 이 영화가 큰 성공을 거두면서 그는 쇼 비즈니스 쪽으로 진출한다. 이후 에디 머피 주연의 ‘대역전’(1983)으로 큰 성공을 거둔 그는 1989년에 영화감독이 된다.
변화는 1990년대에 왔다. 그는 정치 쪽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는데, 1994년엔 ‘헌법당’을 만들려고 했고, 1998년엔 네바다주 주지사 선거 공화당 경선에 나가떨어진 뒤, 상대편인 민주당의 잔 래버티 존스를 지지하기도 한다. 2004년엔 군소 정당인 자유당 대통령 후보로 나섰지만 경선에서 떨어졌는데, 이후 자유당의 ‘해방 국가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이것은 미국 내 뉴햄프셔 지역에 자신들만의 새로운 국가를 설립하려는 운동이었다.
이 즈음이었다. 그는 엄청난 사실을 폭로한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미국이라는 국가는, 아니 전세계는, 어쩌면 음지에 감춰져 있는 거대한 세력에 의해 조종되고 있는 셈이었다. 그 중심은 ‘해외 관계 위원회’(CFR)라는 조직이었다. 이름만 들으면 정부 기관 같지만 이곳은 석유 재벌인 록펠러 가문에 의해 운영되는 곳. 아론 루소의 주장에 의하면 거대한 파워로 섬뜩한 음모를 꾸미는 곳이었다. 록펠러 패밀리 역시 유태인이었고, 그들은 동족인 아론 루소를 포섭하기 위해 만난다. 연결 고리가 된 사람은 패밀리의 일원인 니컬러스 록펠러. 그는 2001년 2월 아론 루소와 만나 CFR에 들어오라며 엄청난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론 루소와 니콜러스 록펠러
인구를 감소시키는 것도 그들의 통제 방법 중 하나였다. 그래서 그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페미니즘을 지지하고 있었는데, 결혼과 출산을 낮추려는 의도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가장 충격적인 건, 닉 록펠러는 조만간 큰 일이 하나 일어날 거라고 예언했고 그것은 바로 9·11 테러였다는 게 아론 루소의 주장이다. 테러 이후 미국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전쟁을 일으켜 엄청난 영향력을 끼치게 되지만 그곳에 사실상 적은 없으며, 목적은 자유 박탈과 궁극적으로는 석유라는 것이다.
존 록펠러가 설립한 스탠더드 오일은 한때 미국의 석유 산업을 90퍼센트 이상 장악했고, 그 힘을 토대로 록펠러 가문이 금융과 식량과 정치와 언론을 막후에서 조종한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 이런 엄청난 이야기를 들은 아론 루소는 CFR 합류를 거부한 후 이 내용을 폭로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2006년, 그는 문제의 다큐멘터리 ‘미국: 자유에서 파시즘으로’를 내놓는다. 미국의 국세청과 연방 준비 제도를 비판한 이 다큐멘터리는 일종의 경고였다. 유럽에서 자유를 찾아 건너온 사람들의 청교도 정신이 사라진 미국은 전체주의로 치닫고 있으며 그 끝은 ‘뉴 월드 오더’(New World Order), 즉 ‘새로운 세계 질서’가 될 거라는 내용이었다.
이후 그는 2007년에 풀뿌리 정치 조직인 ‘공화국을 회복하라’(Restore the Republic)를 설립한다. 1년 전에 내놓은 다큐멘터리가 선언문이었다면, 이 조직은 실천 강령이었던 셈. 그리고 이 시기, 그는 록펠러의 세계 정복 음모를 폭로하는 인터뷰를 했고 일주일 뒤 세상을 떠난다. 공식적인 사인은 5년 가까이 앓아왔던 암이었지만, CFR의 사주를 받은 정보기관에 의해 암살되었다는 루머가 돌았다.
과연 아론 루소의 주장은 어디까지 사실이고 어떤 부분이 거짓일까? 음모론에 적대적인 사람들은 그의 말은 단 하나의 진실도 포함되지 않았다고 평가하지만,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칩 이식 계획 부분에 민감하게 반응하기도 했고, 9·11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아론 루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렇다면 그는 어두운 세상에서 홀로 외쳤던 선지자였던 걸까? 아니면 9·11 테러 이후의 충격을 거대한 음모로 해소하려 했던 망상가일까? 진정 알 수 없는 일이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