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커버]소방의 날 특집1-강원도소방학교에서 만난 새내기들
11월 7일 강원도 태백에 위치한 강원도소방학교에서 교육생들이 수관 전개 및 회수 훈련에 임하고 있다. 고성준 기자
지난 2010년 개교한 강원도소방학교는 전국 8개 권역별 소방학교 중 두 번째 큰 규모를 자랑한다. 이곳 교육생들의 생활시설과 훈련시설은 짧은 역사만큼이나 타 학교에 비해 쾌적하고 체계적으로 구비돼 있다. 학교 시설을 감싸고 자리한 태백산 자락이 퍽 인상 깊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기자가 학교를 찾은 날, 거짓말 같이 비가 내렸다. 혹시나 교육생들의 훈련이 취소되지 않을까 싶었지만, 이날 기자를 안내한 이광섭 교육행정담당관과 이배성 소방교는 아무리 비가와도 교육생들의 훈련은 정상적으로 진행된다고 귀띔했다.
현재 강원도소방학교에는 지난 10월 29일 입소한 교육생 163명(남136·여27)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교육생들은 총 16주 동안 제식과 체력단련을 시작으로 화재대응, 인명구조와 현장실습 등 기본교육 과정을 거쳐 일선 소방서에 배치된다. 이광섭 담당관에 따르면, 이번 기수들은 내년 2월까지 혹한기를 거쳐야 하는 가장 고된 기수라고 한다. 이곳 태백산은 한겨울 평균 영하 20도를 넘나든다고 한다.
소방 교육생들의 군기가 상당했다. 이동 중 도열은 기본이다. 고성준 기자
현장에서 만난 교육생들은 첫인상부터 ‘군기’가 바짝 들어있었다. 훈련시설을 오가거나 심지어 식사를 하러 갈 때도 도열을 맞춰 이동했으며, 교관들에겐 ‘안전!’이라는 구령과 함께 힘찬 경례를 붙였다. 군대도 아닌데 왜 이리 빡빡할까 싶었지만, “소방공무원은 사람 목숨을 다룬다. 훈련 과정도 실제 가스를 이용해 불을 피우는 등 위험도 대단히 높다. 당연히 정신 무장이 필요하다”는 이 담당관의 말에 금방 수긍이 갔다.
기자가 처음 참관한 훈련은 ‘로프 매듭’이었다. ‘로프 매듭’는 일선 구조 현장에서 환자는 물론 본인의 안전에 있어서도 가장 기본적으로 숙지해야 하는 과정이다. 구조요원의 ‘로프’는 곧 ‘생명줄’이란 말이 실감났다.
“교육생들은 총 서른 가지 매듭을 배우게 된다. 그중 현장에서 쓰는 열 가지는 꼭 숙지해야 한다”는 이배성 소방교의 말에 입이 떡 벌어졌다. 특히 교육생들은 임용에 앞서 화재대응능력 2급 자격시험에 응시하게 된단다. 그 중 ‘매듭’은 한 가지만 틀려도 불합격 처리된다고.
교육생들은 무려 서른 가지의 로프 매듭을 배우게 된다. 고성준 기자
이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교육생들은 교관의 숙달된 손놀림에 집중에 집중을 거듭했다. 몇몇 손이 더딘 교육생들은 옆 동기의 잘 된 매듭과 비교하며 연신 로프를 묶었다 풀었다 반복했다. 쌀쌀한 날씨임에도 그들 이마 위에는 구슬땀이 송골 맺혔다.
두 번째로 참관한 훈련은 ‘수관 전개 및 회수’ 훈련이었다. 수관은 흔히 말하는 소방호스다. 수관을 얼마나 잘 다루느냐는 화재 발생 시 얼마나 빨리 대응할 수 있느냐와 가장 직결되는 부분이었다. 이배성 소방관은 이 훈련을 “소방 임용 후 가장 기본 중 기본 훈련”이라고 강조했다.
훈련은 장관을 이뤘다. 수십 명의 교육생들은 운동장 위에서 무거운 수관을 반복해서 피고 접었다. 소방 새내기 손을 떠난 수관은 맘 같지 않게 이리저리 통통 튀어나갔다. 체격이 작은 여자 교육생들도 본인만한 수관을 짊어지고 풀어댔다. 그 무거운 수관을 딱 3분 만에 풀고 접어야 한단다. 어찌나 힘든지 교육생들 입에선 자기도 모르게 ‘악’소리가 튀어나왔다. 거센 비가 연신 쏟아졌지만, 고된 훈련은 계속됐다.
교육생들은 3분 안에 수관(소방호스)를 풀었다 다시 접어야 한다. 그 무게가 상당해 보인다. 고성준 기자
교육생들의 훈련시설은 철저하게 현장을 반영한 시뮬레이션 그 자체였다. 주택실물화재훈련장은 화재에 취약한 술집 바(Bar)를 그대로 재현해 눈길을 끌었고, 전국에서 이곳에만 있다는 항공기화재진압훈련장은 항공기 모형을 그대로 본떴다. KBS 간판예능 ‘1박2일’에도 등장했다는 지상 6층 규모의 훈련탑은 쳐다만 봐도 다리가 후들 떨렸다.
그중에서도 ‘수난구조훈련장’은 매우 인상 깊었다. 수상사고 발생에 대비해 마련된 훈련장은 상당한 수심의 풀에서 훈련이 이뤄지고 있었다. 그 옆에 어마어마한 선풍기와 간이 기중기가 눈에 띄었다. 선풍기의 용도는 항시 거센 바람이 불어대는 강변 상황을 실제처럼 묘사하기 위해 마련됐고, 기중기는 풀에 자동차를 넣기 위해 마련된 것이란다. 물속에 빠진 자동차에서 사람을 구조하는 상황을 연출하기 위해서.
학교 시설 설비 과정부터 현재까지 학교 역사와 함께했다는 이광섭 담당관은 학교가 이제 집만큼 편하단다. 그는 “모든 훈련시설은 철저하게 현장을 반영해 계획됐다”라며 “국내에는 소방 훈련시설을 전문으로 하는 건축업체가 따로 없어서, 설비 때부터 일일이 외국 사례도 참조하고 또 많은 고민을 거듭했다”고 설명했다.
훈련시설 설계는 철저하게 현장을 반영해 만들어졌다. 훈련탑(왼쪽), 수난구조훈련장(오른쪽 위와 중간), 항공기 훈련장(오른쪽 아래). 고성준 기자
현장에서 만난 교육생들 중에선 남다른 사연을 가진 이들도 많았다. 한수경 교육생(41)은 이번 기수 최고령 교육생이다. 그는 강원도소방학교 역사를 통틀어서 최고령 기록을 갈아치웠다는 후문이다. 이번 기수 최연소 교육생과는 정확히 스무 살 차이. 학원 강사 출신인 그는 “보다 보람있는 일을 하기 위해 이 길을 택했다”라며 “솔직히 많은 나이 때문에 부담이 됐지만, 지금은 그저 동기들에게 민폐 끼치지 말고 중간만 하자는 맘”이라고 웃음을 지었다.
석윤수 교육생(28)은 태백소방서장을 지낸 아버지 뒤를 이어 소방관의 길을 걷게 됐다. 석 교육생은 “원래 나는 생명공학을 공부했지만 늘 소방관이던 아버지가 늘 존경스러웠다. 내가 처음 이 길을 간다고 했을 때, 아버지는 ‘나보다 나은 삶을 살라’며 반대하셨다”라며 “하지만 결국 아버지가 내 뜻을 받아주셨고, 막상 합격한 후엔 ‘뭐 하러 아빠처럼 힘든 일을 하려 하느냐. 그래도 참 고생했다’고 꼭 안아 주시더라”고 소회했다.
그런가 하면 이번 기수에서 ‘부부 소방관’도 탄생했다. 간호사 출신인 이효주 교육생(28)은 현직 소방관인 남편에 이어 소방공무원의 길에 들어서게 됐다. 이 교육생은 “평소 병원 일에 회의감이 들곤 했다”라며 “그 과정에서 남편의 권유가 있었고, 결국 ‘구급 특채’를 통해 이곳에 오게 됐다”고 말했다.
번듯한 유통분야 대기업에서 6년 넘게 일했다는 이상민 교육생(36)은 과거 구급대원의 도움을 계기로 소방공무원이 됐단다. 그는 “몇 년 전 어머니가 교통사고를 당하셨다. 사고 직후 구급대원들이 너무나 감사하게도 빠르게 후송해주셨다”라며 “이후 나도 그 길을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라고 말했다.
이들은 내년 2월까지 합숙 교육 과정을 거쳐 일선 현장에 나서게 된다. 한 명의 소방영웅이 탄생하기 까지는 이처럼 고되고, 혹독한 담금질이 있었다.
태백=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소방의 날 특집2-‘미니인터뷰’ 이종배 강원도소방학교 교육생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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