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예정된 착공식·남북합동조사 연내 불투명...남북 의지 및 미국 유연성이 관건
남북철도연결사업에 먹구름이 잔뜩 꼈다. 사진은 2018년 6월 26일에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 철도협력 분과회의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그래픽=백소연 디자이너
“남북관계의 실질적인 진전을 판단하기 위한 여러 가지 성과와 지표가 있을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우선적으로 철도를 보면 된다. 왜, 철도는 그저 단순한 인프라 공사가 아니다. 북한 입장에선 민감한 군사지역을 포함해 내부 노출을 감수해야 하며 부지 및 노동력의 보상 문제도 면밀히 잘 이뤄져야 한다. 그 만큼 상호 신뢰가 두텁게 선행되어야 한다. 거기에 합동 조사와 실제 건설 이행 과정에서 상당한 물자와 자원이 오가야 하므로 유엔의 제재 장벽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게다가 당연히 주변국의 협조가 필요한 사업이다. 이 중 어느 하나가 삐걱 거려도 쉽지 않은 게 철도 사업이다.”
과거 노무현정부 시절 국회 남북특위에서 여러 대북사업을 경험했던 한 전직 의원이 최근 기자와 만나 건넨 말이다. 그는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절부터 꾸준히 추진됐지만, 시험운행만 몇 차례 선행됐을 뿐 번번이 결과를 내지 못했던 과거를 회상하며 ‘남북철도 연결사업’의 중요성과 어려움을 새삼 강조했다.
남북 정상 역시 그 중요성을 함께 인식하며 지난 4월 1차 정상회담에서부터 동해선 및 경의선 철도 연결과 현대화 대책을 마련하자고 합의했다. 여기에 남북은 지난 6월 26일 판문점에서 남측의 김정렬 국토교통부 차관과 북측의 김윤혁 철도성 부상을 대표로 한 철도협력 분과회의를 열었다.
두 대표는 이 회의서 ‘북측 구간(금강산-두만강, 개성-신의주)에 대한 현지 공동조사’와 ‘경의선 철도 연결 구간(문산-개성), 이어서 동해선 철도 연결 구간(제진-금강산)에 대한 공동점검’, ‘실무 대책 마련을 위한 채널 구축’ 그리고 ‘착공식 개최’ 등 구체적인 프로세스에 합의했다. 여기에 지난 9월 평양에서 열린 제3차 남북정상회담에선 두 정상이 공동선언문을 통해 ‘금년 내 철도 연결을 위한 착공식 개최’를 못 박았다.
하지만 지난 7월, 동해선 북한 구역의 현지 점검을 위한 남측 점검단이 방북해 기본적인 현지 점검만 이뤄졌을 뿐 더 이상의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앞서 전직 의원이 강조했던 여러 성사 조건들이 현재 모두 암초에 부딪히고 있는 형국이다.
일단 지난 8월 22일 예정됐던 남북 철도 시범운행 및 공동점검이 무산됐다. 8월 30일, 유엔사가 이를 불허하면서 정부를 당혹스럽게 했다. 유엔사가 불허 결정을 내린 내막을 두고 표면적으론 점검 과정 중 반출되는 물자 및 인력이 대북제재 품목에 포함되는 것 아니냐는 시각, 그리고 보다 근본적으론 유엔사와 직결된 미국의 입장이 적극 반영된 것 아니냐는 시각이 우세했다.
그리고 남북이 연내 함께 하기로 합의한 본격적인 공동조사와 착공식은 상당히 불투명한 국면으로 이어지고 있다. 10월 중 예정된 공동조사 계획은 이미 물 건너갔고, 11월 말 혹은 12월 초 계획된 합동 착공식은 결국 내년으로 미뤄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불거지고 있다.
철책에 가로막힌 경의선 철도의 모습. 연합뉴스
이에 통일부는 “계획은 정상적으로 진행 될 것”이라고 재차 강조하고 나섰으며 조명균 통일부장관은 최근 국회 출석 자리에서 “북한의 경의선과 동해선 연결 노선이 이미 각각 430km와 800km로 확정됐다”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예정된 계획이 실제 정상적으로 진행되기는 쉽지 않다는 분석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무엇보다 최근 북한과의 고위급회담을 미루고 있는 미국이 속도조절에 나서면서 그 시각이 더욱 우세해지고 있는 형국이다. 정체되기 시작한 북미 관계가 남북에도 영향을 주고, 그 바로미터인 철도연결사업 추진도 더딜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양기대 교통대 유라시아교통연구소장은 “북미관계가 답보상태고, 북미정상회담도 연기되는 분위기”라며 “남북이 착공식을 예정대로 진행할 것이냐, 아니면 북미관계 상황을 보고 할 것이냐는 물론 우리의 의지 문제”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도 양 소장은 “미국을 좀 더 설득하고 양해를 구한다면, 그리고 미국도 좀 더 유연하게 이를 봐 준다면 연내 착공도 아주 비관적이진 않다”라며 미국이란 ‘상수’를 강조하며 “결국 남북의 의지와 더불어 미국의 유연성이 관건”이라고 덧붙였다.
양 소장은 합동조사 과정에서 오가야 할 물품 반출 문제에 대해서도 “물론 철도 공동 현지 조사를 위한 장비와 준비 품목들은 군사적 목적이 아니다”라면서 “다만 이 역시 미국이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이는 미국이 남북철도사업을 바라보는 잣대의 문제다. 뭐라 단정적으로 보기엔 좀 미묘한 감이 있다”고 지적했다.
‘착공식’이란 대외적인 이벤트가 지닌 상징성도 매우 중요하지만, 사실 실질적인 현지조사가 더 다급하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이 조사 과정을 통해 노선과 비용, 기술적 문제, 토지보상 및 인건비, 장비 및 재료 등 남북 간 합의해야 할 사안들이 아직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